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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로 철학하기]중독은 어떻게 해서 돈이 되는가?

by 신진상
중독의 비즈니스.jpg

수리남을 재미있게 보고 관련 영상을 찾다 넷플릭스에서 정말 흥미로운 다큐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중독의 비즈니스’죠. 넷플릭스는 영화나 드라마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다큐 또한 정말 잘 만듭니다. 특히 두 가지 관점에서 칭찬해줄 만한데요. 하나는 돈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돈의 본질을 보여주는 다큐가 유난히 많다는 점이고요, 또 한 가지는 흥미만 추구하지 않고 사회 넓게는 인류를 위한 어떤 의미에서는 정의를 실현하는 기능으로서 다큐를 제작한다는 거죠. ‘중독의 비즈니스’는 이 두 가지 장점을 모두 갖춘 다큐입니다. 여기에 필적하는 작품은 SNS의 문제점을 고발한 ‘소셜 딜레마’인데 언젠가는 그 리뷰를 올리겠습니다. ‘중독의 비즈니스’는 모두 6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1편은 미국인의 국민 마약 코카인, 2편은 국내 클럽에서도 널리 유통됐으며 국내에서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가 최초로 작품에서 소개한 엑스터시, 3편은 코카인과 LSD를 젖히고 최강의 중독성을 보여준 헤로인, 4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히로뽕 즉 매스 암페타민, 5편은 중독성은 가장 약하지만 가장 널리 보급된 마리화나 6편은 옥시코돈으로 대표되는 마약성 진통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약 비즈니스의 A부터 Z까지 모두 다루고 있는 셈이죠. 마약 비즈니스의 특징은 과거에도 잘 나갔고 현재에도 잘 나갔으며 앞으로도 잘 나갈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다만 개별적으로는 부침이 있는데 60년대 히피들에게 꿈과 희망이었던 LSD가 요즘은 사라진 게 다른 점이죠.

(1) 왜 미국인들은 코카인에 중독됐을까?

미국인들 중에 상당수는 마리화나가 마약이 아니라고 생각하죠. 그들이 생각하는 마약은 코카인이죠. 코카인이 미국의 국민 마약이 된 이유는 바로 지정학입니다. 최대 생산국인 콜롬비아가 얼마 안 떨어져 있고 콜롬비아의 마약 독점 카르텔(수리남에서 황정민이 슬리퍼 차림으로 도망가다 미군에게 총 맞아 죽었다는 파브로 에스코바르입니다)이 무너진 후 미국으로 수출되는 코카인의 최대 유통망이 된 멕시코가 바로 인접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코카인은 미국에서 가장 빨리 공급될 수 있는 천연마약인 셈이죠. 에스코바르는 한 달에 가장 많이 벌 때는 4억 5천만 달러로 당시 시총 1위 GM의 영업이익을 능가했습니다. 전 세계 2억 중독자가 1년에 1만 달러를 쓴다고 계산해도 2조 달러 시장입니다. 미국은 이 중에서 절반을 차지하고 있죠. 에스코바르가 독점하는 콜롬비아 카르텔이 미국이 보낸 특수부대에 의해 소탕된 뒤 멕시코는 두 거대 카르텔 티후아나와 걸프가 미국으로 들어가는 코카인의 90%를 과점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두 개로 쪼개졌을 뿐 지난 40년간 미국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은 전혀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정부가 승리할 가능성도 거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코카인도 마리화나처럼 합법화하는 길만이 미국의 코카인 중독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죠.

코카인이 미국인을 사로잡은 또 한 가지 이유는 편리성입니다. 헤로인이나 매스 암페타민처럼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이 코로 흡입하기 때문이죠. 이 세상에서 고통을 가장 싫어하는 민족인 미국인은 쾌락을 위해서 주사를 맞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인들이 코카인을 비롯해 약물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중독되어 있는 이유는 미국인들이 너무나 참을성이 부족하고 특히 고통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의 소득 수준은 어느 나라보다도 높지만 그들이 느끼는 매일매일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들은 약물에 의존하고 주변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고 대중적인 코카인에 빠져드는 거죠.

세 번째 이유는 수리남에서 황정민이 말하듯이 합성 마약이 가져다주는 약물의 쾌락에 비해 천연 재배되는 코카인에서 나오는 마약이 도파민도 더 빨리 더 많이 분출하면서 몸에 후유증도 적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독성은 더 높지만 마약을 하고 나서의 느낌이 천연 마약과 합성 마약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다큐에서 나오는 마약 관련 종사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입니다. 수리남의 황정민도 같은 이야기를 했죠.

미국인들이 코카인을 끊지 못하는 네 번째 이유는 바로 수익성 때문입니다. 콜럼비아 농가에서 생산하는 코카인 1kg이 2400 달러 정도인데 미국에 유통될 때 가격은 10배가 넘습니다. 그렇게 가격이 뻥튀기되는 데도 공급은 수요를 못 따라갈 정도로 인기입니다. 목숨 걸고 코카인 공급에 저소득층 흑인 히스패닉의 젊은이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죠.

다큐 속에 등장하는 마약 중간 거래상(대부분 음성 변조와 가면을 썼죠.)들은 학력은 높지 않지만 화학 지식이 풍부하고 자신이 파는 마약이 인간의 몸과 정신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약을 거래하다 경찰은 물론 같은 마약상들에게 총 맞아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잘 알죠. 그러나 미국의 중산층 전문직 연예인들이 고통을 잊기 위해 코카인에 의존하다 중독된 것처럼 이들은 너무나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에 중독돼서 그 비즈니스 바깥으로 뛰쳐나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겁니다.

(2) 왜 인류는 마약을 끊지 못하는가?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해보죠. 미국인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마약이 단 한 번도 유통되지 않았던 시대와 장소는 없었을 겁니다. 사실 종교는 아편이라고 말한 칼 마르크스의 말처럼 마약을 하지 않는 인간이 현실의 고통을 이기려면 종교라는 또 다른 마약이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종교를 믿고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 엄연히 도파민은 샘솟듯이 분출될 것이고 예배를 마친 뒤에 인간은 마음의 평화를 계속해서 느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금단 현상을 느끼며 종교에서 배운 그대로의 삶을 살지 못하죠. 그 결과 주말마다 회개하는 어리석은 짓을 끝내지 못하고 있죠. 전 세계에 수많은 종교인들이 있고 종교의 가르침대로 사람들이 살았다면 인간들은 이미 벌써 천국을 맛보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서로 죽고 죽이고 속고 속입니다. 저는 이것이 금단현상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금단현상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공격성을 높여 아드레날린 수치를 높이죠. 흔히 마약을 하는 사람은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며 자신은 자신을 망칠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모르는 소리입니다. 마약을 하는 순간에는 완벽한 쾌락 속에서 행복해하지만 그 약효가 떨어지는 순간부터 그다음의 쾌락을 맛볼 때까지 인간의 금단현상은 극도의 공격성으로 이어져 폭력 강도 살인 등의 범죄로 연결됩니다. 코카인을 비롯해 모든 마약은 두 번째 경험에서 똑같은 쾌락(즉 똑같은 양의 도파민)을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용량을 몸에 투입하는 수밖에 없도록 인간의 몸과 마음은 설계돼 있습니다. 인간은 자극에 점점 더 무뎌지도록 진화되어왔습니다. 애초에 마약은 시작해서는 절대 안 되는 거죠.

그런데도 중독과 금단현상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은 콜롬비아나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만이 아닙니다. 히로뽕의 최대 공급처 미얀마는 군부와 군부와 싸우는 중국 인접 지역의 소수민족의 해방군들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케냐가 헤로인의 천국이 되었지만 그전까지 헤로인을 유럽에 독점적으로 공급하던 아프가니스탄은 잘 아시는 대로 헤로인은 텔라반의 자금줄입니다. 부시가 중동을 친 건 석유 때문이지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난 다음 중동을 통한 유럽으로의 헤로인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그 대안으로 케냐의 나이로비가 성지가 된 것이죠.

국가와 혁명세력들 외에 제약회사도 중독의 비즈니스에 철저하게 관여하고 있습니다.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허용되던 옥시코돈이 지금은 일반인들에게 널리 사용되며 수많은 인간들을 중독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이들은 바로 제약회사 퍼듀입니다. 퍼듀는 로비를 통해 참을성 없고 중독되기 쉬운 미국인들에게 의사들이 옥시코돈을 마구 복용할 수 있도록 처방전을 쓰게 했고 수많은 사람이 중독되면서 페인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DEA는 중남미 마약 카르텔만 상대할 것이 아니라 미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마약을 파는 일부 제약회사들을 소탕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게 ‘도파민네이션’의 저자의 주장대로 쾌락은 선 고통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때문입니다. 사실은 고통과 쾌락이 쌍둥이이고 사람들은 고통을 잊게 해주는 약물을 찾다 더욱더 큰 고통 속에 빠지는 걸 모르는 상태에서 돈벌이에 현혹된 일부 제약회사와 신경정신과 의사 때문에 삶이 아작 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미국 문화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는 마약은 전 세계인들이 쉽게 마약에 빠져들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마약으로 나라가 망했던 중국은 마약 범죄는 거의 대부분 극형에 처할 정도로 엄격하게 대하고 있지만 다큐에 따르면 히로뽕 헤로인 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황입니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할 것 없이 전 세계는 마약으로 하나가 되고 있는 중이죠. 지금은 미국은 코카인 유럽은 헤로인 아시아는 히로뽕으로 군웅할거 시대가 되고 있지만 현재 개발 중인 헤로인의 1000배가 넘는 중독성과 도파민을 안겨주는 약이 나오면 세게 마약은 통일될 겁니다. 그러나 인간의 니는 이런 강력한 마약에도 금방 내성이 생기도록 유도해 인간의 몸과 정신을 더욱더 피폐하게 만들 겁니다.

(3) 앞으로 마약 산업은 계속 잘 나갈까?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 암과의 전쟁은 나름 성과가 있었지만 마약과의 전쟁은 전혀 승산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 미국 인구 중에서 마리화나까지 칠 경우 약물 중독자는 거의 억 대에 이르는 지경입니다.

다큐는 어떤 결론을 보일까요? 다큐는 모든 마약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한 가지 마약 마리화나에 대해서는 일견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가장 먼저 마리화나 합법화를 시도한 콜로라도 주를 비롯해 캘리포니아주 등 마리화나가 의료용으로 합법화되면서 음지에서 양지로 넘어오면서 일어난 변화에 주목합니다. 즉 약물에 중독되더라도 헤로인보다는 코카인, 코카인보다는 히로뽕, 히로뽕보다는 엑스터시, 엑스터시보다는 마리화나가 그나마 나은 것은 사실이죠. 마리화나 성분을 이용한 각성제와 음료 등으로 사람들이 건강을 잃지 않는 선에서 합법적으로 자신의 뇌를 쾌락의 쳇바퀴 속으로 넣는 일 정도는 더 큰 사회적 문제, 코카인과 헤로인이 마리화나를 넘어 전 마약 시장을 완전 장악하는 방법을 막을 수가 있다는 접근이죠.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CIA의 마약 범죄 전문가인데 그도 마리화나만큼은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저는 사실 모든 범죄가 마약과 연결돼 있고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코카인이나 헤로인 같은 정말 위험한 마약으로 넘어가기 전에 약한 마약에서 중독의 고리를 끊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영화를 보면 LA와 샌프란시스코 등은 여전히 코카인 중독자들로 넘쳐나지만 마리화나 합법화 이후에 미국의 다른 지역보다는 마약 중독자수의 증가가 줄어드는 추세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마리화나로 그보다 몇 백 배는 너 강한 코카인과 헤로인을 완전히 잡을 수는 없겠죠. 가장 좋은 마약의 해결책은 어린 시절부터 고통에 대한 인내와 자기 통제력을 학교에서 가르치며 사회가 마약 안 하고 살 수 있는 사회로 가도록 교육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약의 유통을 막고 마약 산업이 창궐하는 것을 막는 근본적인 방법은 고통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나가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물론 이 방법은 폴 매카트니의 노래 제목처럼 길고도 먼 길이 될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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