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周) 나라가 쇠퇴하고 제, 진(晉), 초, 진(秦), 오 등 우후죽순처럼 탄생하던 춘추전국시대.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손무의 손자병법이 있었다.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을 대비하는 자들의 필독 전략서이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이 읽히는 고전이다. 예전에 대학원에서 손자병법 수업을 들으며 예습 분량을 매번 10번씩 자필로 써서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총 13편. 대략 6,600여 글자로 구성되어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이라 필사하는 데도 그다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손자병법의 핵심은 부전승(不戰勝 싸우지 않고 이김)이다. 그러나 병자(兵者)는 궤도(詭道 속임수)라 할 정도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라고 한다.
오늘도 전쟁 같은 하루를 치열하게 치른 우리는 삶을 흔히 손자병법에 빗대어 비교하기 좋아한다. 사실, 현실 세계에서도 부전승의 경쟁보다 협력, 합의 등으로 서로 윈(win)-윈(win) 하는 경우도 많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흔히 골프를 자신과 싸움이요, 인생 최고의 유희라 믿는 이들에게 스포츠에 불과한 것을 두고 마치 생사를 넘나드는 비유를 들어가며 따지는 것은 다소 멋쩍고 피곤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최고의 병법이기에 삶이나 골프에서도 대체로 대입하여 보면 얼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명언도 손자병법에 나온다. 적(彼)을 알고 나(己)를 알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 아니라 불태(不殆), 즉 위태롭지 않다는 얘기다. 이기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알아야 하고, 적과 나에 대한 정보를 모른다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골프에도 이 명언을 대입해서 살펴보자.
골프를 치는 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 적에 대해 알아야 한다.
골프에서의 적(상대)이란 맞닥뜨리는 선수나 골프장의 기상과 지형이다. 골프는 내가 샷을 잘 휘두른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다. 변화무쌍한 기상과 지형, 동반자의 전투 의지 등이 복합적으로 내게 영향을 주는 스포츠다. 상대 선수의 기세에 주눅이 들기도 하고 상대 선수로 인해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동반자를 우선 극복해야 한다. 동반자가 잘하든 못하든 내가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마인드가 흔들리지 않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전에 신중하게 이해득실을 먼저 따져보라는 손자병법 시계(始計)의 5가지 요소(道·天·地·將·法)에도 天(기상)과 地(지형)가 나온다. 기상과 지형의 요소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천(天)은 어둡고 밝음, 춥고 더움을 말한다. 바람의 세기, 강수 등 기상에 따라 구질과 탄도의 높낮이도 달라진다. 지(地)는 멀고 가까움, 험하고 평탄함, 넓고 좁음, 유리함과 불리함이라고 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공이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게 하려면 티샷할 때 티 높이를 낮추어야 한다. 물론 번개가 치거나 많은 비가 오는 경우 등 악조건에서는 전쟁터와 달리 골프장에서는 골프 자체를 중단시키기에 크게 문제는 안 된다. 손자병법 시대와 달리 현재 우리는 거리측정기로 거의 정확한 거리도 알 수 있다. 기상상태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여하튼, 손자병법에서는 적과 나를 비교하는 요소 중에도 천지숙득(天地孰得), 기상과 지형 상태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골프장 코스는 산악코스, 구릉코스, 하상코스, 임간코스 등 다양한 형태로 홀이 구성되어 있다. 필드마다 벙커, 러프, 좁은 페어웨이 등 지형에 따라 샷의 자세도 다를 수밖에 없다. 대부분 평탄한 연습장에서 주로 연습하다 보니 지형이 험하거나 다소 불편한 필드를 만나면 적응을 잘못하는 경향이 생긴다. 경사진 곳에서는 어떻게 자세를 잡아야 할 것인지 등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연습이 필요하다.
손자병법에도‘직선으로 가는 것이 빠른 것은 아니다, 보병으로 할지 기병으로 할지 그 이로움을 따진다(우직지계 迂直之計, 보기지리 步騎之利)’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를 골프에 적용하면 지형에 따라 드라이버로 무리하게 공략하기보다 우회하는 게 나을 수 있고, 남은 거리를 따져 다음 샷에 유리한 방향으로 골프채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티샷을 무조건 드라이버로 할 필요가 없다.
또한, 대부분 골프장 코스는 기-승-전-결을 거치도록 설계되어 있다.
첫 홀은 편안하게 출발하더라도 다음부터는 어렵고 쉬운 홀의 반복이다. 통상 인코스 마지막 16~18번 홀은 어렵게 만들어서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한다. 각 홀의 핸디캡(handicap, 1~18로 홀마다 할당. 1이 가장 어렵고, 18번이 가장 쉬운 홀로 홀별 난이도 표시)에 대한 정보도 그냥 흘리지 말고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골프를 흔히 플레이어와 설계자와의 두뇌 싸움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왜 저곳에 벙커를 만들었을까? 한 번쯤 의심할 필요가 있다. 바람이 부는 계곡에서 대부분 공이 그 방향으로 떨어지는 곳은 아닐까 하는.
골프뿐만 아니라 결혼이나 사업 등 일상생활에서도 이 방법을 대입을 해보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여 꼭 이겨내야 할 때, 대책 없이 덤비기보다 나와 마주해야 하는 상대는 누구인지, 나의 강·약점은 물론이고 상대를 잘 파악하여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병법을 잘 활용해 보자.
어쩌면 이기는 실마리나 자신감이 생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