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캐디'는 아무나 하나?

by Sea Dragon

사람들의 행위는 산술적인 계산법이나 인과적 상호작용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 더 빛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 따라서는 1+1=2+а, 혹은 1+1 〉 2가 되기도 하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라고 한다. 시너지라는 용어는 ‘함께 일한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synergos’에서 왔다고 한다. 시너지 효과는 상호 협력 작용이나 상승효과를 말한다. 골프에서도 골퍼와 캐디의 상호작용으로 이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얻을 수 있다.

캐디(caddie)의 어원(語源)은 여러 설이 있지만, 그 가운데 프랑스어 사관생도를 뜻하는 카뎃(Cadet)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골프광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퀸이 사관생도에게 자신의 골프 클럽을 들고 다니게 했다는 것이다. 캐디는 폭염이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도 무거운 골프백을 메거나 끌고 필드를 누비며 선수와 희로애락을 함께 한다. 때로는 육체적 어려움에 더해 말할 수 없는 감정노동의 고충도 불가피 감내해야 한다.

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RBC 헤리티지에서 우승한 48세 스튜어트 싱크는 아버지의 투어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싱크의 아들이 캐디를 자청하여 2승을 하였다. 싱크는 “아들과 하니까 두 사람이 함께 골프를 치는 것 같다.”라며 우승 소감에서 말했었다.


국내 KLPGA 대회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챔피언십 대회에서 2021년에 39년 만에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박현경 프로의 캐디는 KPGA 프로선수 출신이었던 아빠였다. 박현경 프로는 “오늘 우승은 90%가 아버지 몫”이라며 아빠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박 프로의 아빠는 캐디를 넘어서 딸의 코치이자 경기 운영을 직접 지휘하는 필드의 사령관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다.


최근 국내 KPGA에서는 아내 캐디 열풍이 불고 있다. 2022년 KB금융 리브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양지호 프로를 비롯한 최호성, 허인회, 이형준 프로는 아내 캐디와 함께 플레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디로는 스티브 윌리엄스가 있다. 그는 그렉 노면, 레이먼드 프로이트, 타이거 우즈, 아담 스콧 등 유명 스타 선수의 캐디였다. 타이거 우즈의 캐디로 1999년부터 2011년까지 12년 동안 메이저 13승을 포함하여 72승을 달성하였다. 2013년에는 아담 스콧의 캐디로 활동하여 호주 선수로는 처음으로 마스터즈 대회에서 우승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골프, 정신력의 게임』(2009, 네모북스)에서 캐디의 역할을 3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캐디는 전술과 전략 수립뿐만 아니라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맡는 ‘집사의 역할’이다. 스낵과 음료수 공급, 비 오는 날의 장비 준비에서부터 클럽을 관리하고 규칙으로 정해진 14개 이외의 클럽이 캐디백에 들어있지 않도록 확인하며, 우산을 받쳐 주거나 관중을 통제하는 경호원의 역할도 해야 한다. 또 선수가 혹시라도 실수로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지도 살펴야 한다.

둘째, 캐디는 선수에게 ‘심리학자’로서의 역할이다. 골프장 운영에 관한 전체적인 그림, 홀과 코스 그리고 경기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 등은 미리 선수와 세워놓지만, 일단 경기가 시작되고 나면 선수가 다음 샷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선수를 도와주어야 한다.

셋째, ‘수학자’로서의 캐디 역할이다. 티 혹은 페어웨이 어느 지점에서부터 홀까지 이르는 거리를 선수에게 정확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KLPGA는 올해부터 필드에서 거리측정기 사용을 해외 기준에 맞추어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수학자’로서의 역할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캐디는 모든 필드 전장(戰場)의 상황을 훤히 꿰뚫고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캐디도 프로선수처럼 뛰어난 골프 실력을 갖춘다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나치면 서로 갈등만 생길 수 있다. 선수들이 프로 자격증이 없는 아빠나 아내, 동생이나 오빠 등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이들을 캐디로 하는 이유는 캐디비용도 만만치는 않지만, 이들이 심리적으로 더 편하고 든든하기 때문일 것이다. 딸도 벌써 4년째 동생을 캐디로 하여 투어를 뛰고 있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간혹 서로 갈등이 발생하긴 해도 가족이니까 금방 화해하고 다시 필드로 나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부분 선수는 전문 캐디와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균형을 잘 유지하지만, 서로 잘 맞지 않을 경우는 바꾸기도 한다. 전문 캐디나 하우스 캐디 혹은 가족 등 누구든지 선수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골프는 2~3초 안에 샷을 날리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순서대로 치는 동안 기다리고, 다음 샷을 위해 또 걸어가는 반복이다. 스티브 윌리엄스는 선수가 샷이 끝나고 이동하면서 간단한 대화나 가벼운 다과로 의식적으로 긴장을 풀었는데 그가 선수와 즐겨 나누었던 얘기는 보통 골프를 제외한 럭비나 야구, 농구 등 모든 스포츠에 관한 얘기였다고 한다.

골프는 철저하게 자신과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하는 스포츠이지만 이처럼 캐디라는 훌륭한 협조자의 도움을 얻는다면 얼마나 신나게 플레이를 하겠는가. 좋은 인연으로 오랫동안 선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서로에게 행운일 것이다. 스티브 윌리엄스와 결별한 후 2011년부터 타이거 우즈의 캐디로 함께 하는 조 라카바는 우즈가 2014년 허리 수술 이후 투어를 떠난 4년 동안에도 다른 선수들의 합류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2018년 투어챔피언십 우승으로 타이거 우즈가 재기에 성공했을 때 그는 조 라카바에게 “함께 해냈다! 네 덕분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선수와 캐디의 관계를 넘어 의리를 지킨 아름다운 인간관계의 승리라고 보인다.

공자도 ‘삼인지행 필유아사(三人之行 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반드시 그 가운데 스승이 있다.’라고 했다. 골프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아마추어들도 라운드 하는 4인 중에는 반드시 고수가 있기 마련이다. 없다면 캐디가 고수이거나.


우리 인생에서도 흔들림 없이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곁에서 심리적 안정과 자신감을 키워주는 스승 같고 캐디 같은 존재가 있다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내 인생에서 더 멋진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냥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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