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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으로 다친 마음, 다산의 글로 힐링을 받고 싶다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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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가 부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죠. 부는 악이요 부자가 되는 길은 타락천사가 되는 길로 생각했습니다. 부귀를 쫓아 스스로 타락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공자님은 수시로 제자들에게 말하기도 했지요. ‘견리사의’라는 말처럼 부가 생기면 그 부가 생긴 과정을 반드시 봐라. 의로운 부인지 아닌지를 따지라는 이야기는 사실상 부와 거리를 두고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부를 이익 혹은 사익의 동의어로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거라고 봐야죠. 우리도 얼마 전까지는 공자님처럼 살았습니다. 청빈은 있지만 청부는 없었죠. 부자 특히 재벌에 대한 인식은 아주 안 좋았습니다. 일반인들이 부에 대하 태도가 달라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정도로 유교의 영향이 본국인 중국보다 한국에서 특히 강했다는 이야기죠. 공자의 나라 중국은 유교를 버리고 한때는 사회주의 지금은 중국 특색의 시장경제를 채택해 돈에 대한 태도(덩샤오핑도 부자는 좋은 것이라고 했죠.)도 일찌감치 바꾸었습니다만 한국은 자본주의를 반강제적으로 받아들여 열심히 일하면서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에도 이상하게 부 특히 부를 지닌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주 안 좋았습니다. 물론 이 정서가 유교 탓이 아닌 질투심이나 욕망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유교의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은 건 분명한 사실이죠. 그러다 2020년 코로나 이후 자산 시장에 돈이 급격히 몰리고 모두가 각자도생을 추구하면서 국민들의 부에 대한 태도도 완전히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부는 좋은 것이요, 부자는 더욱 좋은 것이요.”

일부는 부에 대한 실용적 태도를 조선 후가의 실학에서 찾아 이를 자본주의의 맹아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하지만 저는 이 시도에 부정적입니다. 조선에서 가장 진보적인 실학자의 표상으로 불리는 다산 정약용조차 부라는 관점에서는 기존 성리학과 별로 다르지 않은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다산이 다른 점은 전통적인 부에 대한 가치관에 백성과 민초에 대한 사랑을 담아 힐링하고 위로해주는 글을 썼다는 사실이죠. 다산은 천재 중의 천재이며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지성이죠. 그런 그가 제자 성수철에게 쓴 편지를 보면 지그처럼 낮에는 국장에서 밤에는 미국장에서 무너지는 우리 후손들에게 정말 위로가 되는 이이기이기도 합니다. 동양철학의 정수를 쉽게 자기 계발서로 담아내는 조윤제 작가의 ‘다산의 마지막 질문’에 실린 편지입니다.

“산에 살며 입이 없어 사물의 이치를 가만히 살펴보니, 바빠 움직이며 노심초사하는 것은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었다. 누에가 알에서 깨면 뽕잎이 먼저 움트고, 제비가 알에서 나오면 날벌레가 들에 가득하고, 아이가 세상을 갓 나와 울음을 터뜨리면 젖이 나온다.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는 아울러 그가 먹을 양식도 마련해준다. 그런데 어찌 깊은 근심과 지나친 염려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잡을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하는가? 옷은 몸을 가리면 그만이고 음식은 배를 채우면 그만이다. 봄에는 보리가 나올 때까지 쌀이 있고, 여름에는 볕이 익을 때까지 낟알이 있다. 그러니 말지어다. 말지어다. 올해 내년의 일을 꾀하지만 어찌 그때까지 살지를 알 수 있겠으며, 어린 자식을 어루만지며 증손 대의 삶까지 설계하지만 그들이 생각 없는 바보들이겠는가?”

다산은 선경후실용을 자신의 공부법으로 생각하며 늘 공부의 완성을 실사구시와 실용으로 생각했던 분이죠. 이 편지에서 드러난 부와 돈에 대한 인식은 이상적이기는 합니다. 현실주의자들은 이런 비판을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늘이 모든 생명에 먹고 살거리를 충분히 준다면 왜 동물들은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고 많은 동물들이 굶어 죽을까요? 왜 먹거리가 하늘에서 내려주는데 사람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정약용 같은 천재적인 실학자들도 노동을 통해 세상이 연결된다는 생각에는 못 미쳤던 것 같습니다. 몸을 가리는 수준이라도 그 옷을 입으려면 누군가는 그 옷을 만들어야 하고 그 인건비와 재료비는 누군가가 또 다른 노동으로부터 나옵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거지 자연이 생명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먹을 것은 항상 있다? 분자 조합기가 탄생해 공중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는 예수님이 재림하지 않는 한 어림도 없는 일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산의 낙관론과 마음에 감동받았습니다. 다산이 강조한 것은 부를 탐하지 말고, 그전에 마음을 다스리고 책을 읽고 공부하라는 요구죠 지금 같은 약세장에서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조선시대는 상류층이 부를 독점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도덕성에서 우위에 서서 지배체제를 공고하게 했습니다.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르고도 국가가 무너지지 않았던 덧은 도덕성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성은 세계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때 지켜질 수 있습니다. ESG의 시대 도덕성이 돈을 버는 데 너무나 중요해진 이유는 ESG는 이 지구가 좋아질 수 있다는 낙관론 덕분입니다. 물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 대로 도덕성은 언제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의 일이죠. 마음을 다스리기 전에 일단 배가 불러야 하고, 그다음이 도덕성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도덕적으로 생각하고 도덕적으로 활동하려고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1경 2 천조원을 운용하는 세계 최고의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처음 꺼낸 ESG는 단기 이익이 아닌 장기 이익을 보라는 가르침입니다. 저는 다산의 가르침이 래리 핑크 회장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계열을 늘려 단기가 아닌 중장기로 투자를 길게 보는 것이 거의 재난에 가까운 양대 증시를 이겨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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