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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연대와 피해자 연대 뭐가 강할까? ‘더 글로리’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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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는 김은숙의 최고 걸작이라 부를 만한 작품입니다. 도깨비 미스터 선샤인 등에서 이미 드러난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에 이제는 전성기 때 김수현 수준의 대사를 치는 대사 맛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올 3월 방영된 후 누적 시정자 1억 명을 돌파한 이 드라마는 왜 세계가 열광했을까요? 세 가지 아유를 뽑아보았습니다.

(1) 가해자의 연대보다 피해자의 연대가 강한 이유

작품의 주제는 학폭을 소재로 피해자가 가정폭력, 연쇄살인마의 이유 없는 살인에 피해자가 된 사람들과 연대해 자신을 가해자로 만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아니 본인이 만난 지옥을 그대로 돌려주는 영광의 복수를 한다는 내용인데, 이 과정에서 플롯이 치밀해 송혜교는 손에 피 한 방울 뭉치지 않고 복수를 달성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바로 피해자의 복수에 대한 의지는 가해자의 방어에 대한 의지보다 언제나 강하기 때문이죠.

영화 올드 보이를 비롯 복수만큼 삶에 대한 강렬한 동기부여를 만들어주는 계기는 없습니다. 박연진이 송혜교를 다시 만났을 때 너 나 때문에 공부도 하고 열심히 일 해서 초등학교 교사가 된 것 아니냐 그러니끼 오히려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미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고 학교도 중퇴하고 가전 것이 전무한 그녀에게 복수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없었다면 그녀는 초등학교 선생님은커녕 인생을 스스로 접거나 그녀의 어머니처럼 이발소에서 성매매나 하면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았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세 가지 폭력,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의 폭력의 피해자들이 만나 각자의 복수를 서로 도와준다는 점에서 히치콕의 ‘열차 속의 이방인’과도 유사합니다. 송혜교의 복수는 이모와 의사 주여정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그런데 이와 반대로 가해자 박연진을 비롯한 5명의 악인은 연대하지 않습니다. 가해자들은 연대 대신에 분열을 선택했고, 이 분열을 이용해 송혜교는 법을 어기지 않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면서 완전한 복수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왜 박연진을 중심으로 다른 4명이 똘똘 뭉쳐 자신을 옥죄어 오는 송헤교에게 공동 전선을 펴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가해자들이 원래부터 연대감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대감이 형성하려면 상대에 대한 연민으로 시작해 우정이라는 감정까지 도달해야 하는데 이 5명은 그러기에는 윤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참 모자랍니다. 이들이 연대감을 느끼지 못하고 공동 전선 대신 각자도생을 택하다 공동 파멸을 피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이 연대감을 느끼기에는 이들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단기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2) 때린 사람이 발 뻗고 못 잔다는 속담은 틀렸다

우리 속담에 맞은 사람은 발 뻗고 편하게 자지만 때린 사람은 발 뻗고 못 잔다는 말이 있죠. 김은숙 작가 그리고 저는 이 속담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는 딱 한 가지만 가능합니다. 사랑의 매라는 역설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하죠.

가해자는 피해자의 고통을 모릅니다. 따라서 절대 불면을 못할 리가 없죠.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가해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해자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잊고 삽니다. 그게 너무 익숙하고 편하니까요. 레미르크의 소설 개선문처럼 자신을 고문한 니치 전범을 만나 복수를 하려 했지만 당사자가 자신을 생각과 달리 전혀 기억하지 못해 놀라는 주인공의 모습은 너무나 사실적입니다.

남자 2명이 죽고 가해자의 우두머리는 감방에 가고 한 명은 살인미수로 감방에 가고 한 명은 영원히 목소리를 잃는 복수극이 별다른 우여곡절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5명이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잊고 사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문동은이라는 이름 석 자를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박연진이라는 이름을 잊을 수 없고 그녀가 자신의 꿈, 즉 복수가 인생의 목적이 되어 버린 송혜교를 망각하고 있던 박연진과 그 일당은 절대 이길 수가 없죠. 그래서 복수 영화는 언제나 성공으로 끝나지 실패로 끝난 복수극이 없는 이유입니다. 가해자의 망각을 철저하게 이용해 그것을 발판으로 자신의 복수심을 키워나가는 복수자 그리고 그 복수자가 한 명도 아닌 세 명이 모인 상황에서 이들은 사실 어떤 복수도 해낼 수 있습니다. 만약에 더 글로리가 시즌 2가 나와 버라면 이는 SBS 드라마 모범택시와도 너무나 비슷해지는 그런 상황이 되겠죠.

(3) 복수의 끝이 절대 달콤할 수 없는 이유

더 글로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 박찬욱 감독의 복수에 관한 영화들 특히 올드 보이는 복수에 성공한 유지태가 허무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도 막판에 나타난 주여정의 어머니의 만류(어떻게 그 장소에 알고 나타났는지 그 부분이 조금 설명이 안 되기는 합니다.)로 자살을 포기하지만 송헤교도 자살로 복수극을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복수 뒤에 그 달콤함을 예상했지만 복수를 하고 나면 인간은 대부분 허무감 대신 공허감을 느끼기 때문이죠. 복수를 하려는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의 고통 그리고 송혜교에는 육체에 남은 상처들(역시 마음의 고통의 일부분이죠.)이 포함돼 있는데 사실 그것을 안고 산다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고 끔찍한 일입니다. 복수를 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강렬한 이유는 사실 복수를 통해 이 지긋지긋한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복수 뒤에 얻는 마음의 평화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수를 하고 난 뒤 더 큰 고통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영화에서는 드러나죠.

가장 큰 이유는 복수는 자신의 고통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며 가해자의 행동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었다고 스스로에게 강하게 암시를 건 피해자들이 복수를 통해 가해자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해 되갚아줌으로써 나도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써 갚지 말라는 종교적 가르침은 사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악이 복수를 위해서든 가해를 위해서든 일단 사용되면 악을 사용한 이들의 마음을 어떤 식으로든 바꿉니다. 내가 복수를 위해 사용한 악은 정당해라고도 말해 보지만 이상하게 복수를 하고 나면 더는 스스로에게 설득을 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허무감이 몰려드는 이유는 사실 복수를 하려는 사람들은 오직 복수 하나만으로 살면서 모든 생각과 에너지를 복수에 투자하지만 막상 복수애 성공하면 그다음 순간부터 그동안의 모든 생각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복수의 대상이 사라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수를 하려던 대상이 무너지고 폐허를 만나면 나는 한없이 가뻐야 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마는 아닌 이유는 내가 복수할 대상이 사라지면 생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의미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공허감이 채우게 되는 거죠.

드라마에서 송헤교가 자살시도를 멈추고 6개월 동안 절에서 생활했던 이유는 사랑하는 이의 복수를 돕기 위해 사채업자에게 주여정의 원수를 이감시켜 달라는 부탁을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송혜교가 진심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복수가 예상만큼 달콤하지 않은 이유는 복수가 전형적인 양날의 칼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나 원한은 자신의 마음에 무거운 짐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죽어도 이 무거운 마음은 사라자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무거워지고 더 어두워질 수 있죠. 이러한 심리적인 무거움은 달콤한 감정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물론 관객들은 송혜교의 불행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송헤교는 복수의 과정에서 법의 테두리를 지켰고, 박연진의 남편과 딸 등에게 보여준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생각하면, 사실상 복수극의 예외적 결말인 헤피 엔딩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복수 뒤에 달콤과 희열을 일시적이나마 느끼고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괜찮은 결말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김은숙 작가는 송혜교의 이미지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복수에 관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줄 모든 것을 다 보여주면서도 가히 모든 관객을 만족시킨 멋진 드라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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