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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진상 May 26. 2022

미국과 한국은 이렇게 다르다 두 권의 서점 배경 소설

요즘 길거리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게 동네 서점이죠. 저희 동네에 단 하나 남은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교회는 서점 수의 10배 커피숍은 100배 많은 것 같아요. 요즘 같은 유튜브 시대에 과연 사람들이 책을 그것도 정가를 주고 사야 하는 동네 서점에서 살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버티는 서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경험들이 있죠. 브런치에서 성공한 후 말리의 서재의 e북을 거쳐 종이책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황 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바로 그 경험의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 이어 바로 읽은 책이 ‘죽어 마땅한 사람들’의 작가 피터 스완슨의 신작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역시 공교롭게도 배경이 미국 보스턴의 추리 소설 전문 서점입니다. 아무도 서점을 찾지 않고 서점 이야기도 하지 않는 시대에 제가 읽은 두 권의 책이 연속적으로 서점이 배경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두 권의 책은 서점이 배경이고 책과 영화 이야기가 엄청 많이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이 더 많습니다. 우선 휴남동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로 치면 소설에도 등장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태풍이 지나가고’와 같은 소설입니다. 플롯이 복잡하기보다는 에세이처럼 담백하게 일상과 일상 속 주인공들의 소소한 감정들을 전하는 책이죠. ‘여덟 건’은 치밀하고 정치한 플롯과 흡인력 있고 자극적인 화자의 독백이 독자들을 뻑 가게 만드는 전형적인 추리 소설입니다. 소설에도 등장하고 소설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파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속의 낯선 자들’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 존 D 맥도널드의 ‘익사자’의 장점만 빼닮은 소설이죠. 

두 소설은 또 한국과 미국인이 얼마나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꿈을 꾸는지를 알게 해 준 비교문화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책들입니다. 

우선 미국은 높은 범죄율이 말해주듯이 전 국민이 완벽한 살인을 꿈꾸는 일종의 콜로세움 같은 국가입니다. ‘여덟 건’은 추리 소설 마니아이며 추리 소설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공이 읽은 8권의 추리 소설을 벤치마킹해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의 진실을 FBI 요원이 파헤치는 과정에서 엄청난 반전이 드러나는 내용인데요, 정말 미국은 의사나 변호사나 기업 CEO나 누군가(대개는 남편이나 아내 아니면 그들의 정부)를 죽이고 싶어 난리인 나라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해 주죠. 살인과 살인 대행 그리고 이들을 변호하는 법조계까지 이제는 거대한 사업이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CSI 크리미널 마인드로 앤 오더 범죄의 재구성 등의 범죄 드라마들의 인기도 살인에 열광하는 미국 사회의 증거죠. ‘킬링 이즈 마이 비즈니스, 앤 비즈니스 이스 굿’이라는 메가데스의 앨범 제목(실은 이 대사는 월남전을 소재로 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도의 영화 ‘가든 오브 스톤’에서 주인공 제임스 칸이 한 말입니다.)이 미국인들이 진정 원하는 걸 말해주고 있음이죠. 서점이란 공간은 지적으로 소비된다기보다 정교한 살인을 위한 영감 차원에서 악마적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죠. 미국이 미국인 이유는 미국인들을 사로잡는 감정이 미움이기 때문 아닐까요?  

반면 황보름 작가의 소설은 누구나 서글프고 고달플 것이라고 예상되는 동네 서점이 이렇게 밝고도 아름답게 사업을 꾸려갈 수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밝은 소설입니다, 한국인들은 삶, 무엇보다 좋은 삶에 관심이 많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책이죠. 여주인공이 인스타그램과 연동해 소소한 마케팅을 펼치며 커피숍과 연계해 동네 사람들의 소통 공간으로 거듭나며 사람들에게 책을 읽히고 권한다는 따뜻한 책입니다. 단순하게 책을 파는 게 아니라 책 더하기 서점 주인의 삶의 소중한 철학과 경험을 함께 파는 곳으로 거듭났죠. 동네 서점은 북 토크를 통한 저자와 만남, 저자의 글쓰기 강좌 등 다양한 수익 모델을 갖춘 곳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서점은 사람이 살면서 사람과 함께 호흡하고 같이 생각하며 생각을 키우는 교육적인 공간이더라고요. 잔잔한 소설 휴남동의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보면 한국인은 더 이상 한의 민족이 아니라 희망의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장르가 완전히 다르고 그에 따라 처음에 설계했던 독자층 자체가 다른 두 소설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고 두 나라의 서점을 통해 문화와 국민성을 파악한다는 것이 다소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두 나라가 처한 현실과 국민이 지향하는 가치관이 분명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두 책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테사스에서 일어난 초등학교 총기 사건과 완벽한 살인에 미쳐 있는 미국인들의 정서가 무관할 리도 없고요, 모두가 경제적 자유를 꿈꾸다가 벽에 막힌 한국인들이 힐링을 책에서 찾는 건 당연한 이치죠. 저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둘 다 가상의 서점으로 방문할 수 있다면 어디를 가겠는가? 휴남동 서점은 꼭 가고 싶지만 아무리 추리 소설 팬이라도 ‘여덟 건’의 서점은 찾고 싶지 않더라고요.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고 누군가에게 죽고 싶지도 않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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