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을 위한 박물관 수업

8월 문화의 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by 헨리 월터

이 글은 지난 2025년 8월 27일 문화의 날을 이용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이후 적는 글이라는 사실을 먼저 밝혀둔다. 박물관을 방문하여 전시를 관람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 '지적 유희의 충족'이라는 한 가지의 의미만을 던지지 않는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혼자 공부해 온 박물관학 내용이 어떻게 실전에서 적용되는지를 확인하고, 더 나아가서는 지식을 통한 건전한 소통을 고민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문화의 날 중앙박물관 방문을 통해 나는 세 가지의 문제를 발견하였는데, 이는 아래와 같다.


No.1. 박물관의 운영비 생각해 보기(feat '뮷즈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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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과 2층 사유의 방 모습. 국내 초중고 학생들의 개학 이후 평일이라서 사람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최근 중앙박물관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붐과 함께 일일 방문객의 수가 갑자기 늘었다. 물론 새롭게 학기가 시작된 지금은 비교적 적은 수의 관람객만 보이지만, 방학이나 주말에는 장사진을 이루기 일쑤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관람객으로 인해 박물관의 분위기가 망가지는 것은 불가피하고 그것 때문인지 국립중앙박물관 운영 방식을 다시 유료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그렇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중에 박물관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 마련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현행 박물관학 수험서를 기반으로 보았을 때, 일반적으로 박물관이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01.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금

02. 관람객의 기부금과 박물관 회원으로부터 걷는 회비 및 복권 기금

03. 기획전시 및 특별전시에 필요한 입장료 징수

04. 전문 강좌 및 전시와 연계된 교육 프로그램

05. 기념품 가게나 음식점, 카페 등 부대시설 운영 과정에서 나온 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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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뮷즈샵. 왼쪽은 구내식당 옆이고 오른쪽은 상설전시실이 있는 1층이다. 두 곳 모두 관람객으로 붐볐고, 여기서 물건을 구매하는 관람객도 적지 않았다.

이제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에 집중해 보면 이곳은 모두에게 무료 개방된 전시다. 그렇더라도 전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하였던 재원 조성 방법과 연결된다. 즉 중앙박물관은 단지 정부의 지원만으로 유지되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곳에서 모든 특별전시 및 기획전시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이상(문화의 날 혹은 특별전 개막 기념 처음 며칠 동안 무료로 개방하거나 할인), 입장료를 받는다. 그리고 전시와 연계된 상품과 도록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는 물론이고 구내 식당과 카페, 심지어 전통다방도 갖추어져 있다.

물론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물품들은 시중에 유통되는 가격과 비교하였을 때 더 비싼 편이다. 매달 문화의 날 할인 적용이 되고 있더라도 저렴하다고 볼 수도 없다. 그렇게 해서 확보된 수익은 박물관을 운영할 비용으로 충당될 것이 명약관화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값을 보고 구매를 포기하거나 고민할 것으로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당연히 없지 않을 것이고 그 수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국립중앙박물관 안에서는 그 '당연할 수 있는' 공식이 쉽게 부정되고는 한다. 찾아갈 때마다 구내식당과 카페는 수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이고,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담담하게 묻는다. 왜 사람들은 박물관을 찾고 있는가? 그리고 비싼 값을 감수하고라도 그곳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소비할 때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적어도 이 질문에 대해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고 단지 소수의 이유에만 국한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관람객의 심리를 잘 파고드는 방법이야말로 박물관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은 자명하다.


No.2. 마나 모아나 : 문화적 편견이 아닌 본질로 음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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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모아나 특별전시실 내부의 모습. 조선관 상설전시실 쪽이 입구였고, 조선관 출구 방향이 이 전시의 출구였다.

마나 모아나 특별전은 오세아니아 지역의 원시 부족들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세아니아 지역에 있는 태평양의 여러 섬들은 매우 생소한 곳인데, 이 특별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무엇을 던져줄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한 바가 틀리기를 바라지만, 막상 이 전시를 접하였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될 점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바로 그들에 비해 우리가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우월의식이다. 다시 말해 원시적인 환경 속에서 온갖 동식물과 재해에 맞서는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안정적이고 편리한 문명을 살아가는 점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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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의 집에 새겨진 수호신 장식과 족장의 의식용 도구(좌), 전사를 상징하는 부적과 여성의 장신구(우)

그렇지만 그와 같은 시선만으로 전시를 감상할 때 한 가지의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모두 똑같다는 점으로,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전시는 '삶'이라는 본질적인 단어에 집중하였을 때 더욱 잘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점, 그리고 그 와중에도 각자의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구 등은, 문화의 발전 정도나 기준이 다를지라도 똑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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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을 채운 의례 목적의 노와 어로도구(좌),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진 화폐와 장신구(우)

무엇보다 한국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주제가 선사시대임을 상기해 보자. 다음으로 그 상태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 번쯤은 접하였을 원시적인 석제 및 목제 도구들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도구들의 용도와 더불어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였을지 상상해 보자. 시대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공주 석장리나 연천의 구석기 유적도 좋고 부산 동삼동의 조개무덤이나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와 온갖 뼈도구 등도 좋다. 이 점을 주목하였을 때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들과 다르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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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연설할 때 사용된 연단과 조상의 혼이 깃들었다고 여겨진 악어 모양의 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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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의식에 사용되던 조각상과 북, 그리고 조상신 조각(좌) / 뿌리식물인 얌의 풍작을 기원하는 데 사용된 가면(우)

본질인 '삶'의 연장선에서 민속학의 눈으로 전시를 바라보자. 그렇게 하였을 경우, 다음과 같이 깊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급속한 산업화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농촌과 관련된 기억이 많이 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에서 거주하다 이주하였거나 농촌과 관련된 기억이 많지 않거나 희박한 관람객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불과 120여 년 전, 아니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도 농촌의 공동 생활과 관련된 유산은 짙게 남아 있었다. 그 시기에만 하더라도 마을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하고 나이가 많은 연장자가 마을을 끌어나가며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였다. 그리고 영혼이 죽지 않고 사물에 깃들 수 있다는 믿음에 따라 의식이 치러지기도 하고 무당의 입김이 사람들을 좌우할 수 있었다. 이 기본 지점들을 인지한 상태에서 원주민들의 유산을 보았을 때, 비록 원시적이고 미신이 반영된 결과물 천지일지라도 유물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


No.3. 때로는 감정을 넘어서 무미건조하게

이 지점은 지난 몇 년 동안 나에게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였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웠다는 다소 상투적이고 교과서 느낌의 문체와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선 시대에 대한 무분별한 혐오 발언 또한 지양한다. 말 그대로 무미건조하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두루 보고 왜 이렇게 흘러갔는지 조금 깊이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작지만 큰 나만의 문제의식을 특히 상기되게 하였던 영역은 바로 조선 시대의 도자기와 아시아관 중 중국관과 일본관에 있는 도자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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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도자기로 알려진 분청사기의 모습. 왼쪽은 새나라 새미술 특별전에서 전시되었던 모습이고, 오른쪽은 상설전시실의 3층 도자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중앙박물관을 찾았을 때, 조선 시대 초기의 도자기들은 새나라 새미술 특별전과 상설관 3층의 도자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전기의 도자기들은 겉으로 보았을 때 고려청자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꽤 많이 보였다. 그리고 외형상으로 보았을 때 좌우대칭이 뚜렷하고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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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의 1층 조선관에서 확인한 도자기와 2층 기증관에서 본 달항아리

그런 모습들은 17~18세기에 제작되었다는 유물들을 볼 때면 '깨는' 느낌을 받는다. 엉터리로 된 좌우대칭은 물론이고 도자기 표면의 안료도 옅게 칠해진 경우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유물들이 당시에 누군가가 거주하였던 사랑방이나 궁궐 내부 등을 장식하였을 수 있고, 심지어 실생활에서 사용되었을 수 있음을 상상할 때면 기가 찰 노릇이다. 이와 같은 감정은 비슷한 시기에 청나라나 일본의 도자기들이 대외 수출을 목적으로 제작이 이루어졌음을 염두에 두고 비교할 때면 오래도록 찝찝하게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이 점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오늘날 정규 교육과정 혹은 수험서에서 한 번씩 나오는 자본주의 맹아론은 식민사학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산출된 과장된 산물이 맞다. (화사첨족으로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본주의 맹아론의 적절성에 비판적이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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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의 3층 아시아관에서 보았던 일본의 도자기와 청나라의 도자기. 모두 17~18세기 유물이고, 대외수출용이었음을 생각하면 조선 후기의 것과 차이가 극명히 드러난다.

그럴 때마다 문득 조선 후기의 인물인 초정 박제가의 저서 <북학의>가 생각난다. 특히 그의 책 첫 부분에서 언급되는 소비와 관련된 내용은 늘 깊고 강하게 울린다. 그는 재물을 우물물에 비유하며 쓰면 계속 나오지만 버려두면 말라버린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소비가 장려되지 못해 장인들이 기교를 살리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많은 사람들이 역사나 민속을 주제로 다루는 박물관에서 보고 있는 유물의 상당수는 초정 박제가가 지적한 것들에 포함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도자기 유물들을 보며 한 가지 더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박제가가 주장했던 소비와 관련된 논리가 어떤 식으로 다시 반박을 받을 수 있을지였다. 다시 말해 당시 조선의 단면이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방향과 어긋나게 흘러갔던 종합적인 요인에 관한 것이었다. 과연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를 연구하시는 분들이나 민속학을 다루시는 분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답을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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