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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 Dragon Jul 05. 2023

첫 키스의 기억과 근육 기억

나는 첫 키스 장면이 생각나지 않는다. 결코 변명이 아니다.     


『기억의 뇌과학』의 저자 리사 제노바는 우리의 뇌는 의미 있는 것들만 기억하도록 진화해서 의미가 없으면 곧 잊는다고 한다.      

우리의 삶 대부분이 습관적이고 반복적이며 사소하다 보니 쉽게 잊어서 주의를 집중해야 간신히 기억하게 된다고 했다.


물론 첫 키스, 신발 끈 묶는 법, 자녀가 태어난 날 등은 오래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 의미 있다는 나의 첫 키스 장면조차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엔 분명 기억했을 터인데 어느 날부터는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도 궁금해서 모든 궁금증 해결사 챗GPT에게 물어보았다. 왜 기억나지 않느냐고.     


첫 키스는 대개 어린 나이에 경험하기에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짧은 순간이고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에 집중하느라 기억에 남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덧붙여 나이가 들면서 다른 기억에 묻혀 사라질 수도 있으니 기억하지 못함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다독여주었다.


무척이나 설레었을 첫 키스의 기억을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나처럼 사람에 따라 의미 없는 100번째 키스나 소중한 첫 키스도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수없는 동작의 반복으로 우리 몸에 오랫동안 그대도 각인되는 기억들도 있다. 소위 ‘근육 기억’들이다. 어린 시절에 배워둔 자전거 타기나 수영, 테니스, 골프 운동 등이 그러하다. 컴퓨터에서 글을 쓸 때도 우리는 활자체 위치를 모두 일일이 기억해 가면서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는다.     

근육 기억이란, 신체의 근육이 특정 운동을 반복할 때 그 운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움직임과 힘을 기억하는 능력이다.      


근육 기억은 뇌와 근육 사이의 신경 경로를 형성하여 발생하며, 운동을 반복할수록 더 강해진다. 사실은 근육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움직인 뇌가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근육 기억을 무한대로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운동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배우면서 반복하게 되면 뇌는 달라지고 뇌가 달라지면 몸을 움직이는 방식도 달라진다. 나이 들면 자연히 잊는 것이 아니라 연습과 숙달하지 않아서 잊히는 것이다.     

모든 스포츠는 근육 기억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골프도 정확성과 정밀도가 필요한 스포츠이기에, 골퍼는 골프 클럽을 치는 정확한 움직임을 무의식적으로 기억할 정도로 숙달해야 한다.

스윙 연습을 할 때는 자신의 스윙 폼에 집중하고, 영상으로 분석하거나 전문가의 피드백을 계속 받을 필요가 있다. 너무 가볍거나 무거운 클럽으로 연습해도 근육 기억에 혼란을 줄 수 있다. 골프 스윙은 신체의 모든 근육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평시에 전신 운동을 통해 근육 기억을 강화하기도 한다. 삼두근, 옆구리 근육, 가슴근육, 등 근육, 하체 근육 등을 강화하면 스윙 파워와 정확도도 향상된다.     


기억과 추억의 차이는 무엇일까.

기억은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을 그대로 떠올리는 것이고, 추억은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을 현재 시점에서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한다.

어떤 이는 기억은 머리로 추억은 가슴으로 느끼는 거라고 하고,

기억에 그리움이 쌓이면 추억이 되기에 추억은 기억+a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족여행을 다녀온 지난 기억에서 가족의 사랑을 동시에 떠올린다면, 추억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제 그 의미 있다는 첫 키스의 기억조차 제대로 떠오르지 않으니 당시의 아름다웠던 풋풋했던 사랑에 대한 추억마저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골프선수가 공을 잘 치려면 전신 운동을 강화하듯, 소소한 기억들이 즐거운 추억으로 오래오래 남아있으려면 일기나 글쓰기, 사진 촬영 등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결국 지난날을 추억하는 기쁨도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인데, 기억이 우선 떠올라야 이를 누릴 수 있다. 방금 주차한 자리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헷갈려서 그 넓은 주차장을 헤매지 말고 엇비슷하고 복잡한 주차장이라면 핸드폰 사진 촬영이라도 해두자.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고 뇌의 근육 기억도 믿지 못한다면 현대 기술의 힘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새로운 추억을 많이 쌓아나가자. 또 다른 다양한 반복 학습으로 즐거운 근육 기억을 많이 만들어서 언제든지 행복했던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어 낼 수 있게. 그리고, 그때 그 즐거웠던 추억을 그리워할 수 있게 해 보자. 남는 게 사진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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