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제 경영 재테크 책을 많이 읽고 그다음이 의학 관련 서적입니다. 두 분야 모두 번역서는 주로 유대인들이 저자죠. 역사나 사회과학 서적에서도 유대인 저자들은 많이 발견됩니다. 유대인은 똑똑하다는 말은 제게는 흑인은 농구를 잘한다는 말 정도의 진실의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대인은 부자지요. 조지 소로스, 마크 저커버그, 골드만 삭스, 빌 애크먼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둘을 합치면 똑똑하고 부자지요.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듭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집트를 탈출하던 히브리 노에들과 지금 유대인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사람 둥에 유전적 연관도는 얼마나 될까? 더 최근으로 내려와 2세기 예루살렘에 있었던 로마의 유대인 학살 때 살아남은 200만 명의 유대인과 지금 전 세계에 퍼진 유대인들은 얼마나 유전적으로 가까울까?
제가 좋아하는 작가 정희진이 극찬한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의 저자 데이러 혼은 유대인 소설가죠. 그런데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혀 유대인처럼 생기지 않았습니다. 금금발 머리, 푸른 눈의 이 작가는 어린 시절 한 친구가 자신에게 한 말 “히틀러가 너희들은 검은색 눈만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너는 어떻게 된 거니?”에 그녀가 제대로 답을 못 했던 기억을 책 서두에서 인용합니다. 그녀가 답을 못 했던 이유는 미루어 집직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기존 유대인 아랍인 독일인 영국인 프랑스인 헝가리인 러시아인 등이 섞이고 섞인 그야말로 혼혈의 민족입니다. 유대인들이 똑똑하고 부자가 된 이유는 그들이 원래부터 잘 나서가 아니라 어찌 보면 다윈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시쳇 말로 잡종의 힘. 섞이면 섞일수록 유전자는 좋아집니다. 유대인이 단일 민족이라는 말은 현재 미국인들이 조지 워싱턴의 피를 나눈 단일 민족이라는 주장만큼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저자는 어찌 보면 한 민족이란 유대인이 왜 다르게 생겼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디시어를 공부하면서 마침내 하버드 대학교에서 히브리 문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죠.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민족적 정체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그녀처럼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민족은 섞인 거고 단일민족이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게 사실 역사학자들의 중론이죠.
유대인은 솔직히 말하면 혈통과는 전혀 관계가 없죠. 이미 2세기부터 거의 2000년 동안 전 세계로 퍼지면서 피가 섞였습니다. 그냥 유대인은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흑인이든 백인이든 동양인이든 한 민족이라는 말도 진리가 되죠. 같은 유대인 학자 슐로모 산드가 쓴 ‘만들어진 유대인’도 저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죠. 유대인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거죠. 유대인은 토라 탈무드를 함께 읽고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유대교를 믿다 기독교 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억압받을 때는 유대인임을 숨기고 다른 민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고 반대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대인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순간 영화 리멤버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팔머처럼 유대인인 척하며 사는 다른 민족들도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제목에서 함의하듯이 책은 참으로 슬픈 내용입니다. 일단 제목에서 말하듯이 히틀러 시대 독일인뿐 아니라 전 세계 인류들이 유대인을 싫어합니다. 책 제목은 사람들은 안네 프랑크처럼 죽은 유대민만 좋아한다는 거죠. 즉 살아있는 유대인들은 반 유대주의자 아닌 사람들도 싫어하는 전 인류의 밉상이 유대인이 되어버린 거를 비판하고 있죠. 저자는 나치 시절 유대인들의 탄압과 홀로코스트뿐 아니라 1900년 대 초반 하얼빈 지역을 비롯해 유대인들이 퍼져 나간 사레들을 발로 뛰면서 취재합니다. 트럼프 때 일어났던 유대인 회당을 급습해 총기난사로 11명의 유대인 노인을 학살한 사건의 뒷 이야기도 다루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고통과 절규 울부짖음이 너무나 슬프게 드러나지만 저자는 월 스트리트와 세계 금융가를 지배하며 사실상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유대인의 힘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합니다. 히틀러에 의해 그전에는 러시아 차르에 의해 그리고 히틀러 사후에는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핍박받고 억압받은 민족이 유대인이라는 기존의 시각에서 이 책은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책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죠.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반유대주의가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감이 아니라 돈의 힘과 황금만능주의에 반발하는 기층 민중의 왜곡된 반발 의식일 수도 있다는 점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저자의 따뜻하고도 섬세한 시각 다음과 같은 문장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가끔씩 당신의 몸은 다른 누군가의 유령이 사는 집이 된다. 사람들은 당신을 바라보지만 오직 죽은 사람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오늘날 살아남아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 유대인의 서사 뒤에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억압받고 때로는 집단 학살 당하던 죽은 유대인들의 슬픈 유령이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디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의 머릿속은 우리보다 앞서 이곳에 왔던 사람들의 두려움과 희망이 거주하는 장소죠. 죽은 유대인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똘똘 뭉치게 한 거라는 느낌은 이 책을 통해서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