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려 한다. ‘이번 시험에 합격해야지’하는 소박한 목표에서부터 ‘어떻게 살아가겠다’라는 인생의 커다란 가치 목표까지 어떻게 하면 내가 꿈꾸는 대로 잘 이룰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싯다르타』에 나오는 주인공 싯다르타는 사랑하는 여인 카말라에게 “만약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면, 누구나 마술을 부릴 수 있고 누구나 자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사색(思索)이란,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헤아려 생각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색을 통해 자신이나 타인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새로운 통찰을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싯다르타가 사색을 통해 뒤늦게 깨우쳤듯.
사색하는 힘이 약한 이는 간혹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폄하되기도 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언행이 습관적으로 불쑥불쑥 노출되어 주위를 아연실색(啞然失色)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는 보편타당하고 합리적인 상식을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마음이 심하게 병든 사람들이다.
사색은 언제나 어디서나 가능하다. 일상의 소음과 방해를 벗어난 새벽이나 조용한 밤에, 산책이나 출퇴근 시간에도. 나는 훌훌 옷을 벗고 그냥 몸에 하나도 걸친 것이 없이 목욕탕에서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며 집중할 때가 가장 생각이 잘 정리된다. 사색을 통해 자신의 핵심 가치, 목표, 감정, 행동, 결정 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다. 살펴볼 수 있는 화두(話頭)는 참 많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제대로 잘살고 있는가?”,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 등. 사색을 통해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며 자아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사색은 욕심과 노여움 속에서도 사리 분별을 가지게 해준다.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다는 의미다. 꼰대와 멘토의 차이점도 기다림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기다렸다가 상대가 조언을 구할 때만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멘토에 비해, 꼰대는 미처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나서서 간섭하고 충고한단다. 아니, 당장 상대의 말조차 끝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끊고서 자기 말만 계속 늘어놓는다. 기다림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사랑할 때도 기다림은 꼭 필요한 능력이고 덕목이다. 상대방의 마음이나 상황을 이해하고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것. 그것은 사랑의 기본이다. 처음에는 상대방을 오해했어도 기다리다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당시에는 나의 이상형이 아니었어도 기다리다 보면 이미 이상형이 되어있을 수 있다.
기다림은 신뢰와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기다림도 일종의 성장이다. 우리는 욕구가 당장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에 기다린다. 기다리다 보면 때로 불만족과 불안감에 휩싸여 폭발하거나 자신감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끝내 포기하고 상대를 탓하고 만다. 그렇게 해서 일그러진 관계는 얼마나 많은가. 어려운 상황을 잘 버텨내면 더 좋은 기회와 행운도 함께 따라올 수 있음을 잊어버린다.
가끔 간헐적 단식을 하다 보면, 다이어트에 도움도 되고 신진대사도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한두 끼도 잘 참지 못한다. 내시경 검사하느라 두 끼를 굶은 적이 있었다. 저녁에 흰죽을 먹고 다음 날 아침과 점심을 건너뛰고 속을 모두 비워내고 검사를 받았다. 검사 3시간 전까지 물이라도 먹지 않았다면 쓰러질 지경이었다. 단식이 주는 메시지는 식탐을 넘어서서, 절제 지향적인 삶의 태도가 물질 만능주의에 찌든 오늘의 우리를 살려내는 처방전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싯다르타의 이 세 가지의 해법이 어떤 의미이고 도대체 근원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가 궁금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貪嗔癡). 탐욕(貪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 여기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탐진치(貪嗔癡)는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말한다. 인간이 열반에 이르는 장애가 되기에 삼독(三毒)이라 하는 세 가지 번뇌인데, 소설 속 싯다르타는 사색을 통해 그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고, 기다림을 통해 그 노여움을 진정시키고, 단식을 통해 그 탐욕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살아가면서 그 무엇인가를 꼭 이루고 싶거나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오고 싶다면, 깊이 사색하여 당면하고 있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일단 기다려서 버티어보고, 어떤 탐욕도 물리치고 절제할 수 있는 단식의 지혜가 필요하고 중요함을 헤르만 헤세는 일깨워주는 듯하다.
이런 준비가 덜 되었다면, 아직은 때가 안 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