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예상된 악재는 악재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죠. 연준의 3 연속 자이언트 스텝은 이미 모두가 예상했는데요. 시장은 경기와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달러 초강세와 연준의 금리 인상에 따른 우리나라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동반 침체는 우리나라 경제가 얼마나 미국에 의존적이며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말이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죠. 거의 언제나 경상수지 흑자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올해만큼은 수출 적자도 피할 수 없을 듯한데요, 중국과 홍콩을 합쳐서 30%를 중국에 수출하는 현실에서 무역 수지 적자를 면할 수 없다는 서실 역시 우리 경제가 미국 정확히는 미 연준의 스탠스에 거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저는 친미파지만 우리가 마국과 운명공동체인 현실이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이런 마당에 중국은 이미 수십 년 전(정확히는 클린턴 정부 시절)부터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국제 사회에서 미국을 대체하려고 노력해왔다는 주장의 책이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대선 캠프에서 중국 전략을 설계했던 러쉬 도시의 책 ‘롱 게임’은 미국이 중국에 대해 느끼는 공포가 얼마나 크고 중국의 도전에 맞서는 것이 당을 초월해 미국의 국운이 걸려 있음을 증명해주는 책이죠. 책의 공동 번역자는 놀랍게도 한겨레 신문의 베이징 특파원이자 중국통으로 알려진 박민희 기자입니다. 박민희 기자는 ‘짱개주의의 탄생’의 저자 김희교 교수가 실명으로 비판했던 인물인데요, 박 기자는 진보 좌파의 관점에서 중국 정부가 지닌 문제점을 비판해 온 인물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미국 대신 중국이라는 친중파의 비율은 5%가 안 되지만 그 진영을 대표하는 이론가인 김 교수 입장에서는 한겨레처럼 반미적인 신문조차 중국에 비우호적인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입니다.
저자는 시진핑의 중국몽이 있기 전에 이미 중국은 전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그 지리를 노리려고 노력해왔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도광양회’와 흑묘백묘론을 앞세워 중국의 자본주의화를 주도한 덩샤오핑 역시 속으로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하죠. 바로 미국을 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극우와 네오콘의 지적 토대를 제공하는 피터 자이한의 생각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자이한과의 차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달라집니다.
자이한 : 시진핑의 중국몽은 미몽일 뿐이다. 중국은 중국몽을 실현시키기 전에 내부 붕괴될 것이다.
러쉬 도시 : 시진핑이 시간과 모멘텀이 자신들 편이라고 말하는 건 허언이 아니다. 중국에 맞서려면 미국은 대칭주의를 버리고 비대징 전략으로 대적해야 한다.
자이한은 중국의 국력으로 미국을 이긴다는 건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헛소리라는 거고 도시는 그렇지 않다, 충분히 중국은 미국을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군사적으로 능가할 수 있으니 대전략을 버꿔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비대칭 전략은 바로 이겁니다. 중국은 인구 규모가 미국의 4배나 되니 1대 1로 맞서는 건 미국의 필패전략이라는 소리죠. 중국과 정면으로 맞서지 말고 레버리지를 적극 사용해 중국의 약점을 파고들어 중국 죽이기에 나서야 한다는 거죠. 러시가 생각하는 레버리지는 중국에는 없는 두 가지 바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 두 가지로 미국이 중국을 이길 수가 있을까요? 우선 중국의 개방을 시도한 덩샤요핑의 생각부터 살펴보죠.
“중국은 숙고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일단 결정하면 그 어떤 방해도 없이 밀고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주의에는 그것이 없다.”
이게 시진핑이 100년 만의 대변동기를 맞아 중국이 미국을 이길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시진핑이 생각한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는 주장은 중국의 결정에는 반대가 없다는 그 이유 때문입니다. 5년마다 혹은 4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민주주의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압도적인 추진력이죠.
저저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장쩌민이 유소작위(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한다)를 외교 슬로건으로 내세울 때부터 다자주의로 미국의 동맹을 약화시켜 결국엔 아시아에서 미국을 내쫓겠다는 생각을 조용히 실천해왔습니다. 후진타오는 화평굴기로 한 발 물러서는 척했지만 이는 이라크 전쟁에서 무서운 미국의 군사력을 본 뒤 한 발 후퇴한 것일 뿐 중국의 생각은 시진핑이나 후진타오나 장쩌민이나 덩샤오핑이나 똑같다는 거죠. 지금의 중국몽은 지금의 중국에 맞는 힘을 발휘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은 미국에 대해 불안하고 두렵고 경멸하고 있죠. 그래서 그는 일단 미국도 중국을 진정시킬 진정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일단 중국을 안심시킨 뒤 중국이 다자주의로 전 세계를 미국과 분열시키려는 의도에 조용히 동맹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중국을 포위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는 정확히 바이든이 노리는 중국 포위론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가치(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조용히 수출해 미국과의 가치동맹을 강화하는 길이 미국이 할 수 있는 비대칭적 전략의 핵심이죠. 일단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도시의 이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이 갈수록 쇠퇴하는 가운데 경제적 당근을 중국보다 더 많이 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미국이 전 세계로 그들의 체제(민주주의+법치주의)를 쉽게 수출할 수 있을까요? 인류의 역사는 빵 때문에 혁명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자유만을 위해서 혁명하는 경우는 없음을 보여주죠. 국제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빵이 가치를 언제든 이깁니다.
지금 연준이 하는 꼴을 보면 미국은 세계 경찰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 생각해줄 여유 없이 오직 자국 경제 자국의 이익만 생각하는 나라로 변신 중이라는 사실이 명백해 보입니다. 시진핑이 시간과 모멘텀은 언제나 중국 편이라는 주장이 단순한 호언장담이 아닌 이유가 미국의 경제 패권 달러 패권이 서서히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언뜻 보면 달러 강세는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달러가 강해지고 미국이 다시 경상수지 흑자국으로 전환하는 순간 달러 패권은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달러를 마구 찍어내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고 대신 국제 수지에서 적자를 보는 조건으로 미국의 가치 동맹국들은 미국과 협력했고 그 협력의 결과 달러 패권이 유지되어 온 것이니까요. 미국의 세기가 지나간다는 것은 시진핑이 보기에는 중극의 세기가 다시 온다는 뜻으로 해석되겠죠. 시진핑의 롤 모델인 한무제는 우리 최초의 왕조인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 4군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우리에게 한무제의 악몽을 선사할까요? 아니면 달콤한 꿈을 꿀 기회를 줄까요? 저는 지금까지 확실하게 전자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미국과 미국 때문에 고통받는 미국의 가치 동맹 국가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져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