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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데이비스의 우주에 우리뿐이란 주장 vs ‘글리치'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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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UFO 외계인에 안 빠진 50대들이 있을까요? 저는 정말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솔직히 안 믿습니다. 10대 때는 진실인 줄 알았던 사실들이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는 회의론을 넘어 부정론으로 변할 정도로 과학은 발전했고 그 발전한 과학은 외계인이나 지구 밖의 생명이 있다는 그 어떤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글리치’는 10대 때라면 누구나가 갖는 UFO에 대한 관심과 인간의 기억 문제 세뇌 문제 등을 다루며 다양한 볼거리, 생각거리를 선사하는 작품이었습니다.

(1) UFO 외계인 정말 있을까?

제가 UFO와 외계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는 폴 데이비스의 침묵하는 우주’를 읽고 나서입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우주론자이지만 어쩌면 이 넓은 우주에 지적 생명체는 우리 인류밖에 없을 수도 있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합니다. 이 은하에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갖춘 행성이 10억 개가 된다고 해서 그곳에 생명체가 산다, 특히 지적인 생명체가 산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SETI를 포함해 우주의 생명체를 탐색하는 그 어떤 프로젝트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류는 지칠 때도 됐죠.

영국의 물리학자인 폴 데이비스는 최신 저서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에서 ‘우리는 혼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말합니다. 자신도 강연 때마다 외계인을 만났다거나 접촉했다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중에서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외계 생명체의 수색은 시계추처럼 계속 좌우로 흔들리는 이야기의 한 사례일 뿐이죠.

인류의 과학 기술 발전이 외계인의 존재와 갈수록 멀어진다는 증거는 20세기 포반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이 화성에 생명체가 살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기정사실로 여겼다는 점에서도 확인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능 좋은 망원경이 나오면서, 우주선이 태양계 행성을 탐험하면서 그 추측들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음이 증명됐죠. 생명이 거주 가능한 행성이라고 해서 생명이 반드시 탄생하는 법은 아닌 이유는 화학물질 때문입니다. 화학물질이 무작위로 섞이는 과정에서 실로 기적적인 일이 벌어져야 하는데 그럴 확률은 지극히 낮다는 사실을 물리학자가 아닌 생명과학자들이 밝혀냈죠. 그리고 우주인이 존재할 가능성이 칼 세이건이 언급한 드레이크 방정식인데, 이 계산이 너무나 낙관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게 이미 증명이 됐죠. 제가 볼 때 진화론자보다 창조론자가 외계인에 관심이 있습니다. 신이 이 넓은 우주를 창조해 놓고 지구 속에 인류만 갇혀둘 리가 없다는 믿음이죠.

(2) 외계인이 꼭 인간처럼 2족 보행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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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치’는 외계인의 존재를 놓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드라마에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더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70년대 우주인을 만났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넋을 놓고 보던 많은 사람들(꼭 초등학생들만 그랬던 게 아닙니다. 그때는 어른들도 다수가 믿었습니다.)이 지금은 그런 사람을 조현병 환자로 취급할 정도로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외계인은 귀신과 동급이 되어버린 거죠.

UFO와 외계인이 빠져드는 시가가 았는데 그 시기가 바로 중학교 때입니다. 글리치의 두 주인공도 그랬죠. 그런데 요즘 중학생들은 점점 더 현실적 실용적이 되어갑니다. 아마 외계인에 과심이 많은 10대보다 건물주 되기 주식으로 돈 벌기에 관심이 많은 10대들이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예전에 10대 전에 공룡 10대 때 UFO와 외계인이 필수 코스였다면 전자는 지금도 굳건히 버티고 있지만 후자는 흔들린 지 오래죠.

10대가 끝나고 20대가 되어 취업을 하면서 외계인과 멀어지는 현실의 모습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 전여빈이 실제로 보여줍니다. 이 드라마가 외계인 UFO라는 심증은 가지만 확증은 없는 실체에 대한 엑스파일 식 접근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 기억을 잊고 오직 먹고사는 문제에만 천착하려는 20대~30대들의 현실을 대비시켜 지금의 우리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죠. 약간의 사회성도 읽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 과자가 이 드라마에서는 외계인과 UFO로 바뀐 것뿐이죠. 외계인 이야기는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였던 셈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그리는 외계인의 이미지는 할리우드 영화가 만들어 놓은 환상들에 가깝다는 거죠. 우리와 환경이 100% 똑같지 않은 우주에서 꼭 우리처럼 2족 보행을 하는 인류와 같은 모습으로 지적 생명체가 진화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 전통을 깬 영화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입니다. 이 영화도 하나의 가설이지만 여하튼 우리와 아주 아주 다르게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코 2족 보행은 아닐 것이고요, 드라마도 그렇게 그립니다. ‘글리치’ 마지막 회에 나오던 것처럼 유선형에 오징어처럼 다리가 여럿 달린 존재일 수도 있고 미치오 카쿠가 예상한 것처럼 에너지 형태로 마치 빛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폴 데이비스나 중국 SF작가 류츠신이 예측한 것처럼 생명체보다는 로봇을 만날 가능성이 더 크죠. 우리가 만날 지도 모를 외계 지적 생명체는 탈생명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데이비스의 견해죠.

(3) 작품을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 기억의 조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대심문관 편. 여성 버디무비의 잔재미, 세뇌를 넛지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전반적인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지만 이상하게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 기억이 정말 실제 경험한 기억인가, 만들어진 것인가를 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기억이 생성되는 건지, 재현되는 건지, 재구성되는 건지에 대한 심리학 논쟁이 있을 수 있고요. 드라마 마지막 편에 주인공이 호산나가 되어 사이비 종교 교주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대심문관 편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죠. 중세 유럽을 다스리던 교황이 실제 부활 예수를 만난다면 아마 김명곤처럼 나올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권력을 위해 당신은 현실에서 사라져 달라고 주문하겠죠. 이 드라마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거짓으로 순교해달라고 주문합니다. 김명곤과 전여빈의 대화 수준은 물론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나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등장하는 신의 존재에 대한 격렬한 토론 급은 아니지만 상당히 임팩트가 있었습니다. 딱 넷플릭스 유저 눈높이에 맞췄죠. 그리고 이 드라마는 마치 델마와 루이스처럼 남성 주인공 없이 여성 주인공만으로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점이 있는데요, 넷플릭스가 정말 이 드라마를 시리즈화할 계획이라면 나나와 전여빈 커플은 국내 팬들보다는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또렷이 각인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이비 종교의 세뇌에 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네요. 저는 80년대 라엘리안(UFO 외계인을 믿으며 관련 책을 열심히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이죠. UFO의 등장이 자신들의 존재를 진화시키고 세상을 파멸로 이끈다는 주장은 라엘리안을 연상시킵니다. 그들의 꼬임에 넘어가 전 재산을 잃고 가족과도 연이 끊긴 사람들의 말로는 참으로 비참합니다. UFO는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해석하기 나름이죠. 인류의 희망도 될 수 있고 영화 ‘화성침공;처럼 종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둘 중에서 사이비는 후자를 신도들에게 주입합니다. 일종의 넛지고 세뇌죠. 세뇌는 리처드 탈러가 쓴 ‘넛지’의 좀 더 교묘한 작업입니다. 넛지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일을 그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선택하도록 하는 기술이고요, 종교적인 세뇌는 교주와 교단에게 필요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절대 필요 없는 일을 그 사람이 스스로 하도록 만드는 착취의 기술이라는 점에서 다르죠. 그런 면에서 딸을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교주를 죽이는 고창석의 행위는 충분히 공감이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종말론을 외치는 모든 종교는 잠재적으로 사이비 종교가 될 가능성이 언제든 열려 있습니다. 왜 이단들이 유달리 개신교에서 많이 나오는지 개신교 측은 충분히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라면 성경 중에서 요한계시록은 빼고 포교 활동을 해야 하겠습니다.

PS : 철갑상어 다큐는 무엇에 대한 메타포어일까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 아버지로 나온 전배수 씨는 2007년 딸이 실종되던 순간부터 항상 같은 다큐만 반복해서 보고 있습니다. 무려 15년 동안에 걸쳐서 말입니다. 감독은 이 장면에서 무엇을 말해주려고 하고 있을까요? 멸종위기에 처한 철갑상어를 보호하는 환경 단체들은 철갑상어를 그물에서 풀어주고 대신 밴드를 달아 활동 반경을 측정합니다. 즉 모든 철갑상어가 보호받는 게 아니라 랜덤으로 정해진 일부의 운 좋은 철갑상어들만 인간의 보호를 받게 되는 거죠. 외계인과 지구인과의 조우도 같은 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전여빈이 두 번에 걸쳐 외계인과 접촉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랜덤이라는 거죠, 호산나라든가 신의 의도를 전하는 성하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드라마는 은근히 사실은 직설적으로 특정 종교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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