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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중국몽을 날려버린 제프리 헌턴의 허리 디스크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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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가정이 의미 없다지만 상상력을 키우고 창의력을 훈련시키는데 역사에서 만일이라는 게임처럼 유익하고 재미있는 게 없습니다. 가장 흔한 만일 게임은 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가 이겼다면 이죠. 그런 장르의 영화나 문학 작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뉴욕타임스 IT 전문기자 게이드 메츠가 쓴 인공지능의 역사서 ‘AI메이커스’를 보면서 만일 게임을 해보았습니다. 지금 AI의 헤게모니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국운을 건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는데요, 만약에 미국의 경쟁력의 원천인 제프리 헌턴 토론토대 교수가 허리 디스크를 앓지 않아 정상적으로 비행기 이동이 가능했다면 현재 미국과 중국의 AI 전쟁에서 어떤 승부가 전개되고 있을까 라는 질문이죠.

제프리 헌턴 교수는 영국인으로 인공지능 정확히는 딥 러닝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캐임브리지 대학에서 학사 스코틀랜드에서 코넌 도일, 제임스 와츠 등을 배출해낸 에든버러 대학에서 석박사를 땄죠. 그는 10대 때 어머니를 대신해 난방기를 달다 허리가 삐끗한 후로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심해지면서 누울 수는 있어도 잠시라도 앉아있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비행기 이동이 불가능해진 거죠. 헌턴은 인공지능의 천재인데 그 천재성은 철저하게 DNA에 담겨 있는 생각을 갖게 해 줍니다. 근대 컴퓨터 논리의 기본을 제공한 불 논리의 창시자 조지 불의 고손자입니다. 증조부인 찰스 헌턴은 수학자이자 SF소설 작가였죠. 인공지능에서 꼭 필요한 테서렉트라는 4차원 개념을 개발해 마블 영화에도 등장한 적이 있는 대작가입니다. 사촌인 조앤 헌턴은 영국인으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핵물리학자입니다.

헌턴 교수는 애완동물로 살모사를 기르는 등 괴짜의 기질도 다분했는데요,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자라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거주하기를 포기하고 대신 캐나다를 택했습니다. 그곳에서 페이스북의 인공지능을 총괄하는 얀 르쿤이나 지도 학습의 대가 요슈아 벤지오 같은 이를 키워냈죠. 이들이 미국 인공지능의 발전을 지휘하면서 이들은 캐나다 마피라라고 불립니다. 남들이 비웃던 시절에 인간의 두뇌를 벤치마킹한 인공신경망 이론으로 서서히 인정받던 헌턴 교수는 마침내 자신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키워 줄 대기업을 찾습니다. 당장 결실을 원하지는 않지만 장기간 믿고 투자할 그런 기업을 찾았죠. 그는 두 가지 방법, 협상 전문가를 영입해 협상을 맡기는 방법과 경매를 붙이는 방법 중 후자를 택해 구글 바이두 마이크로소프트, 딥마인드(알파고 개발사로 나중에 구글에 합병되죠. 당시는 돈이 없어서 딥마인드는 주식으로 참여했다가 경매 초기에 기권합니다.)간에 영국식 경매가 붙여졌습니다.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가면서 중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빠지고 구글과 바이두만이 남았습니다. 바이두는 카이 유라는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인공지능 전문가를 영입해 그에게 경매를 맡겼죠. 바이두와 구글은 가격을 계속 올리면서 포기를 안 했는데 결국 헌턴이 경매를 멈췄습니다. 4900만 달러에 구글에 회사를 넘기기로 한 거죠. 귀한 기술이 중국 측에 넘어가기를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로 허리 때문입니다. 중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 허리가 아니었던 거죠. 그게 2012년입니다. 그때는 중국과 미국의 격차가 많이 벌어졌을 때죠. 구글은 헌턴과 나중에 딥마인드의 대미스 하사비스가 합류하면서 구글은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기업이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바이두가 스탠퍼드 대학 교수였던 홍콩계 미국인 앤드루 웅을 영입하고 자체 빅 데이터를 활용해 급속히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은 구글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바이두의 경우는 자율주행차의 최고 인재 치루를 영입해 구글의 웨이모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요. 자율주행차 역시 아직은 바이두가 구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입니다.

원래 중국에는 구글이 2000년대에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AI슈퍼파워’를 쓰고 미중 전쟁에서 중국이 이긴다고 주장하는 대만계 인공지능 전문가 리카이푸가 구글의 초대 중국 법인 사장이었는데, 그는 구글과 아주 안 좋게 끝이 났습니다. 사실 구글이 잘못한 게 아니죠. 바이두를 키워주려는 중국 공산당이 짝퉁 구글을 만들어, 구글의 중국 법인도 구분하지 못한 사이트로 불법 업체 광고를 하는 것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구글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구글이 반체제 인사의 지메일을 수시로 검열하는 중국 정부의 통제에 못 견뎌 사업을 접고 물러난 겁니다.

그러다 구글은 생각을 바꿉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은 후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당시 세계 1위 커제와 알파고의 새 버전과 바둑 대결을 중국에서 펼치며 이를 중국 재친출의 기회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TV 중계 및 인터넷 중계를 차단하고 기사에도 절대 구글이라는 이름을 내보내지 않는 정도로만 허용했죠. 구글은 완전히 중국에서 재기가 실패했습니다. 이후에도 드래곤플라이라는 중국 공산당이 싫어할 만한 키워드를 자체 검열하는 검색엔진을 만들어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고 했는데, 이때는 내부에서 반발이 일어나 계획을 접어야 했습니다.

바이두나 텐센트 그리고 안면인식 소프트웨어 업체인 센소다임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인공지능은 갈수록 미국의 경쟁력을 따라잡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들도 인정하듯 아직 차이가 많이 벌어집니다. 만약에 인공신경망의 아버지 헌턴이 바이두를 택해 중국에서 일했다면 미국과 중국의 격차는 어떻게 더 벌어졌을까요? 좁혀졌을까요? 제프리 헌턴이 구글을 파트너로 택하면서 구글의 음성 인식, 번역 수준, 고양이 개 등 동물 인식 기능 등이 급격히 향상됐습니다. 순다르 피차이가 야심 차게 내놓은 구글의 음성 비서 듀플렉스 역시 헌턴의 연구가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겠죠. 구글의 인공지능은 제프리 헌턴 없이 데미스 하사비스 원 톱 만으로 오늘의 위치에 절대 오르지 못했을 겁니다. 그가 없었다면 구글로 대표되는 미국과 중국의 AI 전쟁에서 격차가 좁혀졌을까요? 저는 좁혀졌든지 아니면 중국이 미국을 이길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만큼 AI에서 헌턴의 이름값이 크기 때문입니다. 역사에서 만일이 의미가 없다지만 헌턴이 허리 디스크 때문에 인공신경망 기술이 구글을 중심으로 미국 실리콘 밸리가 절대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중국보다 미국과 거리가 더 가깝게 여겨지는 많은 한국 국민들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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