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오프(Cut-off)'는
또 다른 시작이다

by Sea Dragon

골프투어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컷오프다. 싫지만 선수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자주 온다. 투어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60위의 성적순으로 컷(Cut)을 통과하니까 나머지 절반 정도는 예선 탈락(컷오프)이다. 1부 투어 시드 전에서 탈락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우승은 못하더라도 매 대회 예선만 통과해도 다음 해 시드권은 확보할 수 있다. 매 시즌이 끝나면 컷오프를 한 번도 당하지 않은 선수가 간혹 뉴스에 등장하기도 한다. 현재 LPGA에서 활동 중인 유소연 선수는 60회 연속 예선 통과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어렵다. 점점 시즌이 진행되다 보면 우선 컷 통과를 목표로 하는 선수들이 많아진다.


‘골프는 우리의 삶과 같다. 골프투어에 참가한 선수들은 중간 성적이 나쁘면 시합 중에 탈락한다. 이것을 ‘컷오프’라고 한다. 우리 삶에도 수많은 컷오프가 있다. 입시가 그렇고 취직시험이 그렇고 결혼이 그렇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매일에서 수많은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하지만 그 고난이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 컷오프는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골프 경기에서의 컷오프도 그 선수의 끝이 아니라 거듭나는 과정이다. 그러나 많은 선수가 이 컷오프에서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컷오프는 우리를 강하게도, 좌절하게도 만든다.’ 〈『버디』 중에서, 만화가 이현세〉


처칠도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컷오프와 같은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이 없다면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선수들이 아쉽게 컷오프로 집에 일찍 돌아오는 날이 몇 번 반복되면 “수고했다.” “애썼다.” “힘내!” 이런 말조차도 듣기 싫어한다. 그럴 때면 서로서로 말을 아껴야 한다. 사랑하는 이가 홀로 고립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든데,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컷오프로 마음이 상해있는 선수에게, “다른 선수들은 잘만 하는데 넌 그렇게 오랫동안 했으면서도 그것밖에 안 되냐!”, “머리가 나쁜 거냐? 똑같은 실수를 몇 번이나 반복하게…” 이런 말을 한다면 선수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직장에서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지만 ‘따뜻함’이 사람들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칭찬의 말도 좋지만, 더 나아가서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해 주는 말은 따뜻한 말이다.’ 〈『듣고 싶은 한 마디, 따뜻한 말』 중에서, 정유희〉


어떨 때는 위로를 참아주는 사람이 가장 위로가 된다는 말도 있다. “누군가의 인생을 평생 업고 갈 수 있는 타인은 없다. 하지만 방향만 맞으면 얼마든 함께 걸을 수는 있다… 염치없이 부탁하는 입장이니 아주 최소한의 것들만 바라기로 한다. 이 시(poem)를 들어 달라는 것! 그리고 숨을 쉬어 달라는 것”이라고 가수 아이유는 노래 ‘러브 포엠(Love poem)’에서 그렇게 위로한다. 컷오프 골프선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런 날이면 들려주고 싶은 노래다.


‘또 한 번 너의 세상에 별이 지고 있나 봐 / 숨죽여 삼킨 눈물이 여기 흐르는 듯해 /

할 말을 잃어 고요한 마음에 기억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 I’ll be there 홀로 걷는 너의 뒤에 / Singing till the end 그치지 않을 이 노래 / 아주 커다란 숨을 쉬어 봐 / 소리 내 우는 법을 잊은 널 위해 부를게 / Here I am 지켜봐 나를 / 난 절대 Singing till the end 멈추지 않아 이 노래 / 너의 긴 밤이 끝나는 그날 /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곳에 있을게’


컷오프를 몇 번 혹은 연속해서 수차 겪다 보면 경기 참가에 대한 두려움조차 생길 수도 있다. “또 컷오프 되면 어떡하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다음 샷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럴 때 자칫하면 슬럼프라는 것이 따라온다. 슬럼프는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현상이기에 멘털 강화로 극복해야 한다. 골프는 결국 미스샷의 게임이다. 골프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선수는 오랫동안 운동을 계속하려면 지는 것에 익숙해야 한다. 패배와 컷오프 등의 실패에 눈물만 흘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만큼 더 강해져야 한다.


샷의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와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면 컷오프의 위기를 나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딸도 3번 연속 컷오프 이후에 바로 1부 투어에서 우승했다. 물론 이런 경험을 10년 이상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힘들어지고 다시 적응해 나가는 시간의 반복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선수나 가족이나 회복탄력성이 다소 좋아졌다고나 할까. 여전히 컷오프는 선수나 가족에게나 늘 새로운 도전이다.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 자기가 믿고 있는 신앙의 도움, 명상, 골프를 시작했을 때의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기, 충분한 휴식 등으로 컷오프와 슬럼프의 늪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우리는 망각과 기억을 동시에 품고 살아가기에 좋지 않은 기억을 빨리 잊어버린다는 것이 사실 그렇게 쉽지는 않다. 야구의 류현진 선수도 “잘한 것은 오래 가져가고, 못한 것은 빨리 잊는다.”라고 했다. 지나간 것에 대해 연연해 않고 쉽게 망각할 수만 있다면 훨씬 더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생각할수록 화가 더 치밀어 오르는 기억의 파편들도 있다. 시험 불합격, 사업이나 결혼 실패, 골프에서도 컷오프뿐만 아니라 중요한 순간의 미스샷, 매우 짧은 거리에서 놓친 퍼팅 등 실수투성이로 끝난 순간들을 계속 기억해 봐야 자기의 잘못한 실수에 대해 후회와 책망하는 일밖엔 없다.


‘실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 따위도 필요 없다. 컷오프로 나의 모든 게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프로 자격이 박탈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세상은 지금처럼 여전히 계속 즐겁게 돌아가고, 내일도 변함없이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 확률 게임인 골프에서 이번에는, 오늘은 잘 안 풀린 경우일 뿐이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 다시 시작이다. 그래서 컷오프와 동시에 다음 시합을 위해 연습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나락으로 떨어져 봐야 일어날 명분도 선다. 인생도 그러하듯이 실수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시작은 언제나 오늘이다.

keyword
이전 03화다음샷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