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했지만 ‘역시나’였습니다. 넷플릭스라고 항상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습니다. 바로 마릴린 먼로의 전기 영화 ‘블론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이브스 아웃’에서 중남미 이민자로 나온 아만 데 아르마스가 금발의 푸른 눈 이른바 백인 미인의 전형이나 다름없는 마릴린 먼로를 연기한다고 욕도 많이 먹고 그만큼 화제가 된 작품입니다. 제작은 2020년도에 시작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2년이 지난 2022냔 9월 28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습니다. 일단 외모의 급에서 두 배우는 너무 많이 차이가 납니다, 도대체 비슷한 데가 한 군대도 없는 배우를 왜 20세기 미국인들의 영원한 섹스 심벌로 기억되는 마릴린 먼로의 사실상 첫 번째 전기 영화에 캐스팅했는지 저도 그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넷플릭스의 B급 정서, 저항 정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마릴린 먼로는 금발도 아니었고, 어머니가 멕시코 이민자로서 히스패닉의 피가 섞여 있는 혈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비딱이 정서가 근거가 있었던 거죠,
영화는 마릴린 먼로가 지닌 불행과 외로움에 정면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섹스 심벌이자 여배우로 한 때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와 살았고, 한 때는 세계 최고의 희곡작가의 부인이었으며, 미국인들이 최고로 생각하는 대통령과 그 동생이며 차기 대통령이 유력시되던 당시 법무부 장관과 사귀었으니 그녀는 정말로 성공한 인생이죠. 그러나 그녀는 성공한 뒤 단 하루도 수면제 없이 잘 수 없었으며 수면제에 내성이 생겨 갈수록 용량을 늘려나가다가 이미 죽기 1년 전에 수면제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병원에 나흘간 입원한 사람입니다. 생과 사를 넘나들다 겨우 살아나서 기자 앞에 선 그녀는 언제 내가 그렇게 불행했느냐는 듯이 특유의 미소로 대중과 만납니다. 모두가 연기인 거죠. 그 사람이 얼마나 불행한지는 수면제 복용 여부가 말해주죠. 누구나 할 수 있는 능력이죠, 돈 버는 것처럼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인생에서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수면이죠. 이 쉬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이보다 더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 또한 없죠,
그런 면에서 수면제에 의존하다 결국 죽음을 스스로 맞은 다른 슈퍼 스타들 주디 갈란드, 마이클 잭슨, 히스 래저, 프린스 휘트니 휴스턴(아마 엘비스 역시 죽기 전까지 수면제를 복용했을 겁니다.)까지 연예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불행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LA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부자 도시가 아니라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각기 따로따로 살다 홀로 죽는 곳이죠.
마릴린 먼로의 실제 이름은 노마 진 베이커고 성은 친 어머니에게서 받은 겁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친부가 누군지 모른 채 살았던 정말 불쌍한 딸이었고,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서 부성을 찾으려고 하던 불행의 아이콘이었습니다. 두 번째 남편이자 자신보다 11살 연상인 아서 밀러에게 아빠라고 불렀던 건 영화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렜습니다. 생명과학의 놀라운 기술은 그녀의 사후 60년 만에 실제 아버지를 밝혀냈는데요, 그녀가 평생 그리위하고 환상 속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아버지가 언젠가는 자신을 꼭 찾을 거라고 믿었던 그 아버지는 어머니가 영화사에 근무할 때 같은 부서에서 일한 남성으로 밝혀졌죠.
그녀를 성적으로 농락했던 수많은 사람 가운데는 찰리 채플린의 아들도 있었는데 그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의 부재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하지만 그 말은 진심이 아닐 것입니다. 마릴린 먼로가 그 외면의 화려함과 달리 그렇게 외롭고 슬펐던 이유도 바로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었죠. 어머니는 정신병이 심해 그녀를 어린 시절 보육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10번이나 위탁 가정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에서도 드러나지만 데뷔 후 그녀는 10년 만에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 정신병원에 옵니다. 10년 동안 성장한 모습 그리고 금발로 바뀌면서 외모 전체를 바꿔 버린 머리 스타일을 비롯 너무나 달라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어머니는 내게 딸을 돌려 달라고 울부짖죠.
그녀의 전기 영화를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태어나서 15세까지의 성장기이며 이 시기에 정상적인 부모를 만나 사랑을 받고 큰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영혼과 몸에는 절대적 간극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그녀가 커서 겪은 모든 불행의 씨앗이 다 어린 시절에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영화에서 보는 불행의 뿌리는 어린 시절에 있습니다. 부성의 부재, 미친 모성이 그녀를 평생 외롭고 그리워하도록 만들었죠.
그녀는 제가 본 영화만으로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뜨거운 것이 좋아’, ‘포인트 오브 노 리턴’. ‘사랑할 때 버려야 할 것들’. ‘나이아가라’ 등 정말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녀는 이 영화를 찍고 공개할 때만 노마 진 베이커를 잊을 수 있었고 혼자 있는 순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과 함께 있을 때는 다시 노마 진 베이커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그녀를 견디지 못한 조 디마지오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때렸죠. 아서 밀러는 그녀를 무식하다고 무시했지만 그녀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도 읽고 체홉의 ‘세 지매’도 읽어서 그와 지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책 읽기와 영화 보기를 좋아한 그녀는 생각만큼 머리가 나쁘고 몸만 예쁜 섹스 심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독서력은 그녀의 자의식을 더욱 키웠고 자의식은 그녀를 더욱 외로움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제 영화에서 다룬 그녀의 죽음을 실제와 비교해보죠. 소문은 그녀가 케네디 형제와 성적 관계를 맺은 뒤 그녀를 버리려는 케네디 형제가 FBI 혹은 마피아를 시켜 죽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캐네디 형제가 그녀의 죽움에 놀랐다는 증거는 많습니다. 단지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 공개될 수 있는 두 형제와 섹스 스캔들을 막으려고 했던 건 사실이죠. 영화에서 존 F 케네디가 침대에서 전화로 핵전쟁에 관련된 중요한 대화를 나누고 만로는 오럴 섹스로 케네디를 만족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도 그랬습니다. 케네디는 당시는 최고의 진보적인 대통령이었지만 지금처럼 SNS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모르는 세상에서는 가장 위험한 대통령이었습니다. 타고난 섹스 중독자인 그는 가족 모임 때 자신의 정부를 자신의 옆에 앉힌 뒤 자랑스럽게 “남자는 수많은 여자와 잘 권리와 의무가 있어”라고 아들은 물론 딸까지 동석한 자리에서 당당히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보다 더 한 섹스 중독자가 케네디였습니다. 대중이 당시 알고 있던 케네디와 실제의 케네디는 마치 노마 진 베이커와 마릴린 먼로가 전혀 다른 인물이었듯이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케네디와 마릴린 먼로는 허상이 실제 모습을 덮어 버렸다는 점, 한 사람은 섹스에 한 사람은 수면제에 중독된 불쌍한 영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영화는 어둡고 칙칙하고 그리고 어색합니다. 누가 봐도 히스패닉인 여주인공은 금발로 마릴린 먼로처럼 입가에 점을 붙이고 나온다고 해서 관객들이 누가 봐도 마릴린 먼로의 환생이라며 영화에 몰입할 수가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마 마릴린 먼로의 신화, 백인 남성들이 꿈꾸는 백인 글래머 여성의 표준을 넷플릭스는 과감하게 무너뜨리고 싶었던 것 같지만 관객은 어차피 다 아는 이야기 얼마나 비슷한 사람이 비슷하게 재현하느냐가 재미의 관건이라고 생각한 다수의 관객이 신선하다기보다는 어이없다고 느낄 겁니다. 모든 전기 영화는 신비화에 편승하든지 신비화를 깨부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녀의 불행은 그녀가 생에 받았던 인기의 축복 속에서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일까요, 아니면 여성을 착취하는 미국 자본주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장 큰 희생양일까요? 후자를 선택한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릴린 먼로는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이라는 사실은 진리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