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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사회주의 중국이 처음부터 자본주의를 했다면?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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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으로 의미가 있고 꼭 읽어볼 만한 책이죠. ‘지리의 이해’를 보면 이런 재미있는 가설이 하나 등장합니다. 만약 일본이 사회주의를 하고 중국이 자본주의를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재미있는 가정이죠. 저는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 나른 많은 책을 읽고 지식을 확보한 사람이라 두 국가 민족성(중국은 한족)을 생각하면 중국이 자본주의를, 일본이 사회주의를 하는 것이 맞다는 걸 인정합니다. 일본인들은 훨씬 더 공동체 정신이 강하고요, 한 번 뽑았으면 정년까지 회사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사회주의적인 나라입니다. 실제 일본에도 공산주의자들이 많았고 1945년 패망 후에 가장 민심을 사로잡았던 정당은 일본 공산당이었습니다. 맥아더가 공산주의라면 치를 떠는 사람인지라 차라리 파시스트 잔당이 모인 자민당이 파트너로 제격이라고 생각해서 철저하게 공산당 대신 자민당을 밀어주었기 때문에 선거로 보수가 집권하게 된 계기입니다. 일본이 사회주의를 넘어 공산주의로 갔다면 소련이나 중국보다 잘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특유의 침략성 죽음에 대한 숭배 등은 가라지면서 주변 국가들을 괴롭히는 일도 없었겠죠.

중국은 어떤까요? 지나가다 사람이 강도를 당해도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중국인입니다. 남의 문제에 관심이 없고 오직 돈 밖에 모르는 겉도 돈 속도 돈인 나라가 중국이죠. 그런데 그런 중국인들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사회주의를 선택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 역시 소련 아니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소련의 막강한 육군은 독일과 싸운 1군을 빼고 2군만으로도 종이호랑이인 일본 관동군을 1주일 만에 대파하고 일본군이 갖고 있는 모든 무기를 린바오가 이끌던 공산당에게 넘겼습니다. 그 덕에 공산당은 국민당에 대한 전면 지원을 주저하던 미국과 달리 소련의 빠른 대응 덕분에 내전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그냥 지켜보고 살아남은 자에게 붙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죠. 혁명의 대의 어떤 명분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국민당의 부패에 질려 버려서 국민당이 싫어서 공산당을 지지한 거죠.

결국 일본이 자본주의를 택한 것과 중국이 공산주의를 택한 것은 지정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소련 옆에 있었고 미국은 아시아로 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나라가 일본이죠. 일본을 개항시킨 뒤 일본 군대를 서구화시키고 일본을 근대화로 이끈 나라는 미국입니다. 루스벨트 민주당 정권이 등장하기 전 장기 집권하던 공화당은 일본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물론 오렌지 계획으로 공군력을 이용해 일본이 위험이 된다고 판단하면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발상을 한 정부는 공화당 정부지만 대체로 일본은 2차세게대전의 4년 기간 맹렬하게 적으로 싸운 기간을 빼면 미국과 아주 좋았습니다. ‘나비 부인’이 괜히 등장했겠습니까? 미국의 지성은 일본이라면 깜빡 죽죠. 그 자신이 일빠이며 일본 그림 애장가인 피터 드러커의 명언 “일본의 서구화가 아니라 서구의 일본화가 맞다는 말리 증명되죠. 사실 그리고 지금 유럽 중동 그리고 이스라엘까지 포함해서 미국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심지어 일본인들은 미국에 대해서 모성애를 느낀다고도 하죠. 제가 볼 때 모성애는 미국이 원래 없는 나라지만 부부의 정 정도는 인정할 겁니다. 반중 정서가 아무리 강해도 중국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우리는 그 대답을 너무나 잘 압니다. ”만약 미국이 한국과 일본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어디를 선택할까? “ 일종의 소피의 선택 미국 버전이죠. 제가 답을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 알고 계실 겁니다. 여하튼 일본은 국민성과 달리 순전히 미국과 가장 가까운 아시아 국가라는 이유로 근대화와 산업화 자본주의 모두 성공한 것이고 그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나라는 분명 우리나라가 맞습니다.

막약에 중국이 자본주의를 덩샤오핑 때가 아니라 마오쩌둥 때부터 했다면 어떤 일이 우리에게 벌어졌을까? 해답은 간단합니다. “한강의 기적은 없었습니다.” 중국이 먼저 저가로 세계의 공장을 자청하며 가격 경쟁력에서 70년대 우리나라를 압도해버렸을 겁니다. 우리는 일본과 미국의 지정학적 관계 때문에 피해를 입었지만 덕도 봤죠. 루스벨트 민주당 정권이 영어에 능통한 쑨원의 딸들에게 둘러 쌓여 친일에서 친중으로 돌아선 것이 일본이 전쟁을 선택한 계기가 됐고 일본은 전쟁을 막기 위해 대공황을 일으킨 하버트 후버 전 공화당 대통령을 만나 가교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일본이 예전의 일본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일본을 손보지 못하면 아시아에서 영영 물러나야 할 것이라는 계산 하에 일본과 전쟁을 각오하며 석유 근수 조치를 취한 겁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진 뒤 일본이 배운 교훈은 중국과 한국에게 용서를 빌자는 게 아니라 미국의 국익을 일본의 국익만큼 생각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아시아 영업권을 따내는 지부장으로 자신의 역할을 변경했습니다. 그 괴정에서 군부는 사라졌죠.

일본이 몸에 맞는 옷인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를 선택한 결과 우리는 너무나 큰 피해를 받았고 중국은 몸에 맞는 옷 자본주의 대신 전혀 안 맞는 옷 사회주의를 택한 덕분에 우리가 70년대 한강의 기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중국을 고마워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맥락은 언제든 변합니다. 지금의 중국몽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아직까지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인 걸 보면 중국과 일본 한국이 엮어내는 동아시아의 역사는 또 한 번 큰 변화가 생길 조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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