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핸드폰을 점검하다 보니 카톡 문자가 하나 와 있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어머니께서 보내신 카톡이기 때문이다. 팔순을 넘긴 노모께서 스마트폰으로 바꾼 후 주위 사람들에게 사용법을 배워 처음으로 소식을 보내셨다. 추측하건대 시간이 꽤나 걸린 독수리 타법이었을 것이다. 정갈한 어머니는 사소한 것 하나 허투루 다루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분이다. 꼬장꼬장한 그 꼿꼿함이 없었으면 강원도 소도시에서 삼 형제를 모두 서울로 유학을 시킬 수 있으셨을까. 나도 자식을 키우고 있지만 선뜻 자신감이 생기질 않는다. 언제나 나보다 한발 앞서 가시는 모습에 마음을 여미곤 한다. 무뚝뚝한 아들이 요즘 허리가 망가져 몇 개월째 치료 중인데 걱정이 되셨나 보다. 당신이 나으시고 기른 오십 대 중반을 넘고 있는 장남을 하대하기가 안쓰러우셨던 모양이다. 그 반짝이는 총기는 여전하신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어머니가 우리 삼 형제 관련 모든 서류를 보관했다가 보내신 것 중에 모자(母子) 합작 미술대회에서 수상한 표창장이 있다. 나의 기억 속에서는 잊혀 있던 한 시절을 소환해온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소년한국일보 미술대회에서 입선한 상장도 있다. 마음 든든한 미소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오래도록 곁에 계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은퇴 장로 권사로 오십 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기시는 모습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신앙의 영역이다. 야곱처럼 험악한 세월을 살으셨어도 모세처럼 눈이 흐려지지 않는 건강의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