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쓰는 100편의 편지-7:선생이라는 사람(2)

친절했던 선생님을 생각하며 치체스터에서...

by 영국 아빠

딸에게 쓰는 100편의 편지-5:선생이라는 사람(1)

사랑하는 올리비아.


중학교 1학년 방학 때,

아빠의 노량진 산동네 집 대문 우체통을 묵직하게 울리는 소리로 밖에 나가보니,

두툼한 편지 한 통이 우표라는 날개를 달아 우리 집을 방문하였다.

아직도 파란 색깔의 편지 봉투가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구나.


그것은 학교에 새로 부임하신 국사선생님의 편지였다.

올리비아,

아빠의 어머니, 그러니까 너의 할머니는 아빠가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많이 아프셨다.

아빠는 아픈 엄마의 손을 잡고 그 편지들을 소리 내어 읽어갔다.

담임 선생님도 아니셨는데.. 아빠는 태어나 처음으로 선생님이라는 사람에게 받아보는 편지에 적쟎이 놀랐단다.


그 이후로도 선생님은 방학 때마다 정성스러운 글을 보내주셨다.
아빠는 중학교 때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못했어. 특히 국사 점수는 늘 하위점수였어.
키도 작고, 등치도 작아 눈에 띄는 학생도 아니었던 내게 왜 그렇게 꾸준히 선생님께서 편지를 보내주셨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단다.


선생님은 늘 한결같이, 편지에서 나를 응원해 주셨다. 선생님의 문장들이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할 힘을 주었고, 아빠는 중학교 생활을 그럭저럭 잘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구나.

그 편지들이 훗날 아빠가 영국에서 버텨낼 수 있게 해 준 하나의 거울이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그 비료 같은 선생님들의 정성을 기억하며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 애써온 것이 아닐까?


아빠가 중학교를 다니던 당시에는 인문계와 실업계 고등학교로 나뉘어 진로를 선택했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빠는 실업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3년의 세월을 지나, 아빠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작은 회사에 취업을 하였다.

첫 월급을 받던 날, 작은 선물을 사 들고 선생님을 찾아뵜었다.

선생님은 많이 어린 얼굴에 어울리지도 않는 어두운 색의 양복을 입은 나에게, '자랑스럽구나'하며 격려를 해 주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선생님께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연락을 하지 못하다, 선생님이 첫 아이를 낳으신 뒤,

아기와 함께 선생님을 뵌 적도 있었단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나는 선생님과 한 식당에서 고등어조림을 먹었다.

선생님이 생선 가시를 바르는 종이 접는 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아직도 그 네모난 종이 상자가 기억이 나는구나.

맛이 만들어낸 기억은 참으로 놀랍다. 이후 고등어조림을 먹을 때 선생님이 생각났단다.


선생님과 식사를 하던 그날, 아빠는 선생님의 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너에게서 보았어. 지금은 비록 네가 대학을 가지 못했고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선생님은 안다.
네가 언젠가는 너만의 특별한 일을 하게 될 거라는 걸.”





군대를 다녀오고,

아빠도 결혼을 하고,
회사에 취업하고…


사실 아빠에게
선생님이 말씀하신 눈에 띄는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단다.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단조롭다면 단조로운 삶이었지.


어느 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별로 특별함이 없는 나의 재능에 의아한 한 적이 있었단다.

미용도 처음에는 왜 그렇게 손이 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는지, 실망스러웠다.

영국으로 건너와 다시 미용을 배우고,
이십 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영국의 미용실에 출근할 때도 마찬가지였지.
하루를 성실히 견디면 또 다른 하루가 올뿐이었다.


선생님과의 연락이 어떻게 끊겼는지 알 수 없지만,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책장 위에 하나둘 쌓여 있던 나의 일기장들을 보게 되었다.
올리비아 너에게 써 내려간 이 편지 노트.
나의 드림노트들 (책에서 읽은 좋은 글들이나, 갑자기 떠오른 명상의 글들의 모음)...

그것들을 정리하는데 선생님의 편지가 툭-하고 한 일기장에서 떨어졌다…

한참을 멍하니 생각지도 못한 그 편지를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이 엮어놓은 나만의 특별한 모음집과 선생님의 편지…


어쩌면 특별함이라는 것은

특별하지 않은 것들의 집합소일 것이다.

나의 평범한 하루하루를 엮었던 글들 이과 선생님의 편지가 나를 이곳 영국으로 이끌었고 지금 영국 학생들들 미용이라는 직업으로 만나고 있는 것 아니겠어?


그리고 아빠도 언제부턴가 중학교 시절 그 국사 선생님처럼

아빠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잘할 때는 칭찬의 편지를,
절망할 때는 위로의 편지를,
주저할 때 용기의 편지를,

서툰 영어로 편지를 쓰고,
집으로 엽서를 보내고,
때로는 노트를 찢어 정성스럽게 마음을 전하고 응원을 한단다.


그때의 선생님처럼

지금의 아빠처럼

선생님의 사랑과 정성은 어떻게든 이어지겠지?


그래서 자고로 선생님이란 사람은
사랑을 이어가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그것이 아빠가 받은 국사선생님의 정성에 보답하는 일일테니 말이야.


치체스터에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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