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 머리 위 저 하늘을 한 번쯤 바라보자.
저 하늘 너머에는 감히 인간의 눈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은하와 별, 행성과 유성체 등 광활한 대우주가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
2021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쏘아 올린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덕분에 우리는 135억 년 전 탄생한 은하와 약 1,000광년 떨어진 위치에 있는 형형색색의 가스와 우주 먼지를 경외의 눈으로 볼 수 있다.
지름 12,742km에 불과한 지구는 그야말로 우주 속 티끌에 불과하다는 표현도 어쩌면 과분할 정도이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 지구에는 생명이 존재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어서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서식하고 활동을 펼친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지구와 유사한 행성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우리 지구를 더욱 신비롭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구상의 다양한 생명체들이 우리도 잘 모르는 사이에 하나씩 멸종되고 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의 저자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이 책에서 46억 년의 역사를 가진 이 지구상에서 이미 4억 4천만 년 전부터 일어난 첫 번째 대멸종 이후 기후 변화, 인간의 개입 등이 어떻게 여섯 번째의 대멸종으로 이끌고 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가끔 발견되는 어금니 한 개 크기가 30cm나 되는 고생대 마스토돈의 흔적이나 최근까지 눈에 띄었던 파나마 황금 개구리의 멸종, 화석으로나마 존재감을 보여주는 다양한 종자 등 여러 사례도 보인다.
지금 멸종 위기에 놓인 코끼리와 사자 그리고 바다거북, 북극곰 등 이들조차 사라진다면 생태계에서 그들이 지금까지 수행하던 역할 때문에 균형이 깨지게 된다고 한다. 지구상에 사는 우리 인간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작 광활한 대우주 속의 지구, 이미 대멸종을 다섯 번이나 겪어온 우리는 그런 사실조차 잊고 지낸다. 저 우주에는 지금도 무수히 많은 행성이 폭발하고 생성되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이 땅 아래에는 수억 년 전에 멸종된 수많은 생명체의 흔적이 누구도 모른 채 겹겹이 묻혀 있다.
인간이 결국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라는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주장에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우주 속의 지구이자 우주를 품은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우리 인간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도 되묻게 된다.
달 탐사에 참여했던 에드거 미첼 美 우주비행사는 “달 위에 서서 지구를 바라볼 때 사람들의 관심, 세상의 불평등, 국제정치의 이해관계 등은 정말 사소하기 이를 데 없다. 당장 정치인들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이곳으로 데려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저길 내려다봐, 이 빌어먹을 놈들아!’”라고 말했다 한다.
오늘도 나는 우주가 아닌 치열한 지구 삶의 현장으로 들어간다.
이 프로젝트를 이번에 꼭 따야 해. 점수 한 점이라도 더 받아야 입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어...
우주가 어떠니, 지구의 대멸종이 어떠니.. 그딴 돈 안 되는 이야기는 그만 집어치우고 지금 당장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하란다.
하여튼, 알 수도 없는 저 우주와 이 지구를 늘 걱정하며 살아갈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우려한다고 슬프게도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에게는 아득한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란한 별들의 쇼보다는 눈앞에 하얗게 피어나는 구름과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 가끔 비 온 뒤에 나타나는 무지개가 더 아름답고, 지하세계의 멸종한 역사보다는 지상의 푸릇푸릇한 풀과 꽃이 우선 더 소중하다.
비록 찰나를 살아가는 우리도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한 줄기 연기와 재가 되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운명이지만, 그래도 다시 용기를 내어보자. 우주와 지구를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좀 더 마음이 포근하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좀 더 여여(與與)하게 살아가면 좋겠다.
이번 프로젝트에 실패해도, 시험에 불합격해도 좀 어떠냐.
망망한 우주 속 질박한 지구라는 곳에서 선택받아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축복인걸.
오늘 하루 삶을 단순히 성공과 실패로만 바라보지 말고 이 신비롭고 알 수 없는 우주와 지구의 숨어 있는 저 너머 이야기에도 잠시 귀 기울여 보자.
바로 이 시간에 이곳에 “나”라는 미미한 존재가 단순히 나 혼자가 아니라, 수억 년의 역사가 서로 연결되어 숨 쉬고 함께 하고 있음을 느껴보자.
“나”라는 존재가 주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지.
유한(有限)한 삶에서 과연 사사로운 다툼과 갈등이 얼마나 유의미(有意味) 한 것인지,
진정 지금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대승적(大乘的)으로 한 번쯤 살펴볼 일이다.
다시 균형을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