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 상황을 걱정하다가 이탈리아,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으로 시선이 옮겨 가더니 이제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전 세계로 확산되자 세계 주요국의 주가가 급락하며 경제를 걱정하는 목속리가 커지고 있다. 이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서민들의 삶이 좌초하지 않도록 경제문제가 조속히 회복되기를기대한다.세계 곳곳에서 멈춰 서는 경제 활동의 위기 극복을 위해 긴급 재정 지원에 이루어지고 있다. 중앙정부의 의사결정과 별도로 지자체들이 제각각의 보편적 혹은 선별적 현금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언론들은 지자체 간 지원 수준과 지원 방식의 차이로 발생하는 형평성의 문제와 지자체별로 각기 처한 여건에 맞는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시간과 행정력 낭비를 지적하며 조속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오늘은 주일이다. 이러한 경제 사회적 어려움 속에서 교회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곰곰이 묵상한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오프라인 예배를 영상 예배로 전환하며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불안을 야기하는 중. 소형 교회들은 교회 운영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영적인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사회 속에서 빛의 사명을 감당한다는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 이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교단 차원에서 중소형 교회들의 운영비를 일정 기간 지원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물론 분당의 모교회에서 헌금을 거둬 개척교회의 임대료를 대납해주는 기사도 접하고 있지만 개신교를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교회들의 이러한 소문은 극히 미미히다. 교회 건물을 처분해 공동체에 속한 믿는 자들의 생계를 지원했다는 기사는 내 머릿속으로만 상상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늘을 향해 뻗은 수 억 내지 수 십억짜리 웅장한 건물을 자랑하며 수 천, 수만 명의 교세를 내세우는 대형교회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새벽마다 눈물로 무릎을 꿇으며 삶의 터전에 '폐업'이라는 안내판을 붙이는 믿는 자들의 생활을 깊이 있게 돌아보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헌금을 거둬들이는 데만 골몰하지 말고 생계가 막막한 처지로 내몰린 교인들이 있는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배당에서 수도 없이 들어온 말씀이 떠오른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11:1)". 이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은 '너는 물질을 후하게 나누어 주어라. 언젠가는 그것이 너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씀을 교회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결단은 왜 없는지 의아해한다. 교회와 건물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
초대 교회의 구제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자.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 믿는 자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며 교회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그리스 말을 하는 외국 태생의 유대인들이 매일의 구제 대상에서 자기들의 과부들이 제외된다고 히브리 말을 하는 본토 유대인들에게 불평을 하였다(행 6:1).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많아지고 신앙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서 많은 가난한 자와 과부들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구제사역으로 인해 사도들이 매우 바쁘게 되자 말씀 전하는 사역이 소홀해짐에 따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임명이 이루어졌다. 그만큼 구제활동은 공동체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사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으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직접적으로 현금을 지원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 시점에서 특히 교회들이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며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같은 공동체 내에 있는 교인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적극적인 구제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믿는 자들이 평소에 삶의 터전에서 주신 결과물들을 감사하며 온 힘을 다해 십일조와 감사헌금 등 다양한 명목으로 드린 재물들을 물 위에 던지는 교회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 지금은 공동체 내의 어려운 자들을 돌아볼 때다. 지금은 기도만 하라고 하지 말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건축미 자랑하는 화려한 건물과 수만 명의 교인을 자랑하는 교세, 그리고 세련된 음악성을 자랑하는 찬양대에 걸맞게 공동체 내에 눈물을 감추며 무릎 꿇는 지체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성공주의와 물량주의로 병들어가며 본질을 잃어 간다는 비판과 종교의 형식으로 상업주의를 포장하는 종교인들이라는 비아냥을 불식시키며 과감히 선제적으로 공동체를 돌아보는 교회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