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로 상처받는 여성들 연대하라 ‘마스크 걸’

by 신진상
마스크 걸.jpg

웹툰을 원작으로 올해 만들어진 넷플릭스 드라마 중에서 ‘사냥개들’과 ‘마스크 걸’은 대성공했지만 ‘택배기사’만 실패했습니다. 올해 넷플릭스 코리아는 더 글로리와 마스크 걸이 최우수상을 놓고 다툴 듯해요. 더 글로리가 글로벌 1위를 질주한 것과 달리 마스크 걸은 미국인들을 30만 명이나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자니 뎁을 중독으로 만든 그 약 옥시코틴에 대한 신랄한 비판 드라마 ‘페인 킬러’에 가려 2위에 머물렀지만 여하튼 비영어 드라마로서는 거의 2주 동안 1위를 지켰습니다.

저는 원작 웹툰을 못 보았지만 같이 본 딸에 의하면 배우 싱크로율이 200%라고 하더군요. 이 드라마 때문에 원작 웹툰이 166배 판매된다는 뉴스를 보면 대한민국에서 으뜸 미디어는 KBS도 MBC도 SBS도 아닌 넷플릭스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넷플릭스는 미국과 한국이 함께 만드는 일종의 한미 합작 방송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냥 재미로 볼 드라마가 아니었습니다. 넷플릭스 특유의 비판적 시선이 곳곳에 녹아 있었죠. 가장 큰 비판의 대상은 한국의 외모 지상주의와 맹목적 모성애입니다.

1) 한국은 어쩌다 성형괴물의 나라가 되었나?

우리나라 성형 수술은 세계 최고로 유명하죠. 아니 국내에서 가장 머리 좋은 학생들이 가는 서울 의대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강남 성형외과로 가는데 그 실력을 미국의 존스 홉킨스나 하버드의대 출신아라고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미국은 한국처럼 성형 수술이 광풍인 곳도 아니고 성형외과 의사 수입이 다른 의사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보험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 외모가 경쟁력인 게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 세계에서도 통하기 시작했다는 점, 세상은 많이 진보한 것 같지만 여자는 무조건 외모라는 인식을 남성 다수가 공유하고 여성들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 때문에 성형외과는 그 자체가 괴물이 된 거죠. 드라마에서는 거의 페이스오프(아직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닙니다.) 수준의 성형수술을 한 나나가 3천 만 원에 했다고 재소자들 사이에서 크게 떠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비용이라면 못 생겼다고 무시당하며 서루움을 겪던 이한별이 몇 년 치 월급을 모아가며 마련한 돈일 겁니다. 영화 압꾸정은 2000년대 후반 압구정 성형외과에서 한국 배우들처럼 얼굴을 고치려는 중국 단체 관광객들로 병원이 떼 돈을 버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국 특히 한국의 연예인을 동경하는 아시아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솔직히 한국의 삼성전자의 반도체나 LG 엔솔의 배터리 못지않게 성형외과도 마음속 로망이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외화벌이라는 측면에서 성형 열풍을 무조건 적대시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인류 사회가 외모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회가 아닌 곳이 어디 있겠냐만은 한국은 그 도가 너무 심하다는 게 문제죠. 이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숱한 엽기적인 범죄들은 여자를 오직 성적 착취물로 생각하고 외모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남성들의 그릇된 시각에 기인하고 있죠. 사실 대한민국은 상처의 나라입니다. 학교 성적으로 상처받지, 외모로 상처받지, 대학 나와서는 연봉과 자신이 사는 아파트로 상처받지, 대한민국의 상처는 식민지나 전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외부에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지니 차게 신경 쓰는 인정받고 싶다는 문화 때문에 발생한 거죠. 인정 심리가 유달리 한국에서 강한 이유는 물론 천민자본주의와 유교 자본주의가 멱살 잡고 끌어올린 것이 바로 한국의 외모 지상주의인 거죠.

2) 왜 김모미는 김미모에게 아빠가 누군지 안 알려줬을까?

이 드라마에서 원작과 다른 점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모미의 딸 미모의 아버지가 원작 웹툰에서는 연예기획사 사장이지만 시리즈에서는 일생일대의 명연기(아니 일본 야동과 애니메이션에 빠진 오다꾸를 이 배우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를 보여준 안재홍(주오남 역할)과 이미 더 글로리로 최고의 연기를 인정받은 염혜란(김경자 역할) 때문에 더욱 빛났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마지막 순간에서 고현정(세 번째 마스크 걸)이 끝내 미모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지만 정황 상 관객들은 주오남의 딸인 걸 다 알죠. 사실 모미는 주오남의 어머니가 복수하려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 복수의 집념이 광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직접 자신을 죽이려 할 때도 아마 김경자는 내 뱃속에 당신의 아들의 아이가 있다는 말을 하는 순간 용서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과 딸을 총으로 쏘려고 하고 딸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게 만들려는 김경자의 계획을 말리려고 할 때 자신의 완력을 동원했지 미모의 아버지에 관한 진실은 끝내 밝히지는 않습니다. 왜였을까요?

저는 두 가지 이유라고 봅니다. 일단 딸이 받을 상처입니다. 연쇄 살인마로 평생 감옥에서 진야 할 엄마도 원망스러운데 그 엄마가 죽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빠라는 사실을 알면 미모는 완전히 빗나갈 겁니다. 어쩌면 평생 모미를 안 보고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안 그래도 마음의 지옥에 사는 미모가 외할머니 할머니 다 잃고 마음으로 엄마마저 버려 정말 외롭게 살아가는 걸 원치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래사 차마 자기 입으로도 말하기 어려웠겠죠.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미모가 자신의 아들의 씨인 걸 아는 순간 김경자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딸을 외할머니(문숙분) 손에서 빼앗아 자신이 키우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서 평생 자신의 손녀가 엄마를 증오하도록 교육시키겠죠. 고현정은 어쩌면 이런 미래를 가장 끔찍한 악몽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드라마가 원작과 달리 미모의 아빠란 존재에 대해서 끝가지 침묵(물론 관객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누군지 알죠.)한 이유는 시리즈 각본을 쓴 작가들이 혹시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동물 세계에서 부계라는 건 대단히 드문 일이고 아머지의 성 물려주기부터 시작된 남성들의 권력, 역사를 히스토리로 만드는 출발점 자체가 아버지=성=기징=책임 이런 공식의 계열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비판하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에서 원작과는 달리 춘애와 모미가 사이좋은 최고의 절친으로 춘애의 폭력 남자 친구를 함께 죽이는 장면에서 이 드라마가 한국판 델마와 루이스를 꿈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상처받은 여성(외모 지상주의는 남성들이 만든 건 맞죠.)들은 여성의 연대로 문제를 해결하라. 절대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3) 김경자의 광기의 모성애가 말해주는 것들

이 드라마에서 최고의 열연은 역시 엄혜란입니다. 더 글로리에 이어 엄혜란이 이제 넷플릭스의 얼굴이 됐습니다. 엄혜란이 경찰들 앞에서 첫 번째 토막살인 시체를 보면서 한 말은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여성과 동의어로 쓰였던 모성이 얼마나 왜곡되고 편향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죠,

“내 새끼만 아니면 되재.”

바람 난 남편이 떠나서 아들에 집착하고 아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려는 내용은 이미 70년대 드라마부터 단골 소재였습니다. 지금은 어머니들의 아들 선호가 거의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근대화에서 여성은 어머니 아니면 술집의 호스티스로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었죠.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은 물론 비통함 그 자체이겠지만 김경자는 직접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하고 복수의 대상이 김모미 만이 아닌 김모미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엄마와 딸)에게로 향하고 끝내는 김모이의 엄마(어쩌면 사돈이 될 수 있었던)를 죽인다는 점에서 선을 넘었습니다.

이 드라마에 그려진 김경자의 극단적 모성애를 대다수 30대~40대 엄마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틀림없이 부정적으로 생각할 겁니다. 물론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는 그렇죠.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숱하게 죽어나가는 지금 상황을 보면 김경자의 맹목적 자식 사랑이 아직 한국에서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세상에 선진국 세계 10대 무역 대국에 끼는 우리나라 말고 어느 나라에서 교사들이 학부모(실은 학모죠.)에게 시달려 줄줄이 자살하는 경우가 또 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근대화에서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사용된 맹목적 모성애 이 드라마는 이 이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실 김경자는 자신의 아들을 맹목적으로 사랑했다기보다는 집착했다는 주장이 맞습니다. 아들 주오민이 오다꾸로 살면서 정신적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조차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으니까요. 관객들은 웃픕니다.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옵니다. 이런 게 바로 다크 코미디죠. 블랙 코미가가 아니라 다크 코미디 한국이 웹 툰에 이어 세계 최초로 인정받을 문화 상품이 또 탄생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 주식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