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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로 철학하기] 인간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이 글에는 수리남에 관한 중요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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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기간에 수리남을 몰아서 봤는데요,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만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워낙 오징어 게임이 작품성이나 재미 독창성이 뛰어난 작품이라서요. ‘수리남’은 오징어 게임보다는 덜 재미있고 훨씬 덜 독창적이며 오징어 게임이 많이 많이 철학적인 데 비해서 수리남은 아주 약간만 철학적입니다. “1년 전 오징어 게임이여 다시 한번”을 외치는 우리 국뽕 언론들의 기대는 조금 현실이 되기 어려울 듯합니다. 철학보다는 재미와 몰입을 강조하는 영화에서 철학과 재미가 만나는 지점을 고르자면 바로 포인트는 이 세 개가 될 것 같습니다.

1) 인간은 어떤 이유로 어떤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까?

역사상 최고의 거짓말쟁이는 동서고금 모든 역사가가 단 한 명을 지적할 겁니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죠. 거짓말을 주제로 한 멋진 역사 이야기 ‘타인의 해석’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에 따르면 히틀러는 자신도 완벽하게 속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진정성 있는 거짓말쟁이였습니다. 무솔리니를 포함해 체임벌린 영국 총리. 달라디에 프랑스 수상 등 그를 만나는 모든 정치가들은 그가 너무나도 진정성 있게 말을 하며 상대에게 그 진실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모두를 완벽히 속이고 원하는 전쟁을 몰래 일으킬 수 있었죠. 심지어 이 세상에서 가장 의심이 많은 스탈린도 완벽하게 속여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인류 최강의 군대를 만나게 해 준 이가 히틀러였습니다. 스탈린이 전쟁 소식을 들으면서 처음 했던 말이 바로 이 말이라고 했죠. “히틀러가, 히틀러가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속지 않은 인물이 바로 처칠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마터면 처칠도 히틀러에게 속을 뻔했습니다. 31년 대통령 선거에 나가기 전의 히틀러를 독일 뮌헨을 방문했던 처칠 당시 장관이 만나고자 했습니다. 둘은 정말 만날 뻔하다 히틀러가 다른 일정이 생기느라 약속을 펑크 낸 적이 있답니다. 글래드웰에 따르면 처칠은 카페에 앉아서 기다렸다고 하는군요. 만약에 히틀러를 만나 처칠이 히틀러에게서 좋은 인상, 이 사람 정말 진실된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면 2차 세계대전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습니다. 처칠은 그를 만나지 않았기에 그에게 속지 않을 수 있었죠. 역설입니다.

‘수리남’의 등장인물들은 악당 황정민을 포함해서 모두가 거짓말을 합니다. 국정원 요원 박해수는 물론이고 그 중간에서 이른바 한국판 무간도를 헤맸던 조우진 그리고 돈과 정의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던 사업가 하정우까지 모두가 거짓말을 합니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죠. 황정민의 거짓말은 돈이 목적입니다. 돈처럼 사기성이 짙은 물건이 있을까요? 돈의 사기성을 잘 파악한 인물이 바로 칼 마르크스였죠. 황정민은 뼛속까지 현실주의자이고 현실을 움직이는 유일한 힘은 돈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압니다. 돈을 위해 속이고 그리고 속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의심하고 여러 방법으로 검증했죠. 영화의 긴박감이 6시간 내내 이어진 것은 속고 속이는 괴정에서 배우들이 보여준 신들린 연기 덕분입니다.

하정우의 거짓말은 생존이 목적입니다. 그는 황정민의 실체를 알고 그 때문에 날린 돈 5억(누구에게는 전 재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원을 국정원으로부터 약속받고 거짓말을 시작했죠. 그가 거짓말을 한다는 낌새만 황정민에게 들켜도 그는 죽음 목숨입니다. 그의 거짓말은 생존을 위한 거짓말이기도 하지만 정의감에 기인한 거짓말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구든 죽일 수 있는 황정민을 속이는 데는 어떤 양심의 가책도 필요 없었죠. 그에게 진실(자기 진짜 정체)은 황정민에게 이국땅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황천길입니다. 그는 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죠.

박해수와 조우진이 하는 거짓말은 국익을 위한 거짓말입니다. 이른바 선의의 거짓말이죠. 국가를 위해 또는 국가보다 더 큰 인류를 위해 하는 거짓말은 칸트 같은 지독한 의무론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철학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칸트라면 조우진은 “너 쥐세끼지?”라고 묻는 황정민에게 “저는 쥐새끼가 절대로 아닙니다”라고 답해서는 안 됩니다. 침묵하든지 동문서답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답이죠. 그러면 결국 조우진은 죽음을 면치 못하고 7년간 벌여온 국정원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을 겁니다. 극단의 의무론에 치우치면 현실은 의무론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건 역사와 인간의 본성이 증명을 해줍니다.

누구는 돈 때문에 누구는 생존 때문에 누구는 국익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인간은 거짓말을 통해 자신의 적을 속이고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아 유전자를 남겼고 그 유전자를 지닌 인간은 또 다른 거짓말로 또다시 DNA를 이어가왔기 때문에 거짓말은 인류라는 종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했다는 주장이 성립됩니다. 유튜브 페이스북의 좋아요 등 SNS 역시 불행한 자신을 속이고 타인에게 잘 나가는 것처럼 남들을 속이고 싶은 욕망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죽죽 성장해온 것이죠. 마약왕이든 아니면 실리콘밸리의 창업왕이든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즉 돈을 벌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누군가를 속여야 합니다. 사기꾼은 결과적으로 사업이 실패해서 결과론적으로 발생하는 일이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인간의 본성은 아닙니다. 인간이 거짓말을 하도록 진화되었다는 것과 인간의 본성은 타고난 사기꾼이라는 건 좀 다른 이야기죠.

2) 진보의 상징 개신교는 왜 타락의 상징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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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오징어 게임, 지옥에 이어 이번 작품에까지 악역으로 등장하는 데 종교의 역할이 한몫하고 있습니다. 실존 인물이 목사가 아니었는데 윤종빈 감독이 각색 과정에서 그를 목사로 만든 건 분명 특정 종교를 믿는 신도분들에게는 기분이 나쁜 불순한 의도라고 볼 수 있죠. 황정민의 직업을 목사로 설정한 것은 윤종빈 감독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일반인들의 인식을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윤종빈 감독은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에는 충실하게 상업영화의 길을 걸어왔고 상업영화는 두 가지를 절대 버릴 수 없습니다. 정의의 실현과 국민정서죠. 상업영화감독은 소비자를 펀슈머로 이해하고 가잼비를 무엇보다 따지는 요즘 MZ세대가 원하는 대로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감독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감도의 타협이죠.

지금 천주고 개신교 불교 등 국내 3대 종교 중에서 가장 많이 욕을 먹고 있는 종교는 다름 아닌 개신교입니다. 특히 MZ세대들에게서 외면받고 있죠. 물론 MZ세대는 불교나 천주교에 좀 더 호의적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분명 개신교에는 신자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부정적입니다. 천주교는 개신교와 같은 신을 믿고, 같은 경전을 쓰고 또 창시자가 같은 종교인데도 두 종교의 거리는 마치 이슬람교의 수니파와 시아파만큼 멉니다. 신부님들은 차라리 스님이랑 대화하는 게 편하다고 할 정도로 두 종교는 뿌리가 갚은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천주교의 타락, 교황의 무소불위 권력, 마녀 사냥, 종교재판, 면죄부를 발행해 돈만 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속인 점 등 천주교는 구약이 아닌 구악이었죠. 그런 종교를 개혁하고자 일어난 현재의 개신교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가장 타락한 종교로 타 종교인이나 비종교인 모두가 비판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개신교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들은 금전 숭배, 독선과 극우에 가까운 정치성이 되어버렸죠. 그리고 일부 목사들의 탈선과 목사 출신으로 수많은 사이비 종교들이 유달리 한국에서 많이 탄생했다는 점은 개신교에 대한 대중들의 부정적 반응을 더욱 재촉했습니다. 개신교의 아버지인 천주교 역시 살아있는 인간(예수님)을 신격화했고 이슬람 및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타자들에게 그렇게 가혹했지만 지금의 천주교는 개신교보다는 훨씬 더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현실 참여를 자제하는 불교보다도 오히려 진보적으로 인식되고 있죠.

영화는 특정 종교 비판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가잼비를 겨냥한 일종의 소도구로 쓰고 있는 게 분명하죠. 윤 감독이라고 가톨릭이 지배하는 남미나 이슬람이 지배하는 중동에 개척교회 목사로 나서서 신앙을 전도하려는 정말 순수한 종교인을 비판하고 싶은 심정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현실에 참여하며 그 현실을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부정적 현실을 정당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현재 한국의 개신교에 대해 타 종교인이나 무신론자들이 갖고 있는 불신은 충분히 공유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3) 하정우가 돈과 정의 가운데 정의를 선택한 진짜 이유

저는 이미 결론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수리남이라는 나라를 잘 알고 있었죠. 사실 축구를 정말 좋아하고 축구 대표팀 중에서 국대 다음으로 네덜란드를 응원하는 저는 수리남을 미리부터 잘 알고 있었죠. 굴리트부터 클루이베르트까지 어찌 수리남을 빼고 네덜란드 축구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하정우의 선택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하정우가 돈과 정의 사이에서 조금은 혼란스러웠던 표정 변화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황정민이 그동안 콜롬비아 코카인의 중개자였던 처지에서 생산자로 변신하는 장면에서 그 혼란이 두드러졌죠. 혹시 나라면 월 10억 보장, 그중에 5억을 고국에 있는 처자식들에게 보내주겠다는 황정민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물론 떳떳한 사업이 아니라 범죄 그것도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 마약 조직의 2인자가 된다는 것 역시 쉬운 선택은 아니나 하정우의 신란했던 삶과 그에게 돈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생각해보면 하정우의 선택은 제가 볼 때는 오히려 예외적입니다.

그가 정의를 선택한 이유는 타고난 도덕성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개인적인 기질이 더 크게 작용했습니다. 솔직히 돈을 벌어본 사람 중에 자신이 싫어하는 일로 돈을 번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돈을 못 벌어 본 그도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은 절대 마약사업으로 돈을 벌면서 행복할 수 없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관객이 원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어쩌면 황정민이 교인들을 착취하는 수준을 넘어서 어린아이들까지 마약중독자로 만드는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짓거리를 하는 모습을 목도하지 않았다면 다흔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의감이 돈을 그렇게 쉽게 이기지는 못했을 겁니다. 하정우는 바탕이 기본적으로 선량한 사람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철학을 갖고 있는 양심적인 비즈니스맨이었죠. 돈을 버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가 영혼이 파괴되는 일을 감당하기에는 그의 양심의 무게는 컸습니다. 물론 마약왕 카르텔이 어떤 비극적 운명을 맞는지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일이라 하정우가 단기 이익보다는 장기 이익을 선택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마피아의 2인자가 어떤 운명을 걸었는지도 검색만 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죠. 특히 미국 정부가 거의 군대를 파견해 마약범죄를 소탕하는 그런 상황에서 세계 최강 데국 미국과 척지는 마약 산업으로 돈 벌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황정민의 속, 겉은 하느님의 의지 속은 돈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다 하는, 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즉 황정민을 철저하게 불신했기에 그는 돈 대신 정의를 선택했을 겁니다.

영화를 볼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면서 보았는데 이틀 정도 후 영화를 곱씹으며 글을 써보니 수리남은 오징어 게임 급은 아니지만 잘 만든 그리고 재미있는, 그리고 2006년으로 그 당시는 시장이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지는 않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여기저기서 느끼게 해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WBC나 박찬호 에피소드가 그렇죠. 저는 국뽕은 아지만 오징어게임의 에미상 수상 등 정말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경쟁력은 세계 정상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대중문화만큼은 G2의 한 자리는 중국이 아니고 한국이며 앞으로도 당분간 그 추세는 이어질 것이 거의 확실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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