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은 2009년 이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유산 중 하나로, 이곳 역시 가을이 되면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의 궁궐만큼은 아니더라도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나는 모처럼 왕릉으로 가을 나들이를 떠났는데, 모처럼 왕릉을 둘러보면서 몇 가지의 짤막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혹자는 왕릉 영역이 굉장히 넓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 관람객들 중에서는 종종 그와 같이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왕릉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원래보다 크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왕릉 영역을 기준으로 100~200보 바깥으로 금표가 설치되어서 경계를 표시하였기 때문이다. 1보를 1.8미터로 잡으면 일반적으로 약 200미터 바깥, 최대 300~400미터 밖으로 나가야 집을 짓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왕릉의 규모가 작지 않았음이 특히 부각된 곳은 동구릉이었다. 이곳에 들어서면 출입구 한켠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능역으로 이어주는 홍예교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즉 동구릉은 지금보다 더 넓었지만, 토지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능역이 축소된 사례였다는 점이다. 이를 숙지한 상태에서 능역에 펼쳐진 숲길을 걷고 각 능역을 둘러본다면 조금은 다르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 왕릉 안으로 들어가서 산책을 할 때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지점 하나가 있다. 그것은 능역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과 능역 내에 있을 때에 느껴지는 차이 자체다. 왕릉을 방문하였을 때 막상 입구에서 전경을 보면 높은 층의 건물로 인해 전경이 많이 가려지기 일쑤다. 이와 같은 모습은 조금 떨어진 곳의 높은 곳에 올라가 보더라도 비슷할 수 있다. 그렇지만 능역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서 숲길을 걷던 중에 뒤를 돌아보면 고층건물과 온갖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의 풍경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즉 능역 안에서만큼은 온전히 왕릉과 이를 둘러싼 환경에 자연히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근처에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누군가가 내려다본다는 자체는 수려한 경관의 파괴는 물론이고 신성한 공간을 침범하는 것이 아닐까?
요즘 종묘 주변을 재개발하는 문제는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이 참에 낙후된 지역을 재개발해서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지역의 경관을 최대한 원형에 맞게 보존하는 선에서 제한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고층 건물에 대한 욕망의 출발은 '남들보다 더 좋은 전망과 쾌적한 환경 영유' 혹은 '문화유산 여부에 상관없이 깨끗하고 세련된 공간' 같이 누구나 품을 법한 본능이었을지 모른다. (여기서 굳이 종묘 문제를 끄집어낸 이유는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는 다른 문화유산인 조선왕릉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에 소재하였거나 서울과 인접한 곳의 왕릉들은 하나같이 주변에 고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마음을 다수가 품고 마구 건물을 올린 순간 경관은 빛을 잃는다. 그리고 그 한 순간의 개발로 인해 유네스코 등재 목록에서 빠진 순간,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박물관으로 대표되는 문화기관이나 전국에 산재한 주요 문화유산이 위치한 사적들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일차적으로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 근처는 낙후 정도가 심각하지 않는 한 근처에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상권이 형성되기 쉽다. 이는 해당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음은 물론이고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과 문화활동과 같이 사회문화적 요인과도 직결되기도 한다. 특히 현재까지 남은 역사문화 자산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빈약한 한국에서라면 치명적인 역효과로 돌아오기 쉽다.
물론 한 가지는 분명히 인정하고 넘어가야 옳다. 문화유산 주변의 생활 공간이 위생이나 안전 등의 측면에서 심각하게 낙후되어 있다면 그에 따른 재개발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 재개발이라는 단어 자체가 곧 고층건물로 동치될 수 있음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비록 아담하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문화유산의 경관이 망가지지 않을 수준으로 개발하였을 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찾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은 특정한 지역 내의 사람들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특히 유네스코 유산 중 하나로서 등재된 상황이라면 그 중요성이 더하면 더했지 덜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금곡역에서 전철을 탈 때 완성을 목전에 둔 고층건물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