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의도적으로 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변화가 두려워지고 잘 안 바꾸려는 경향만 강해지는 것 같아요. 세상이 바뀌는데 생각이 바뀌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거죠.
기본적으로 친미파이고 미국 문화를 좋아하며 서학 개미인데다 중국 특히 시진핑 정부 체제에 대해서 극히 비우호적인 저는 저와 다른 의견의 책도 적극적으로 읽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하면 다른 생각의 책도 언제든 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죠.
‘장깨주의의 탄생’은 잘 쓴 책이지만 읽고 제 기존 생각이 달라지는 느낌은 받지 않았는데 언론에서 많이 보도된 책 ‘국익의 길’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둘 다 중국에서 공부한 전문가고 학자지만 국익의 길의 저자 박승찬 용인대 교수는 시진핑이 나왔던 칭화대 박사로 반대파에 대한 설득력이 김희교 교수의 책보다 더 있습니다. 중국에서 공부하고 중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고 중국어를 가르치면 당연히 친중인 것은 맞는데 박 교수는 노골적으로 중국 편을 들지는 않습니다. 한국 편을 들고 있죠. 다만 한국의 국익을 생각할 때 한국은 미국 관점에서 미중 관계를 바라보려는 편향을 벗어나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중국에게도 필요하면 언제든 노할 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단 우리는 정부보다는 언론이 언론보다는 국민의 시각이 너무 중국에 적대적이며 미국에 편중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미국인들이 미국을 좋아하는 비율보다 한국이 미국을 좋아하는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우리보다 미국을 더 좋아하는 유일한 나라는 어디일까요? 다들 아실 겁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일단 우리는 미국에게 우리와 일본이 동시에 필요한 존재로 우리가 똑같은 자식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엄연히 한미 동맹과 한일 동맹은 다릅니다. 만약에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면 미국의 참전은 대통령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미국 의회가 결정합니다. 의회에서 부결되면 그냥 우리는 우리 힘으로 북한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미일 동맹은 결정권이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영토에 떨어지는 순간 북한은 자신들보다 몇 백 배는 더 강한 미국의 보복 공격에 노출되고 북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죠. 제가 친미파이며 민족주의에 부정적인 사람이지만 북한이 민족주의라는 명분 때문에 미사일을 쏘고 도발하는 건 아니라는 정도는 압니다. 결국은 돈이겠죠.
저자가 국익의 길로 제시한 키워드는 용중과 용미입니다. 용중은 이해가 갑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그렇게 중국과 엮여 있는데 국민 정서가 반중이 압도적이라고 해서 정부가 반중 정책을 어찌 펼 수 있겠습니까? 그건 상식이죠. 그런데 용미란 무엇일까요? 친중파인 저자는 한국이 미국은 물론 일본과도 안보적으로 가까워지는 걸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북한이 얼마나 문제 덩어리이며 우리에게 위험한 존재인지를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미국이 정말 한미일 3각 동맹을 원한다면 지금처럼 한일 관계에 대해서 침묵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맏형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를 해야 한다는 거죠. 그게 용미입니다.
그리고 한국에게는 힘을 좀 더 기르라고 합니다. 우리가 중국에게 반도체 외에 필요한 게 한 가지라도 더 생기면 중국은 그만큼 더 한국을 신경 쓰고 한국을 배려할 겁니다. 그게 2차 전지가 될지 다른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포스트 반도체를 찾는 건 대중관계 뿐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우리가 해내야 할 일입니다. 저자는 3세대 반도체를 조심스럽게 한국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제 이분법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일단 제가 이분법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게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지를 깨닫게 해주죠. 반중파인 저도 때로는 중국의 시각에서 우리를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애국자라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친미파였던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성찰의 시간도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중국에 관심 있거나 중국을 이용해 돈을 벌고 싶은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책이라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