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불유 위이불시(生而不有 爲而不恃)
‘생이불유 위이불시(生而不有 爲而不恃)’ 노자의 도덕경 제10장에 나오는 말이다. “낳았지만 소유하지 아니하고, 행하지만 기대하지 아니한다.”라는 뜻이다. 세상 이치에 모두 부합되는 명언이지만, 자녀 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때 난 가끔 이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골프를 시작하려는 선수 부모들에게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해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기 때문이다.
흔히 골프선수의 멘탈은 선수의 부모가 망친다는 말이 있다. 무릇 모든 스포츠가 대체로 그러하지만, 특히 어린 골프선수 지망생들은 일찍부터 부모로부터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부모가 직접 운전해서 연습장까지 데리고 오가야 하고, 이름있는 레슨 코치를 알음알음 찾아가 수준 높은 비법을 배우러 다니려면 자연스럽게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선수의 멘탈에 부모는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 과정에서 자칫 선수의 인권이나 의견 등이 무시되거나 부모의 뜻에 맞추어 행동하다 보면 타율적인 인격이 형성될 수 있다. 부모도 전문 코치에게 선수를 믿고 맡겼으면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생이불유(生而不有). 자녀는 평생 나와 함께 할 수 없기에 그들 스스로 자립심을 키워주어서 자기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를 몸에 익히도록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미국 베스트셀러 『용감한 육아』의 저자인 에스터 워지츠키도 “자식에게 어려움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양육의 목표는 아니다. 힘든 경험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 아이들을 키울 때 부모가 할 일은 독립심을 키워주고 뷔페처럼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우는 5원칙(TRICK)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기도 했다. ①Trust(신뢰): 완벽한 부모는 없으니 자신을 믿고 아이를 믿어라. ②Respect(존중): 아이는 당신의 분신이 아니다. ③Independence(자립):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절대 해주지 마라. ④Collaboration(협력): 명령하지 말고 협력하라. ⑤Kindness(친절): 타인과 세상에 관심을 가지라고 가르쳐라.
골프는 특성상 본인이 시‧공간을 직접 주도적으로 장악하여 각종 상황판단을 스스로 결정하고 조치하는 스포츠인데 정작 선수는 골프 이외 일반 생활에서의 행동은 자율적이지 못하고 타율적이라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연습 일정 관리부터 대회 숙박 시설, 매니지먼트사와 후원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가능하면 선수가 직접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좋겠다. 부모에게 심한 의존적인 선수는 독립심이 약할 수 있다. 선수가 성인이 되는 순간부터는 대부분 모든 결정을 직접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운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직접 운전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회에서 받는 상금도 본인이 관리하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무릇 선수는 자존감이 살아 있어야 한다. 자존감이란 결국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만하자 공부 잔소리』의 저자 송인섭 교수도 “공부(골프)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먼저 자존감부터 높여라.”라고 했다. 자존감이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골프선수의 내면에 자존감의 상처만 누덕누덕 쌓여서는 제대로 된 행복한 골퍼가 될 수 없다. 인생이나 스포츠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실수와 실패도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하는 시행착오의 한 과정일 뿐이다. 상처로 얼룩져서는 안 된다. 부모는 스스로 일어서게 도와주어야 한다. 자존감 높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사람과 부닥치더라도 당당하다.
위이불시(爲而不恃).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 중 하나가 너무 큰 기대를 했다가 이루지 못하고 실망하는 경우다. 내가 공들인 만큼 본전 생각 때문에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된다. 부모 자녀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부모로서 할 바를 다하되 그 자체로 만족하자. 자식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큰 기대는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부담될 수도 있다. 선수들 가운데서도 간혹 자질과 능력이 매우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주변인들의 지나친 기대 때문에 그 심리적 압박감을 버텨내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지나친 관심과 기대는 때로 악영향만 줄 뿐이다. 오히려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는데도 결과가 좋으면 기쁨이 더 클 것이고 결과가 나빠도 으레 그러려니 크게 실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막 골프를 배우는 일반인이나 프로지망생 그리고 그 부모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골프는 결단코 단기간에 성과를 볼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마라톤보다 더 긴 레이스다. 줄 서서 기다리다 먹는 음식이 3배나 더 맛있다고 한다. 선수가 대회를 끝내고 나오자마자 바로 OB나 쓰리 퍼팅을 몇 개 했냐! 왜 그렇게 못했냐 따지고 크게 질책하는 부모도 때로 있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지만, 매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그 선수는 OB나 쓰리 퍼팅하는 순간이 되면 이젠 골프공이 험상궂은 부모 얼굴로 보일 것이다. 부모의 잦은 꾸중은 자녀를 방어적인 마음만 키우게 된다. 부모는 선수가 실수한 기억을 끄집어내기보다는 잘한 샷을 떠올릴 수 있도록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어떤 프로선수 아빠는 딸을 위해서 골프장을 사버린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 과도하게 좋은 여건을 만들어 준다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녀에게는 오히려 심적 부담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어떤 결핍이 있어야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되고 그러면서 의지력이 더 강해지는 법이다.
나는 딸이 골프를 시작하고 지금껏 대회 결과를 가지고 직접 크게 질책한 적이 별로 없다. 나의 인품이 훌륭해서도 아니다. 지도할 능력이 되지 않을뿐더러 자칫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자칫 부모의 습관적인 지적이 쌓이다 보면 자녀 또한 습관적으로 계속 주눅이 들거나 기가 꺾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한창 골프의 기초와 기본을 배울 때는 어느 정도 강제성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훈육한다면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일부 선수들은 직접 운전해 투어 활동을 다니기도 한다. 옆에서 잔소리꾼 부모가 일일이 간섭하는 것보다 스스로 책임감도 더 느끼고 성적이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물론 부모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지라 때로는 본인의 감정을 통제하기에 벅찰 때도 있다. 그러나, 모름지기 헌신을 각오한 부모라면 자녀가 골프나 인생에서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인내하며 기다려 주고, 도와주는 역할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노자가 살던 그때도 ‘생이불유 위이불시(生而不有 爲而不恃)’ 이것의 실천이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에 강조했을 것이라고 위안 삼으면서도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멋진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