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체스터에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
아주 오래전의 일이구나.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아빠를 아니 직원 모두를 괴롭히던 직장 상사가 있었단다. 그를 피해 다니며 괜히 눈치를 보고, 말 한마디를 조심하고 때로는 마음이 초조해지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
사랑하는 아삐의 딸 올리비아.
원래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상사와 그리고 동료와 같이 일하며 겪는 어려움이 많기는 하다만, 어릴 때부터 직장 생활을 해서인지 정말이지 볼 꼴 안 볼꼴 다 본 것 같구나.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속에서는 억울함이 차곡차곡 쌓여 갔더구나.
미용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아빠의 회사의 직장 상사는 화를 참 자주 냈다.
불처럼 소리를 지르고, 용암 같은 거친 말을 분수처럼 쏟아내는 일이 반복되었지.
나보다 조금 늦게 들어온 한 직원은 회식시간에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그 사람 앞에서 졸았다가 뒤통수를 얻어맞기도 했고, 심지어는 옆 부서의 부서장과도 주먹다짐을 하고 싸울 때도 있었다. 그 옆 부서의 다서 왜소했던 부서장은 회의실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그 황당한 모습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가늠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그 상사의 큰 목소리가 두려웠고,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더구나. 그때는 거대한 폭풍처럼 느껴졌던 그의 분노가, 돌아보니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의 아빠가 그와 비슷한 나이가 아닐까? 그가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성격이라 여겼고, 그것이 곧 자신을 설명해 주는 위치라 믿고 있었을는지 모른다.
아빠가 사회생활을 오래 하며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큰소리를 낸다고 인상을 쓴다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직장 분위기에 공포를 조성하거나 혹은 막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렴. 타인의 감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
소인배라 할 수 있지.
다른 사람의 연약함 위에 올라 타,
위엄을 과시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지는 결국
'스스로의 고립'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텐데 말이야.
분노의 불길은 남을 태우기 전에 먼저 자신을 태우는 것이란다
그래서 아빠는 마음속으로 다짐하게 되었단다. 나 또한 그런 어리석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지.
어느 순간에서든 화가 날 때는 한 걸음 물러나 보자고...
완벽하지는 못해도 조금씩 배워가는 것 아니겠어. 인생이라는 것은...
그리고 인생의 승자는 결국 반성하고 좋아지려 하는 사람의 무대쟎니?
무엇보다 사람들이 아빠를 떠올릴 때,
“그래도 그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라고 기억되고 싶구나.
분노로 남는 사람이 아니라 온기로 남는 그런 사람말이야. 그것이 아빠가 아빠로서 남편으로써 그리고 선생님으로서 선택하고 싶은 길이란다.
살다 보니 알겠더구나.
분노를 이기는 힘은 더 큰 소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려는 마음,
한 번 더 돌아보는 태도에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겠지.
치체스터에서 올리비아를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