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책 중에 주식 및 부동산 책을 제외하고 가장 많인 읽은 주제는 메타버스와 NFT입니다. 그다음으로 많은 주제가 바로 지정학 책이었습니다. 신환종 NH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의 ‘땅 돈 힘’,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페데리코 람피니가 쓴 ‘지도 위의 붉은 선’,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투자자로 활동하는 마르코 파픽의 ‘지정학적 알파’까지 세 권이네요. 참 김연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가 노골적으로 미중 갈등에서 중국 쪽에 서자고 주장하는 책 ‘가난한 미국 부유한 중국’까지 포함하면 총 4권입니다. 작년에도 ‘지리의 힘’ ‘뉴 맵’ 그리고 국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피터 자이한의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이재 경인교대 교수가 쓴 ‘부와 권력의 미밀 지도력’도 있네요. 왜 요 근래에 갑자기 사람들이 지정학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요?
첫 번째 요인은 당연히 미중 갈등입니다. 사람들은 미중 갈등을 지정학적으로 보려고 했죠. 처음에는 양국 간의 관세 전쟁으로 이해하다 곧 패권 전쟁이 본질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기존 패권국과 신흥국의 도전 결국은 전쟁이라는 식의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처음에는 웃기는 소리로 여기다 2018년 미중 무역 분쟁 이후 본격적으로 실감했습니다. 기존에 중국을 싫어했던 사람이나 중국에서 돈을 버는 게 중요하지 이데올로기가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 중국의 힘이 커졌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중 전쟁에서 어느 한 편에 기우는 입장이 아니라 전략적 모호성을 취했죠, 그 이유로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상을 강조했기 때문에 지정학에 대한 관심은 더욱더 커졌죠. 그런데 지정학적 관점에서 미중 갈등을 보면 답은 하나입니다. 김연규 교수의 책은 물론, 미국을 훨씬 더 많이 연구하고 잘 아는 신환종 센터장까지 지정학을 내세운 국내 책들은 대중의 반중 정서와는 달리 미중 갈등에서 중립을 택해야 한다는 사실상의 친중 입장을 견지하고 있죠.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으니 그때그때 상황 봐서 붙을 쪽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정학적으로 그게 맞습니다. 우리는 미국보다는 중국 본토에 가까우니까요. 그러나 중국에는 중국의 지정학이 미국에는 미국의 지정학이 있죠, 그들의 지정학에서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 우리에게는 숙제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기후 변화입니다.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환경 문제에 실제로 관심이 있습니다. 물론 설문조사상으로 사람들은 옳은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으니 MZ세대의 친환경을 곧이곧대로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MZ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환경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환경 문제는 국경을 넘어선 인류의 문제입니다. 국경을 넘어서면 지리가 개입하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정치가 필요하죠. 따라서 지정학으로 문제를 봐야 해결책이 보입니다. 피터 자이한의 셰일 가스, 대니얼 예긴의 ‘뉴 맵’, 지구본 연구소 최준영 소장이 번역한 ‘그리드’ 등의 책이 에너지 문제와 지정학을 엮어 독자들의 새로운 니즈에 호응하는 책들입니다. 혹자는 MZ세대를 가리켜 에코붐 세대라고 했는데 정확히 맞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세계 전쟁의 가능성입니다. 지정학이 최고로 핫 했던 시기기 히틀러가 자신들의 생활권 레빈스라움을 넓히기 위해 주변국들을 침략해야 한다는 논리를 세우던 1930년대인 만큼, 국제적으로 긴장이 고조되면 지정학에 대한 관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전에는 우크라이나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고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동아시아는 물론 유럽의 지정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관련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바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죠. 게다가 핵 공격 운운하며 전쟁의 확전을 주저하지 않는 푸틴의 험악한 발언은 지정학에 대한 관심을 더욱 키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 멀리 유럽 대륙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라는 걸 독자들은 압니다. 사실 우리 국민은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고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날 염려를 그리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높게 보고 중국과 대만 전쟁에 주한미군이 참전하면서 전쟁에 말려들 수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죠. 이 걱정도 사람들이 지정학 책을 더 많이 사보도록 하는 요인입니다.
네 번째 이유는 지정학적 갈등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의 중심을 미국의 실리콘 밸리가 주도하는 4차 산업 혁명에서 원자재 원유 희귀 금속 등이 더 중요해지는 자원 외교자원 경제로 바꾸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현 시기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와 그 반대 방향으로 동시에 진행되는 블록화가 서로 팽팽하게 맞서며 긴장이 한층 고조되는 시점이죠. 특히 희토류를 비롯해 아연 주석 망간 게르마늄의 매장량이 세계 1위인 중국이 더 이상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 세계화의 큰 변수입니다. 중국이 허리를 굽히며 자신의 물건을 사달라고 부탁할 이유가 없는 거죠.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희토류가 있다는 40 년 전의 덩샤오핑의 이야기는 중국이 더 이상 발톱을 감출 이유가 없다는 뜻이죠. 21세기 경제는 미국은 물론 중국 등 다극이 중요해지는 체제로 바뀌기에 살아남으려면 미국 외에 세계를 알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고 이는 지정학의 중요성을 더욱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중국 외의 시장을 찾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인도와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지정학 책들은 이들 국가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지도 위의 붉은 선’의 저자 페데리코 람피니는 경제는 안보 문제와 분리될 수가 없다고 주장했는데, 저도 그와 비슷한 생각입니다. 지금까지처럼 경중안미로 경제는 중국과 가까이, 안보와 정치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이 너무 나이브하구나, 전에는 맞았는데 이제는 환상이 되었구나라는 느낌이 지정학 책을 읽을 때마다 더욱 강화됩니다. 그만큼 중간에 낀 우리가 힘들어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