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멍거에게 세상이 빚지고 있는 것들
투자 업계에서는 유달리 장수한 사람이 많아요. 존 템플턴도 생각나고요, 이번 주에 타계한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도 빼놓을 수 없죠. 24년 1월 1일 생이니까 한 달 정도만 더 넘게 생존했다면 원 센테니얼 맨이 되었을 겁니다. 투자 업계에는 90세가 넘는 워런 버핏과 조지 소로스가 아직도 현역으로 뛰는 곳입니다. 역발상 투자로 유명한 데이비드 그레먼도 87세 현역입니다. 부는 건강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란 이야기죠. 좋은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과 의외로 도덕군자 같은 생활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일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이어가려는 노력이 장수에 한몫했을 겁니다.
그는 제게 두 가지 면에서 특별히 기억되는 투자자입니다. 일단 끝없이 공부하는 자세입니다. 그가 남들 모두가 테슬라를 위칠 때 중국 전기차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BYD에 투자하도록 버핏을 설득한 것은 유명하죠. 제 생각에는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했던 인터뷰가 올 10월 말이던데, 그때까지도 책을 읽고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첫 번째 이유와 깊은 상관이 있는데 그는 그야말로 명언 제조기였다는 점이죠, 구글에서 찰리 멍거를 치면 바로 명언이 뜨는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의 명언들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1) 자본주의에서 실패가 없다면 지옥 없는 종교와 마찬가지다.
멋진 비유와 최고의 통찰입니다.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를 단 한 가지만 꼽으라면 인간의 공포입니다. 죽는다는 공포보다 무서운 죽어서 더 큰 공포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겁박이 없었다면 절대 종교는 지금의 그 힘을 유지하지 어려울 겁니다. 공포가 탐욕을 언제나 이기는 인간 세상에서는 지옥에 대한 공포가 천국에 대한 달콤한 약속보다 큰 법이죠. 그런데 자본주의를 종교와 비유하면서 그는 지옥을 실패와 등치 시킵니다.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죠. 실패에 대한 공포가 있었기에 즉 실패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기에 지금의 자본주의가 가능했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실패가 없다면 즉 자본주의는 부지런히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낡은 것은 도태돼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겁니다. 대단한 명언이죠. 종교가 지옥에 대해 빚지고 있는 것만큼 자본주의는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실패와 실패자들 때문에 풍요가 가능했다는 말이니.
2) 그 많은 돈을 깔고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는 평범한 기회를 좇아서 지금의 정상에 오른 것이 아니다. 큰돈은 매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에 있다.
갈수록 트레이딩으로 돈 벌기 힘들어지는 세상입니다. 인공지능 때문이죠. 저는 미국 시장은 당연하고 국내 시장도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장기 투자가 인정받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각과 속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트레이딩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장기 투자에서는 인공지능을 아직은 이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내심이 중요하다는 말은 사실 모든 투자자들이 다 알고 있는 말이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진리이기도 합니다. 시장을 트레이더의 관점에서 보려고만 하지 말고 자본주의 이전까지 5000년 간 이어온 문명의 발전을 믿는다는 관점도 필요합니다 99세까지 산 찰리 멍거는 그것을 직접 보여준 사람이죠.
3) 평생 책을 읽지 않는 현명한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워런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나를 '다리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는 참으로 유식하고 박학다식한 사람이죠. 그리고 그 지식 속에서 넘치지 않는 유머 감각도 나옵니다. 이 모든 게 사실 그가 말한 대로 독서 덕분입니다. 그는 자식들에게 3조 4 천 억 원을 물려준 좋은 아빠이기도 하지만 평생 책을 가까이하면서 책 읽고 발전하려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준 게 더 큰 유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의 말 대로 인생은 책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투자자로서 인생의 구루로서 참으로 많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레스트 인 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