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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진상 Jan 21. 2023

지옥에서 만난 악연이 정이에서도 이어지는구나

연상호 감독의 신작 정이를 보았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제가 뽑은 넷플릭스 최고의 걸작 5에 꼽히는 작품이죠. 솔직히 저는 지옥 2가 오징어 게임 2보다 더 기대됩니다. 그런데 다른 작품들 특히 염력 같은 작품은 정말 실망작이었습니다. 평작과 대작을 오락가락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처럼 연 감독도 기복이 심합니다. 정이는 오늘 개봉한 후 네이버 영화 평에 보면 악평으로 도배를 받고 있던데 제가 볼 때 그렇게까지 욕을 먹을 작품은 아닙니다. 2년 전 정말 실소를 금지 못하게 했던 망작 승리호에 비하면 한국 SF 영화가 문학 못지않게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특히 아 작품애는 자옥 2에도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경수와 김현주가 나란히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죠. 지옥에서 악연이 정이에서도 악연으로 이어진다고나 할까요? 진부하다, 각본 연기 연출 등 모든 게 따로 논다는 평도 많은데 사실 SF 장르가 가장 진부합니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사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흥미 있고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세 가지 생각 거리를 제공해 주더라고요. 

1) 뇌를 복제한 AI를 자신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사실 모든 SF 영화들 특히 AI가 등장하는 로봇 영화들은 거의 전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챗GPT가 화제지만 아직 범용 인공지능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인간처럼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또한 너무나 먼 미래이기에 AI와 로봇을 다룬 영화는 사실 현재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줄 뿐입니다. 

‘올터드 카본’ 이후 많은 SF 영화와 소설들이 의식의 업로딩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가장 낙관적인 기술주의자 레이 커즈와일 구글 이사가 빠르면 2045년 의식 업로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기술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건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인간의 뇌 정확히는 뉴런 시스템을 그대로 복제한 인공 뇌를 만드는 작업은 현재도 연구 중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뇌 그리고 인간의 기억이라는 게 그야말로 애매함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 기술의 발전 속도는 예상보다 더딥니다. 커넥톰이라는 단어가 나온 지 10년이 지난 지금이면 뇌 지도가 완전히 만들어졌어야죠. 그러나 요원합니다. 인간이 그리고 인간의 컴퓨터가 인간의 뇌를 이해하는 일은 정말 벅찬 듯합니다.

하지만 정이를 비롯 많은 영화들은 이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시작하죠. 전설의 용병 정이의 죽을 때 뇌를 복제해 숱한 인공지능들을 만들어낸 회사의 창업주(이 사람이 바로 자옥에서 끝내주는 연기를 보여준 새진리회 2대 교주입니다.)의 뇌를 복제한 젊은 시절의 모습이 유경수였다는 반전이 나옵니다. 검정칠의 젊은 시절이 그의 지옥에서 행동 대장 류경수였다니 이는 멋진 반전입니다. 그런데 김정칠은 류경수의 동작을 멈춘 채 강수연(실은 관객) 앞에서 자신이 뇌를 업로드해 인공지능으로 만든 이유를 말합니다.

“처음에는 영생을 바라고 뇌 업로딩을 했지. 그런데 만들어 놓고 보니 나라고 느껴지지 않더라고.”

이 말투는 김정칠이 김현주를 죽이라는 말을 유아인으로부터 들었다고 전할 때 그 목소리 그 톤 그대로입니다. 새 진리회 교주답게 진리만 이야기하죠. 그렇죠. 내 의식을 업로드한 뒤 나와 똑같은 아니 나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을 만든다 한들 그건 또 다른 나이지 결코 내가 아닙니다. 나와 기억을 공유한다고 해도 그 기억이 분기되는 시점에서 나는 또 다른 나일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영생은 영원히 불가능해집니다. 기억만 복제되고 새 몸이 주어져도 기존의 기억을 가진 존재가 비존재가 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공포와 고통이 사라질 리가 없죠. 인공지능을 복제인간으로 대체해도 똑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인공지능을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달려가 자신과 만났을 때 과거의 나로 대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2) 왜 정이의 딸에 대한 기억을 지웠는데 정이의 인공지능은 딸을 기억했을까?

영화에서 뇌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장면은 어려서 암에 걸려 수술을 받던 딸의 기억을 가진 채 매번 새로 태어나는 김현주가 끝내 기억이 리셋된 상태에서도 딸 수연의 나이 든 모습을 알아보고 마치 그녀가 살아생전에 볼을 대고 비비는 모습이었습니다. 강수연은 어머니의 AI를 분명 어머니라고 인식한 것이 맞고 그렇게 느꼈기에 그녀가 비존재가 되기 전에 자신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고 했을 겁니다. 딸에 대한 기억 그 딸이 결국 암이 재발돼 죽게 됨을 알게 되면서 최후를 맞을 때의 고통을 느끼기 않도록 하려는 딸의 진심의 배려였죠. 그런데 정이의 AI는 류경수가 자신을 쏘면서 한 말의 의미, 딸의 죽음, 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 기억을 행동으로 표시했죠.

어떻게 된 걸까요? 일단 제 추측은 정이의 기억은 지워진 게 맞습니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달리 기억을 얼마든지 지웠다 삽입했다 할 수 있으니까요. 삭제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볼을 비비는 행동을 통해서 연 감독은 어느 정도 수준의 인공지능(범용 인공지능애 웨스트 월드 급의 로봇)이 등장하면 기억도 인간과 비슷해져 의미 기억은 삭제될 수 있지만 몸으로 기억하는 절차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죠. 그럴듯한 주장입니다. AI가 뇌고 로봇이 몸이라면 몸과 뇌가 연결된 인간처럼 그리고 기억이 뇌만이 아닌 몸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 인간의 본질인 것처럼 인공지능도 그럴 수 있음을 연 감독은 보여주고 있죠. 

3) 인간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을까? 

결국 토털 리콜을 포함해 거의 모든 SF물 심지어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까지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죠. 그러면 영원한 논쟁, 인간의 정체성이 신체에 있다는 주장과 기억에 있다는 주장이 맞서죠. 

현재로서는 기억 이론이 우세하지만 김정칠의 주장은 기억 이론을 부정하고 강수연의 생각은 기억 이론 그대로입니다. 즉 내 기억을 공유하지만 나와 다른 몸을 지닌 젊은 나는 내가 아니고(김정칠), 내 어머니의 몸은 아니지만 내 어머니의 뇌를 복재한 정이는 내 엄마가 맞다는 게 강수연의 생각이죠.  

그런데 사실 정체성 이론은 이 둘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맺은 모든 인간적 관계를 합치면 그 사람이 된다는 관계이론(동양적이죠.)도 있고 인간에게는 DNA와 뇌의 기억을 뛰어넘는 초 물질적 존재로서 영혼이 존재하며 그 영혼에 정체성이 있다고 보는 입장(신학과 불교의 카르마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도 존재하죠. 뭐가 맞고 틀리는지는 아마 인간이 죽는 순간까지 모를 겁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인간이 찾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끝내주는 SF 걸작 ‘마지막 질문’의 질문의 끝판왕은 과연 인간이 엔트로피를 되돌릴 수 있는가였는데 사실 이 질문은 인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정확히 겹칩니다. 인간의 죽음이 한 개체의 끝이라면 그 끝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와 같은 맥락의 질문이니까요. 올터드 카본이나 정이나 비슷한 질문, 의식의 업로드와 의체로의 기억 이식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것이 정말 죽음의 극복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영화감독의 능력 밖입니다. 그야말로 죽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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