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멈추게 하는가 : 괴테

바이마르에서 느끼는 괴테의 숨결

by 헨리 월터

독일의 심장부인 베를린에서 5박 6일 동안의 시간을 보낸 이후 내 걸음은 바이마르에서 멈추었다. (미리 언급하자면 베를린에서의 못다한 이야기는 추후에 따로 정리할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3박 4일 동안 머물렀는데, 베를린에 비하면 한적한 시골 마을 같다는 느낌을 꽤 강하게 받았다. 그렇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점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의 요소는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 중에 말년은 이곳에서 보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할 정도라고 하니, 현재 이곳의 위상이 그리 약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서 나는 한 명의 특별한 인물과 소통할 수 있었는데, 바로 요한 울프강 폰 괴테였다.


1. 다양한 관심사

20250617_133229.jpg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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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의 괴테가 살았다고 알려진 정원집과 말년까지 살았다는 집의 모습. 모두 바이마르 시내에 있다.

시골에 가까운 이 작은 도시에서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요한 울프강 폰 괴테로, 프랑크푸르트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의 상당한 시간을 바이마르에서 보냈단다.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괴테가 단순히 '파우스트'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작품을 쓴 인물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다. 조금 관심이 가는 사람이라면 슈베르트가 작곡한 것에 노랫말을 붙인 사람도 괴테라는 정도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괴테의 관심사는 단순히 문학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광학은 물론이고 식물학과 동물의 뼈 등에까지 관심을 보였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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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광물학과 동물의 뼈를 연구하는 것에도 관심을 보였음을 알 수 있었던 전시물

그의 이와 같은 관심사가 오늘날 전할 수 있는 메시지는 아마 협소하지 않은 시야의 중요성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그와 같은 태도가 쉽지 않음은 물론이고, 이렇게 글을 적는 나 역시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오늘날에는 학문별 세분화가 이미 상당 부분 이루어졌고, 그 결과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굳이 잘 알지 못하는 타 학문 영역에 발을 들여야 할 필요성을 몸으로 느끼지 못하기 일쑤다. 설령 관심을 보이더라도 잘못하면 논란이 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개입하려 들지 않거나 공식 언급을 피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암묵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협소한 공간 안에서만 열정을 다하는 순간, 정말 다른 영역의 지식이 필요할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냉혹한 진실을. 더구나 각자 필요로 하는 바와 관련된 조력자를 만나는 자체가 쉽지 않고, 원하는 만큼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보장 역시 쉽게 할 수 없다. 이처럼 시야가 특정한 영역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자체에 주목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괴테는 말없이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죽어서도 함께하고픈 우정, 그리고 엇나간 결말

20250617_105500.jpg 프리드리히 실러의 집. 괴테가 노년을 보냈던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 접한다. 그들 중 다수는 단지 스쳐 지나가는 인연 수준으로 끝날 것이다. 설령 학창시절의 친구나 대학 동기와 같이 비교적 오래 가는 사이였을지라도 결정적인 순간 앞에서는 갈라질 수도 있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죽어서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당장 곁에 있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괴테에게도 일생 동안 그러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빌헬름 텔'의 작가로도 알려졌던 프리드리히 실러다.


20250617_175035.jpg 프리드리히 실러가 죽은 후 묻혔다는 지하 묘실의 외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내부 공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비교적 유복한 삶을 오랫동안 누렸던 괴테와 다르게 실러는 가난하였고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아내와 어린 자녀들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에 남긴 재산이 많지 않았던지라 사후 공동묘지 내의 지하에 묻혔는데, 괴테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던 그와 죽어서도 함께하고 싶어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죽기 전에 실러의 유골을 자신의 곁에 옮겨둘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리고 괴테의 사망 후 그의 소원대로 지하 묘실에 있었던 실러의 유골은 괴테의 곁으로 옮겨지는 듯하였다.


20250618_145655.jpg 바이마르 대공 집안의 지하 묘실에 있는 괴테와 실러의 관. 그렇지만 후대에 유골을 감식한 결과, 유전자 불일치 문제가 생기면서 실러의 것은 빈 관으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150여 년의 시간이 지나서 유골을 감식한 결과는 뜻밖이었다. 실러의 유골이라고 가져온 것과 후손들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유골은 관에서 꺼내졌고, 현재 실러의 관은 텅 빈 채로 괴테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게 죽어서도 함께하고 싶었던 괴테의 작지만 큰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것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하지만, 그가 만약 이에 대해 입을 열 수 있다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대공 집안의 묘실을 나올 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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