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체스터에서 쓰는 아빠의 편지
‘정성스러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앞으로 나가는 희망을 얻는 일이고,
깊이 사랑을 한다는 것은 마음 깊은 뿌리를 찾아가는 것.’ 같구나.
사랑하는 올리비아,
아빠가 중학교 시절부터,
여러 가지 지병으로 비록 몸이 아프셨던 어머니였지만,
감사하게도 아빠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깊은 사랑 속에 대부분 안정된 정서와 (적어도 내 생각에) 온화한 성격을 갖게 된 것 같구나.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선생님의 사랑을 받을 때, 그들 안에는 미래가 보이는 희망을 싹 틔운단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결국 사랑을 받았고,
사랑을 받는 사람이 사랑을 주었다.
상처받은 학생들을 보면 아빠는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의 결핍된 사랑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같이 채워 나가야 할 몫일 것이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언어를 통하여 가족이, 선생님과 제자가 그리고 직장생활이 단단해지는 것 같구나.
사랑은 분명 서로를 이어주고 안아주는 소중한 감정임에 틀림없다.
언젠가 올리비아도 올리비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고백을 받고, 고백을 할 때가 오겠지.
아빠가 엄마에게 처음 사랑을 전할 때의 그 떨리던 순간이 생각난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그 고백 뒤에 숨겨진 며칠간의 비장함은 대단했다.
아빠는 어느 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완전히 반했고,
몇 번이고 다가가 말을 걸고 싶었지만 좀처럼 쉽게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다섯 개들이 요구르트를 건네주며 '혹시 요구르트 좋아하세요?' 하며 다가갔었지.
저 아름다운 여성이 나의 여자친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의 뱡향이 용기로, 그리고 그것이 행동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러니 알고 보면, 남녀의 사랑도 용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모든 용기 있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만도 아닌 것 같다마는,
남녀의 사랑의 시작은 그리고 동기는 모두 용기에서 오는 것 같구나.
비록 타인만의 사랑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를 손잡고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작업이야 말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거야.
어느 날 학생들이 아빠의 부족한 영어 발음에 킥킥대며 웃었다.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껏 한두 번 겪어온 일은 아니지만...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이럴 때, ‘너는 왜 영어가 아직도 그렇게 부족해?’라는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아빠는 성인이고 어른이기에 타인으로부터 힘든 시기에 나를 안아주며 위로해 주는 법도 터득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어려운 일에 하나하나 반박하며, 토를 달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잘했어. 어찌 모든 것이 내 뜻대로만 흘러갈 수 있겠어? 영어야 조금 더 노력하면 되는 일이고, 저 아이들은 조금 더 이해하면 될 일이지’하고 생각하면 그것도 지나가는 과정 아니겠니? 더욱이 한국이 아닌 외국에 늦은 나와 살면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의 완성은 결국 환경이 만들어 낸, 수많은 불편함에서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아는 성숙함에서 온다고 믿는단다.
좋은 방향으로 스스로를 밀어주고 당겨주는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주의 깊게 확인해야 할 것 같구나.
사랑은 마치 촛불과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조금씩 태우지 않고는 주위를 밝게 비출 수 없으니까 말이야.
올리비아, 네가 사랑하는 너의 엄마를 보렴.
아빠가 치체스터에서 근무를 하는 동안, 아침과 저녁에 너를 학교에 등하교를 시키고,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놀아주다, 씻기고, 공부시키고, 재우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니?
그것이 어쩌면 당연한 부모의 사랑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지금도 울려 퍼지는 수많은 헤아릴 수 없는 엄마/어머니의 사랑이란, 나의 욕심이나 편안함을 양보하지 않고 형성될 리가 없잖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 혹은 ‘것’을 향해 불타올라 환해진 모든 것을 볼 때 그곳에는 늘 타들어간 촛불의 심지가 있더구나..
아빠가 일하는 컬리지에 아빠는 가장 먼저 출근하여 컬리지가 닫기 전에 퇴근을 한다.
아침 6시에 컬리지 운동센터가 문을 열면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하루 수업을 준비하고 수업을 하고 난 뒤, 업무를 마무리 짓고 다음날 수업을 준비하면 대부분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퇴근한다. 별 보고 출근하여 별 보고 퇴근한다 볼 수 있지.
한국에서 고단하게 일을 하는 많은 직장인들에 비할 것이 아니겠지만, 다른 영국 선생님들에 비하면 확실히 일하는 양이 많기는 하다.
그래도 아빠는 늘 즐겁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말이다.
내가 그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조금 더 노력하는 자세가 나를 영국 컬리지의 미용 과정 선생님으로 불러 세운 것 아니겠어?
늦은 시간까지 수고스럽게 수업을 준비하는 이 시간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그저 고단한 노동일 뿐이겠지.
나를 조금 태우면 환해지는 것은 주위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나 스스로' 일수도 있겠구나.
톨스토이는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은 오직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한다"라고 했단다.
부모들이 자녀와의 관계가 사춘기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구나.
올리비아가 그 시기에 접어들 때 아빠가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톨스토이가 말한 사랑의 근간이라면 말이야.
감성적으로 출렁이는 그 시기에 아빠가 사랑하는 딸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많은 영국인과 다른 외국인에 둘러싸여,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너의 이곳에서의 삶도 비단길만은 아닐 테니 말이다.
사랑한다 올리비아.
치체스터에서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