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의 영화는 20세기 영화들이 확실히 좋지만 21세기에 찍은 작품 중에도 빛나는 명작들이 많습니다. 블루 재스민, 원더 휠, 매치 포인트, 미드나잇 인 파리는 확실히 좋았어요. 그리고 가장 최근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2014년작 ‘매직 인 더 문라이트’ 역시 우디 앨런 다운 미니 걸작쯤은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우디 앨런이 가장 그리워하는 시대인 20년대 미국의 광란의 시대를 배경으로 기본적으로는 로맨틱 코미디지만 앨런 특유의 철학적 당의정의 씌운 작품입니다.
제가 미국 여배우 중에 가장 좋아하는 엠마 스톤이 나온 영화라 안 볼 수가 없었는데, 엠마 스톤이 나온다는 이유 외에도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몇 가지가 있더라고요.
1) 왜 합리적인 서양 사람들이 창조론을 더 믿는가?
진화론이 산업혁명과 역대 세계 최대의 제국인 대영제국에서 나왔지만 서양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창조론을 더 많이 믿습니다. 이 영화의 남주인 콜린 퍼스는 직업이 마술사지만 자신이 직업이 사람을 속이는 직업임을 이용해 심령술사의 실체를 밝히는 합리적 인물로 무신론과 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유신론자가 되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지만 무신론자가 되는 이유는 대개 비슷합니다. 이 세상이 고통과 악이 존재하는 이유를 신은 절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게 그 주장의 핵심입니다. 세상에 내가 지금 겪는 고통이 신의 뜻이라면 그 신을 믿고 싶겠습니까? 현대에 들어 무신론이 급속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이유는 그만큼 현실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콜린 퍼스도 이런 이유에서 무신론을 신봉합니다. 그런데 20년대 미국에서는 여전히 기독교 문화가 강렬한 햇볕처럼 전 미국을 비추고 있으며 신의 존재를 믿고 따라서 신이 행하는 마법의 존재도 믿고 있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미국인들을 포함해 세계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신에 친화적이었죠. 지금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고 20세기 중반의 인류 최대 참사인 2차 세계대전을 겪기 전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미국인들이 신을 믿음으로써 희망을 얻고자 하는 이유가 컸죠. 평균 수명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고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죽었기에 이들과 영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이 있다고 믿는 쪽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좀 더 신을 믿은 거죠. 20세기 초반까지 교회가 아니라 영매들이 유신론을 든든하게 지탱해 주었다는 사실을 앨런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영화는 합리적 이성을 신봉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콜린 퍼스가 엠마 스톤이 사기꾼이라느 걸 증명하려다 그녀의 미모와 매력에 빠져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퍼스는 그녀가 결국 사기꾼이라는 걸 알지만 그걸 계기로 그녀와 본격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2) 이성론자가 믿기 시작하면 진짜 더 잘 속는 이유
사람의 믿음이란 그리고 불신이란 필연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바에 따라 믿음과 불신의 대상을 철저히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의 힘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 있다면(그 결과가 우연의 일치일지라도) 신을 믿게 되죠. 그러나 열심히 기도했는데 그 결과가 흡족하지 못하다면 인간은 무신론자로 돌아설 것입니다.
그런데 이성의 촉이 아주 발달한 사람이 즉 무신론에 완전히 자신의 두뇌를 맡긴 사람이 어느 순간 기적 혹은 마법 혹은 기도의 힘을 느끼게 디는 순간이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바로 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는 그 어떤 유신론자보다 더 열정적으로 신을 믿게 되고 신을 믿기 전의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게 되죠. 일종의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겁니다. 콜린 퍼스가 엠마 스톤을 진짜 초능력을 지닌 영매로 인정하면서 그녀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진 것도 그래서였죠.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자들이 변절한 뒤 더욱 열렬한 친일파로 변신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사람은 잘 안 바뀌는 존재지만 한 번 바뀌면 정말 크게 바뀔 수도 있죠. 마지막까지 거부하던 저항의 성이 함락된 후 저항군들이 어떤 자세로 정복자들에게 맞섰는지를 알면 역시 수긍이 갑니다.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면 그 후부터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침략자에게 더 비굴해집니다. 몽골의 정복을 당했던 송나라의 귀족과 관리들이 송나나의 마지막 보루 양주가 무너지자 너도나도 원제국에 투항했던 것도 샅은 이치죠.
3) 사기라는 걸 알게 된 콜린 퍼스 그의 선택은 무엇일까?
콜린 퍼스는 사랑에 빠져 잠시 이성을 잃지만 곧바로 이성을 되찾게 되죠. 계기는 그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자회견까지 하며 엠마 스톤을 진정한 능력자로 칭송했는데 이모의 교통사고라는 변수를 만나 이를 예측하지 못한 엠마 스톤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마술을 이용해 잠시 사라진 틈을 타 자신의 절친이자 동료 마법사와 엠마 스톤이 공모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죠. 당연히 그녀와도 결별이었고요. 그렇다면 그는 자신을 반성하고 예전의 무신론자로 돌아갔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모의 이런 말 때문입니다. ‘세상에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마법은 분명 있어. “ 이모는 등장인물 중 유신론을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고 무신론을 옹호하는 사람도 아닌 중립형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평균적인 일반인이 볼 때 세상에는 분명 과학과 기술로만 설명이 되지 않는 뭔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 밝혀질 수 있지만 분명 뭔가가 있다는 확신은 무신론자도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 있습니다. 콜린 퍼스에게도 그것이 남아 있었기에 그는 고민을 한 거죠. 그리고 이모와 그 자신에게 믿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약혼녀인가, 엠마 스톤인가, 내 심장은 누구를 생각할 때 뛰는가에 대한 질문이었고 그 대답은 뻔했죠. 나이가 들수록 로맨틱 코미디와 가까워지는 앨런 감독은 꽤나 로맨틱하게 매조지를 합니다. 강신술을 믿지 못하는 콜린 퍼스가 강신술 때 영혼이 내는 소리(에스는 똑, 노는 똑똑 물론 그를 속이려던 친구가 낸 소리죠.)를 듣습니다. 사랑한다 당신도 나를 사랑하느냐의 질문에 답은 예스였습니다. 콜린 퍼스가 살아있는 엠마 스톤의 영혼에게 질문한 건데 정말 영혼이 답한 걸까요? 아닙니다. 부자와 결혼 전에 마음을 바꿔 콜린 퍼스를 찾은 엠마 스톤이 문 뒤에 서서 낸 소리였던 거죠. 이 장면 하나로 앨런의 메시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사랑은 절대 과학으로 설명 못 하는 마법이라는 거죠. 마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 때문이고 사랑이 남아 있는 한 인류에게 마법은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게 영화의 주제입니다. 로맨스 코미디를 보며 웃으면서 지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분들이라면 70이 넘어서 찍은 우디 앨런의 영화들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