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골퍼들이 처음 골프를 배울 때 TV에 나오는 프로선수 스윙을 그대로 따라 하려고 무척 애쓴다. 당연하다. 멋진 스윙 폼에서 멋진 샷이 나온다. 스윙 자세가 좋아야 구질도 좋고 원하는 곳으로 멀리 정확하게 공을 내보낼 수 있다. KLPGA 프로선수들의 스윙을 언뜻 보면 모두 엇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나, 세밀하게 관찰해 보면 제각각 특색이 있다. 사람마다 신체 구조나 힘의 크기, 경험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발을 바꾸는 스텝 스윙으로 우승을 5회나 했던 김혜윤 프로도 있다. 낚시하는 폼의 낚시 스윙으로 유명한 최호성 프로도 “골프스윙에는 정답이 없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스윙을 완벽하게 연습해도 필드에 나가면 원하는 대로 잘되지 않는다. 야외에서 치러지는 골프는 날씨와 잔디 상태, 지형 등 많은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 신(神)이 아닌 이상 인간의 실수는 당연하다. 아니,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의 왕 제우스조차 실수투성이다.
비록 샷이 완벽하지 못했어도 어프로치 샷을 잘하면 된다. 그것마저 실수했다면 퍼터를 잘하면 된다. 이번 홀이 완벽하지 못했다면 다음 홀에서 만회하면 된다. 어쩌면 완벽한 스윙이면 좋겠지만 온갖 난관을 극복하겠다는 자신감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래도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이들은 자신의 작은 실수도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 어쩌면 "선수의 적(敵)은 바로 선수 자신이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수 있다.
완벽주의(Perfectionism)는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설정하여, 높은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신념에서 비롯되며, 이런 심리 상태의 사람을 흔히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즉 무엇을 하든지 완벽하게 해내려는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이다. 완벽주의자가 갖는 장점도 있다.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높은 동기부여와 양심적인 행동을 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난관을 극복하는 능력도 뛰어나며, 창의성과 완성도가 높은 결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반면에 자신과 타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다 보니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비판적이고,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는 매우 괴로워한다. 스트레스를 자주 받으며 실패를 두려워하고 우울증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협력보다는 경쟁을 선호하고 타인의 의견이나 감정을 무시하다 보니 대인 관계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완벽주의자가 원하는 삶은 실패가 없는 삶이다.
『Daily Philosopy』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와 스티븐 핸슬먼도 “우리 삶에 파괴적인 영향을 주는 이분법적 사고인 ‘모’ 아니면 ‘도’라고 불리는 인지장애는 우리 편이 아니면 적(敵), 좋은 사람이 아니면 나쁜 사람, 완벽하지 않으면 완전한 실패라고 본다. 이런 극단적 사고는 우울증이나 좌절감을 유발한다.”라고 지적했다.
군대에서도 “물 샐 틈 없는 철통 경계”, “완전 경계 작전 365일” 등의 구호를 늘 강조하지만, 간혹 철책선이 뚫리는 사고는 매번 발생한다. 사고가 발생하면 누군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지휘관들은 더더욱 완벽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일반 직장에서도 “이번 프로젝트는 반드시 완벽하게 수행해서 꼭 성공하자”라고 외치는 CEO들도 매 마찬가지다. 군대에서나 사회에서나 완벽주의자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융통성 제로의 완벽주의가 오늘날 대한민국을 눈부신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책임감이 투철한 일꾼들은 대부분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장남 장녀로 태어나면서부터 DNA에 ‘강한 책임감’이 새겨진 사람도 있을 테고, 매일매일 투쟁하듯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완벽주의자가 되어버린 이들도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내게도 완벽주의에 함몰되었던 시간이 있었다. 부여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안절부절 자신과 타인을 강하게 질타하고 곧바로 다음 목표에 매진해야 했던 그런 순간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니, 여명처럼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 삶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 더 여유롭게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려 한다. 나름대로 만족 수준을 스스로 낮춘다. 비현실주의적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려 애쓰는 것보다는 완벽할 수 없는 현실을 그냥 받아들인다. 오히려 나도 언제든지 실패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고마워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늘 이렇게 위안하며 살고 있다.
너무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말자. 그냥 그렇게 흘러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