파리에서 만난 동생
살다 보면 아주 사소한 선택이 인생의 큰 물줄기를 바꿔놓기도 한단다.
어느 자리에 앉을지, 누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지, 혹은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을지 말지 같은 일들 말이야.
사랑하고 아끼는 올리비아
오늘 아빠가 들려줄 이야기는 파리의 한 한인 민박집에서 시작해 이어진,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동생’을 아빠에게 선물해 준 홍이 삼촌에 관한 이야기란다.
아주 오래전, 엄마와 아빠의 결혼기념일이었지. 너는 아직 두 돌도 안 된 아기였어. 감기라도 걸릴까 봐 어디 데려가기도 조심스럽던 시절이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몇 달 전부터 이번 여행을 손꼽아 기다렸단다.
행선지는 바로 파리였지. 너와 함께 떠나는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의 우리 가족의 첫 번째 해외 나들이였어.
기차 창밖을 내다보던 네 얼굴이 아직도 선하구나.
세상 많은 것이 처음이었던 너.
모든 것을 신기해하며 어찌도 즐거워하던지...
해협을 건너고 프랑스 북부의 시골 풍경이 스쳐 지날 때마다, 올리비아 너는 그 낯선 빛들을 커다란 눈망울에 가득 담아내고 있었단다.
우리는 한인 민박 그중에서도 리뷰가 좋은 곳 한 곳을 지정하여 묵기로 했단다.
매일 정성 어린 한식이 나오는 곳이었어. 사실 그건 엄마를 위한 선물이었지. 여행지에서라도 아침저녁 부엌일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거든. 파리에서 먹는 따뜻한 한국 음식이라니, 그건 정말이지 '천국' 같았단다.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젊은 부부를 만났어.
갓 결혼한 신혼부부였지.
남편인 홍이는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이었지만, 잔잔한 웃음소리와 상냥한 목소리가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구나.
낯선 곳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다들 그렇듯, 우리도 금세 친해지는 것 같았지만, 더욱이 홍이와 그의 아내는 정말 우리와 성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홍이는 감수성이 뛰어나고 조곤 조곤 말하는 것이 비슷한 것 같았고, 엄마와 홍이의 와이프는 호탕하고 여장부 같은 성격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는 만난 처음부터 말을 놓기로 했다.
“형 우리는 내일모레 런던으로 가.” 홍이가 말했어.
“런던? 우리가 사는 곳인데! 홍이가 런던에 도착하는 다음 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거든.”
기막힌 인연에 함께 웃음을 터뜨리며 번호를 주고받았어.
“런던 오면 꼭 저녁 한번 먹어”라고 인사했지만, 사실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이 계속 지속이 되는 일은 흔하지 않은지라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파리에서의 하루하루는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두 살인 너의 손을 잡고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고, 길거리의 화가로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너를 안아주고 엄마의 손을 잡고 거니는 그 꿈만 같은 풍경이 아직도 사진처럼 아빠의 마음에 남아 있구나.
더욱이 아빠는 올리비아를 데리고 모네의 커다란 그림이 몇 미터나 아름답게 펼쳐진 오랑제리 미술관에서, 꺄르륵거리며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르치며 놀라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단다. 그리고 너를 유모차에 태우고 파리의 에펠탑 근처를 거닐며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그 행복감에 흠취해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구나.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우리도 다시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왔단다.
그렇게 홍이와의 그 인연도 끝난 줄만 알았어.
런던으로 돌아온 다음 날 전화기가 울렸어.
“형….” 홍이의 목소리였어. 그런데 목소리가 조금 안 좋아 보이 더구나.
런던에서 예약한 숙소가 너무 엉망이었나 봐. 불결한 환경에다 집주인이 고함을 지르며 위협까지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낯선 타국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겁에 질려 있었단다.
나는 조심히 그에게 제안을 했단다.
“홍이야, 우리 집으로 올래?"' 아빠는 망설임 없이 말했어. “지금 당장 짐 싸. 형이 데리러 갈게”
잠시 정적이 흐른 뒤, 홍이가 물었지. “정말 그래도 돼?”
“파리에서 이틀간 저녁을 두 번 민박집에서 같이 먹은 사이인데 우리 집으로 오라는 게 좀 우습기도 했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한 시간 뒤, 두 사람은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민박집에서 내려왔고, 나는 그들을 나의 차에 태워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어떤 인연은 긴 설명 없이도 마음이 먼저 가 닿는 법이지.
우리는 그들에게 남는 방을 내주었고, 그날 밤 우리 집 작은 정원에 앉아 자정이 넘도록 옛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었어.
매일같이 서 있는 런던의 하늘 아래서 새로 만난 친구와 이렇게 오랫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단다.
그리고 그때 홍이가 진짜 유럽 여행을 또 다른 이유를 털어놓더구나.
(다음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서...)
치체스터에서 올리비아를 생각하고 마음에 담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