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것들 뒤에 숨겨진 그림자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늘 경계해야 한다.
오늘 신문을 보니 한 사기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구나.
사기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약한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어둠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지.
사랑하는 아빠의 딸.
얼마나 많은 영악한 사람들이 달콤한 말로 인간의 가장 여린 감정을 건드릴까?
그들은 우리의 판단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기대를 조용히 어루만진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성은 소리 없이 뒷걸음질 친단다.
올리비아, 오늘의 기사 내용은 이렇다.
가난한 집안의 한 여인이 부잣집 며느리로 시집을 간다는 꿈같은 제안을 받았지.
시댁에서 아파트와 운전기사까지 준비되어 있으니 몸만 오면 된다는 말.
얼마나 완벽하게 짜인 환상이었을까?
기업 회장의 아들이라 소개된 사람은 신혼살림 비용으로 1억만 입금하면 된다고 했고, 신부인 그녀는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의심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구나.
부잣집 며느리로 들어간다 말은 언제나 논리보다 강하기 때문이지.
그렇게 그녀는 순식간에 1억을 잃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것이 어찌 돈 1억뿐이겠어?
돈은 숫자로 환산되지만, 신뢰의 붕괴와 자존의 상처 그리고 잃어버린 사랑은 어떤 계산으로도 복구되지 않는다는 것을 살아가며 알게 될 것이야.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사기단이 다섯 차례나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울렸다는 점이야. 인간의 선한 감정과 기대에 올라타 이익을 취하는 일에 그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지.
법적 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지, 그들의 반복은 멈추지 못했단다.
올리비아, 그래서 아빠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야.
늘 판단이 바로 서야 한단다.
아무리 그럴듯한 배경과 권위가 덧칠되어 있어도, 한 번쯤 물러서서 생각해야 해.
우리가 속는 이유는
대개 무지 때문이 아니라
‘커다란 기대’ 때문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욕심은 거창한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는 것 같구나.
안정되고 싶다는 마음.
조금 더 나아지고 싶다는 바람.
남들만큼은 살고 싶다는 희망.
바로 그 지점에서 악성 사기는 시작되는 거라 믿는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늘 깨어 있는 일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막상 그 상황에 놓이면 누구나 판단은 흐려지게 되어 있지.
요즘의 사기들은 단순히 욕심을 자극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감정 깊숙한 곳으로 스며든다.
불안.
두려움.
희망.
소속되고 싶은 마음.
그것은 마치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란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치명적이고, 논리만으로는 막아내기 어렵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때로 인문학적 성찰인 것 같구나.
인간이 무엇에 약한지,
왜 같은 유혹에 반복적으로
흔들리는지 돌아보는 일 말이야.
너무 쉽게 얻어지는 이익은
대개 누군가의 계산 위에
놓여 있는 것 같구나.
우리 딸은 세상에 매혹적인 말들에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만은 않는단다.
예전에 한 지인이 말했다.
유명한 경제 교수가 무료 재테크 강의를 한다며 함께 가자고 했어. 원래는 값비싼 강의인데 특별히 강의비를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짜가 성립되려면, 그 반대편 어딘가에 반드시 비용이 존재해야 한다는 단순한 원리.
며칠 뒤 그녀는 말했다.
강의 내용은 익숙했고, 결국 그 기업의 사업 참여 권유로 이어졌다고.
너무나 예상 가능한 결말이었다.
한 발짝만 떨어져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세상의 공짜에는 언제나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아빠가 예전에 이야기했듯 우리는 진짜로 값이 매겨지지 않는 것들을 붙들어야 한다.
바다의 숨결.
산의 침묵.
나무의 인내.
새소리의 기쁨.
별빛은 누구에게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
축복은 조건을 달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그에 적합한 미소 역시 계산되지 않지.
그 모든 것을 감사히 여길 수 있는 마음조차 우리에게는 축복처럼 무료로 주어졌다.
아직은 이런 이야기가 조금 이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당장 깊이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다만,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라도 아빠의 이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한 번쯤 천천히 생각해 보렴.
아빠는 네가 누구보다 현명하게 세상을 바라볼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실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남기는 이유는, 삶이라는 것이 지식만으로 걷기에는 때로 너무 감정적이고, 너무 예상 밖이기 때문이야.
혹시 살아가다 비슷한 순간들을 만나게 되거든, 그때 문득 이런 아빠의 이야기가 떠오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빠의 말이 정답일 필요는 없어.
그저 올리비아, 네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중심을 잡는 데 작은 생각의 재료가 되면 좋겠구나.
아빠는 늘 올리비아가 잘 해낼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만큼은 언제나 조건 없이, 조용히 네 곁에 있다는 것도 기억해 주면 좋겠다.
치체스터에서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