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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이 시도 이렇게 잘 썼구나!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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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아마 유대인이 쓴 책 중에 성경과 탈무드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일 겁니다.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많이 그리고 뜨겁게 읽히고 있는데요, 미국에서는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권하는 책으로도 정평이 나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와 아내 등 모든 가족이 아우슈비츠에서 죽고 자신의 첫 아이는 강제로 낙태당한 사내, 본인도 아우슈비츠에서 죽을 뻔했던 사람이 삶의 의미를 발견해서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했던 이야기는 자살로 삶을 마감하려는 수많은 이들을 구해냈죠.

그가 마지막으로 쓴 자서전이 드디어 국내에 출간이 되었는데요. 번역자는 문화심리학자이며 심리상담사이며 소통 전문가인 박상미 작가더라고요. 부제는 ‘어느 책에도 쓴 적 없는 삶에 대한 미지막 대답’입니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정신과 의사로 가장 많이 상담한 케이스가 불면증이라는 사실을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잠을 못 잔다는 고통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체감하지 못할 수 있죠. 그는 수면제에 의존하지 않고 의미치료(로고 테라피), 역설의도, 태도 가치 등의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불면증을 치료해준 의사인데요, 책에 보면 놀라운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현대사 교황 중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이죠,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 6세를 그가 만났을 때 숱한 불면증 환자를 만난 그에게서 불면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 특유의 얼굴이 보인 거죠. 교황님이라면 아무 걱정 없이 잠을 잘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고통에 열려 있는 그의 눈과 귀 때문에 정말 잠을 잘 이룰 수 있을까 라고 의구심을 가질 분도 게실 듯합니다. 제 예상은 후자였는데 맞았습니다. 바오로 6세가 그와 헤어지면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박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빅터 프랭클이 그에게 부탁한 게 아니라, 교황이 세계에서 최고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에게 부탁한 말입니다. 과연 그의 기도가 통해서 교황님이 그 후로 편하게 주무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이란 그리고 삶이란 어느 누구에게도 만만치 않은 무게로 다가 오는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빅터 프랭클이 천재이고 글을 잘 쓰고 강연도 잘하는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시를 이렇게 잘 쓰는 줄은 몰랐네요. 46년에 쓴 시를 직접 옮겨 봅니다.

“죽은 당신들이 나를 찾아온다.

당신들은 내게 말한다.

우리를 위해 살아달라고.

삶에 대한 의무감이 나를 에워쌌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을 죽인 그들을 죽일 수가 없구나.

붉게 타오르는 태양 속에도.

나를 용서하는 당신들의 눈빛이 있다.

푸른 숲 속에도

내게 손짓하는 당신들이 있다.

당신들이 빌려준 목소리로

지저귀는 새들이 나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내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것을.“

빅터 프랭클은 삶, 모든 이의 삶을, 어쩌면 히틀러도 포함된, 사랑했을 수 있습니다.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를 살렸고 그는 정신과 의사로 수많은 이들을 살려 이들에 보답했죠. 그 의무감은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자신의 가족과 수많은 유대인들에 대한 부채 의식 때문에 생겼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야 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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