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충무공과의 소통

by 헨리 월터

(이 글은 지난 2025년 11월 28일과 12월 1일에 걸쳐 관람한 충무공 특별전 후기임을 미리 밝힌다.)


1. 제목에 대한 "합당한" 의문제기

요즘 중앙박물관에서는 충무공 이순신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부정적인 뜻에서 나의 눈길을 잡은 것이 있는데, 바로 광복 80주년을 기념한다는 문구였다. 왜 굳이 광복 80주년을 내세웠을까? 물론 이순신이라는 한 사람이 오늘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애국의 대명사로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고, 지금도 사랑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광복으로 엮자니 너무 억지스러운 감이 들었다. 차라리 올해가 을사년이고 성웅의 아이콘이기도 한 충무공 이순신이 태어난 1545년도 을사년이라는 점에 맞추어 충무공 탄생 480주년 기념 전시로 제목을 잡았으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2. 같은 대상을 다양하게 보기

20251128_113804.jpg 조선 후기에 그려졌다고 알려진 수군 합동훈련 모습을 멀리서 보았을 때의 모습
20251201_104625.jpg 대상의 일부를 확대하거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원근감이나 세부적인 단면 등이 보이는 식으로 색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박물관에서 전시물을 대하는 데 있어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태도는 전시물의 정면을 응시하거나 놓인 위치에 따라 내려다보기 혹은 천장을 올려다보는 선에서 그친다. 그렇지만 똑같은 대상일지라도 거리의 차이에 따라 혹은 사람의 신장 차이 등에 따라 다른 면이 보일 여지는 충분히 남아 있다. 특히 쭈그려 앉아서 특정 대상을 올려다보았을 경우를 예로 든다면, 키가 작은 사람이나 어린아이와 전시를 즐길 때 이야기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접근 방법이 될 수 있다.


20251128_121334.jpg 멀리 떨어져서 본 울산성전투 모습. 정확히 어떤 모습들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 지점은 충무공 특별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특히 전시되어 있던 회화 작품이 그러하였다. 대표적인 회화 작품으로는 수군훈련도와 정왜기공도병, 그리고 일본의 유물 중 하나인 울산성전투 모습의 병풍이었다. 그 중 나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전시 유물은 울산성전투 그림이었다. 이 그림에는 7년에 걸쳐 이어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울산 왜성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멀리서 보았을 때 정확히 어떤 모습들이 보이는지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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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을 확대해서 각 부분을 자세히 보았을 때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게 흘러갔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막상 그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았을 때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울산에 세워진 왜성을 겹겹이 포위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모습은 물론이고 일본 지원군과의 교전 상태 등에서 이 전투가 얼마나 양측 사이에서 치열하였을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다. 실제로 임진왜란 막바지에 벌어졌던 전투 중 하나이기도 한 이 전투에서 조선과 명의 연합군은 13일에 걸쳐 성을 공격하였지만 점령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리고 그들에 맞섰던 가토 기요마사의 일본군은 전투 중에 식량과 식수가 고갈되어 말을 잡아먹어야 하였을 정도로 고통에 시달렸단다. 이 전투 이후 일본군의 사기는 더욱 떨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은 종결되었다.


후유증은 단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간 후, 가토는 자신의 영지인 구마모토 지역에 성을 쌓을 때 많은 우물을 파도록 지시하였고, 다다미 바닥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짜게 하였을 정도라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즉 그만큼 전투가 치열해서 현장에서 살아남은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통이었음을 생각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울산성 전투 모습을 표현한 이 전시물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되었다.


3. 전반전과 후반전 간의 심각했던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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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웅으로서의 이순신은 임진왜란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인지 6진 복무시절과 관련이 있는 전시물이 놓인 이유가 좀체 이해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처음에 언급한 제목에 대한 문제제기와 연결하였을 때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 전시를 둘러보면 전시의 앞부분은 이순신의 생애 중 임진왜란 전후와 관련된 내용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전란이 막을 내린 후 고인이 된 이순신에 대한 당시 사람들 및 후손들의 노력과 관련된 유물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느꼈던 바를 짤막하게 표현하자면 두 가지였다. 그 중 하나는 "사공이 너무 많아서 산으로 가버린 배"의 느낌이었고 다른 하나는 "용두사미"였다.


전자와 관련하여 먼저 이야기하자면 성웅으로서의 이순신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 이순신의 수식어로 늘 따라다니는 '구국의 성웅'이라는 칭호는 임진왜란 시기에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였다는 자체와 관련이 있다. 그렇지만 전시를 관람하던 중에 본 시전부락 전투 그림은 어색하게 느껴졌고, 초점이 흐려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시전부락은 지금의 함경도의 6진 쪽으로, 성웅으로서의 이순신을 만든 모습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전시 기획을 맡은 분들이 수군절도사 및 통제사 이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굳이 넣을 필요가 없는 부분을 건드리면서 되려 흐름을 방해하고 긁어 부스럼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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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에 봉안된 초상화와 충무공의 모습이 반영된 우표 및 화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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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의 이순신 인식과 관련된 전시물. 왜란 당시의 모습과 관련된 전시와 다르게 빠진 부분이 많았고, 전시물 구성도 빈약하였다.

다음으로 후대의 인식과 관련된 내용은 전시 전반부에 비해 빈약하였고, 그마저도 중요한 내용이 누락되었다. 가령 현충사와 관련된 내용을 예로 든다면 그 시작은 사실 숙종 임금 시기였다. 즉 아산 지역의 유생이 올린 상소가 받아들여져 이순신을 모시는 사당이 세워졌는데, 그것이 바로 현충사의 시작이었다. 그렇지만 현충사는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던 시기에 있었던 서원 정리의 풍파를 맞아 사라졌고, 일제강점기에 다시 세워졌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있던 시기에 성역화됨에 따라 전보다 규모가 더욱 확장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와 다르게 전시실 내에는 현충사의 성역화와 관련된 내용들이 충실히 반영되지 않았다. 단지 충무공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이후의 생활 속에 녹아들었고, 오늘날의 영정은 후대에 그려진 결과임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쳤다. (영정사진 중 하나는 초기 현충사에 봉안되었다고 하고 오늘날 익숙한 모습은 후대에 다른 화백이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4. 기념품 : 말없이 욕망을 자극하는 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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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특별전 기념으로 나온 굿즈 중 총통 모형의 머그컵과 펜홀더 비싼 값임에도 누군가는 구매하고 예상 외로 빠르게 물품이 떨어질 수 있다.

일전에 적었듯, 박물관에서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방법 중 하나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면서 상품을 파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번 중앙박물관 특별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특히 충무공이라는 구국의 상징과 합쳐지다 보니 영향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였다. 평일이었음에도 평소의 특별전보다 더 많은 관람객이 구매 여부를 망설이고 있었을 정도라면 이야기는 끝났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download.png 꿩 대신 닭이 된 거북선 모형 기념품

개인적으로 총통 모양의 머그나 펜홀더에 눈길이 갔지만, 처음에는 구매를 망설였다. 나의 선택을 유보하게 만들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가격이었다. 특히 총통의 모습을 한 머그컵은 합쳐놓으면 1문의 총통을 연상할 수 있지만, 막상 단품만을 놓고 보면 그 의미는 쉽게 내려간다. 심지어 집에 컵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던지라 직접 확인하였을 때는 "굳이?"라는 생각이 떨어지지 않았다. 펜홀더도 마찬가지로 가격 앞에서 고민하였는데 특히 소수만을 외투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나로서는 끌리지만 실용성을 놓고 보면 낭비라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구매하지 못하였다가 막상 돌아섰을 때 후회하였다. 앞으로 다시 찾아올 기회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날에 다시 전시를 찾아가서 확인해 보았지만 이미 품절된 상태였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의 격으로 소형 거북선을 사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하였다. 거북선은 그런대로 앙증맞으면서도 참 보기 좋았고, 나만의 부적을 겸해서 집의 책장 위에 장식해 두었다.


5. 마치며

충무공 이순신은 분명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강한 콘텐츠 중 하나로, 이는 임진왜란 당시에 나라를 구하였다는 영웅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렇지만 전시 자체만을 놓고 보았을 때 나는 이것이 잘 만든 편인가에 대해 답을 내리기 힘들었다. 단순 사실 전달만을 놓고 보더라도 신선한 주제는 아니고, 민족 감정을 조금만 내려놓고 보았을 때 왜 이것을 넣고 이것은 뺐는지 이해되지 않는 지점들은 분명히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특별전의 제목을 기준에 놓았을 때 앞으로 살아갈 모두에게 충무공은 어떻게 표현될 수 있고 그와 같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약해 보였다. 과연 우리에게 충무공은 무엇일까? 애국심 이상의 영역을 발굴해 내거나 그 이면을 찾는다면 무엇을 찾을 수 있고,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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