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공화당의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현재로서는 바이든이 민주당의 약대 최악의 대통령이 될 것이 거의 기정사실로 보입니다. 최악의 지지율도 지지율이지만 집권 2년 차에 초선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필패론이 일면서 당 내부에서 현직 대통령을 2년이나 남은 다음 선거에서 다른 후보로 교체하자는 의견이 나온 건 제가 볼 때 양당 통틀어 바이든이 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이든은 시작은 좋았습니다. 특히 전통적으로 그리고 압도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했던 월 스트리트가 현직 공화당 대통령을 버리고 민주당을 택한 거의 첫 번째 대통령이었죠. 아마 월 스트리트는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월 스트리트가 트럼프를 버린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일단 그들은 중국에 전체 자산의 20%를 투자한 이들인지라 반중을 외치며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한 뒤 반세계화를 노골적으로 선언한 트럼프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돈은 국익보다 더 좋은 것이니까요.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그의 예측 불가능한 기질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건 자신들이 어디다 투자할지 모른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4년 내내 미국 주식 시장은 좋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돈을 지켜 줄 사람이 트럼프가 될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 바이든을 택한 겁니다. 그러나 월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이후에 최악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들과 그리고 바이든이라는 악재를 만나 사면초가에 처한 서학 개미들은 바이든이 슈퍼맨이 되어 이 위기를 끝내주기를 진심으로 고대할 겁니다.
일단 바이든은 지금 주가가 얼마인지 호가창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을 겁니다. 그의 말대로 주가가 아니라 물가가 먼저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물가를 잡지 않으면 주가가 반등할 가능성은 거의 없죠. 물가가 올라가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계속해서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느 누가 원금이 파산하지만 않으면 보장되는 채권에 투자하지 변동성이 그렇게 큰 주식에 투자하겠습니까? 물가가 올라가도 금리가 올라가도 주가에는 쥐약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주가에 단기적으로 최악의 악재 중의 하나인 전쟁까지 겹쳤습니다. 물론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바이든이 아닌 푸틴이 제공했습니다. 전쟁을 일으켜 유가를 끌어올린 장본인이 그이기 때문이죠. 그는 전쟁을 원했고 러시아가 먹고사는 유일한 자원인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올라가야 일단 그가 러시아에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세계가 죽어나가든 말든 그의 관심사는 아니죠. 게다가 전쟁은 시작하면 그 누구도 방향을 알 수가 없습니다. 푸틴 본인이 시작한 전쟁이지만 본인이 끝낼 수 있는 전쟁이 아니라는 점은 푸틴의 정신적 스승 히틀러가 잘 보여준 바 있습니다.
바이든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바이든은 그 문제를 해결할 슈퍼맨이 될 수가 있을까요? 그는 최악의 악당 렉스 루커를 만난 슈퍼맨의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자 친구인 에이미 아담스를 구할 것인가, 자신의 엄마인 다이안 레인을 구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은 분명하죠. 슈퍼맨은 동시에 벌어진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었죠. 슈퍼맨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바이든은 슈퍼맨이 아닙니다. 슈퍼맨이 될 의지는 있지만 슈퍼맨을 맡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습니다. 제가 볼 때 바이든의 치명적인 실수는 러시아를 현재의 주적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중국을 미래의 주적으로 견제하겠다는 발상이 현재 미국의 국력으로 가능한지를 제대로 따져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미국은 40년대 독일과 일본을 동시에 상대하던 그때의 국력이 아닙니다. 그때는 소련이라는 막강한 동맹이 있었고, 아직 식민지를 잃지 않은 영국이라는 든든한 우방도 있었죠. 그러나 지금은 그런 역량, 즉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할 때 도와줄 능력도 있으면서 의지도 있는 그런 나라가 없습니다. 일본은 의지는 있으나 능력이 없고 유럽은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인도는 앞으로 20년 뒤면 미국을 도와줄 능력은 될지 모르지만 전통적인 우방 러시아를 등지고 미국과 동맹까지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인도는 미국이 중국의 적이기 때문에 적의 적은 친구라는 생각에서 손을 잠시 잡았을 뿐이죠. 게다가 바이든은 이란과 관계를 개선해보려고 하다가 최대 산유국이며 전통적인 우방인 사우디 아라비아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최악의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우디와 가까워지려면 당연히 이란과 핵협상은 진전이 안 될 것이고, 파키스탄의 핵개발 자금을 대준 사우디를 경계하는 인도는 더욱더 미국을 믿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외교의 달인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바이든은 집권 2년 동안 외교로 잃은 것이 얻은 것보다 훨씬 더 많죠. 유일하게 얻은 것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함을 택했던 한국이 확실하게 한미 동맹 쪽으로 기울었다는 정도?
저는 바이든이 이 딜레마에서 탈출하려면 초당적으로 나서서 1970년 이후의 세계 질서를 만든 키신저의 조언을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바이든이 푸틴을 더 모욕해서는 안 된다며 푸틴이 궁지에 몰리면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바이든이 푸틴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즉 충분히 핵전쟁을 치를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땅의 일부를 떼 주고 휴전에 합의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키신저는 70년대 소련의 적이었던 중국과 손잡아 결국 소련을 무너뜨리고 오늘날의 중국을 만든 장본인이기는 합니다만 지금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즉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집중하려면 러시아에 대해서 조금은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경제만 챙기고 석유만 확보하면 됐던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은 이 두 가지는 기본이고 여기에 민주주의 인권 자유까지 챙겨야 합니다. 이 가치들을 포기하면 기존 민주당 지지자들은 바이든이 트럼프와 뭐가 다르냐고 생각하고 2년 전애 보여주었던 그런 열성적인 지지를 거두겠죠. 참으로 진톼양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철학적으로 미끄러진 비탈길의 오류라는 게 있습니다. 너무 많은 가정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야 가능한 일을 마치 현실에서 일어날 것처럼 착각할 때 발생하는 생각의 오류입니다. 저도 서학 개미로서 제발 전쟁이 끝나고 그래서 유가가 잡히고 그래서 물가 상승이 꺾인 뒤 주가가 작년처럼 올라가 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낮은 확률의 일이 한 번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4번 일어나야 합니다. 바이든이 슈퍼맨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만 그런데 과연 그게 정말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