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출의 동해안별신굿 그룹에 빠져서 규슈대를 거닐며 태평소 산조를 듣던 나는 어느날 김석출의 유투브 영상 아래에서 어떤 댓글을 발견한다.
석출~ 코리안 콜트레인~
존 콜트레인이라는 흑인이 재즈를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무슨 악기인지도 몰랐다. 그때 나는 김석출이 코리안 콜트레인이 아니라 콜트레인이 아메리칸 석출이겠지, 라고만 생각했는데, 도무지 관심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가 2015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콜트레인을 듣게된 건 한참 시간이 흘러서 2018년, 그때도 좋은 줄은 모르겠고, 아무튼 자이언트 스텝이나 블루 트레인 같은 50년대 이지한 연주들만 몇 번 들었다.
2023년이 되어서야 프리 재즈 시기의 연주를 들었다. 이제 왜 석출킴을 코리안 콜트레인이라고 했는지는 조금 이해가 된다.
인생에서 접신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경험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뒤가 문제다. 그 다음이 문제다.
접신이라는 게 마치 어떤 둥근 말랑말랑한 전혀 새로운 물질이 두 손 안에 턱하고 떨어지는 그런 경험이기 때문에, 접신하고 나서는 그 둥글고 말랑말랑한 걸 어떻게 할 지가 문제가 된다.
좀 힘을 빼고 그걸 공기 중으로 산화시켜버릴지, 아니면 잘 다듬어서 조각을 만들어낼지, 대강 그 가운데에서 일이 결정된다.
언제나 중용이 제일 좋지만, 지나치게 훨훨 힘 빼고 날려버리는 경우에는 도사 같은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김지하가 그랬고 콜트레인이 그랬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힘 빼고 훨훨 날려버리기 직전부터 그 전으로 어느 정도 거슬러가면 기가 막힌 퍼포먼스가 기다린다.
콜트레인은 그게 60년대 초에 엘빈 존스하고 같이 할 때였던 게 아닌가,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앨빈 존스 말로, 그 때는 매일 밤에 콜트레인이랑 공연하는데, 매일 밤마다 자기들이 새로운 경지를 돌파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사랑도 썸 탈 때가 제일 좋은 거고, 여행도 가는 비행기에서 제일 좋은 거고, 혁명도 혁명 도중에만 아름다운 것인가.
어떤 사람들에게 인생은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저 콜트레인 쿼텟이 1960년대 초 밤에 공연하듯이 그렇게만 살면 되는 것이다.
콜트레인에게는 오스카 피터슨이나, 찰스 밍구스나 길레스피 같은 다른 흑인 재즈 연주자들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형태의 개인주의랄까, 내면의 한 점을 향하고 있는 강한 집중력에서 오는 주변을 씻어내고 순화시키는 어떤 정신의 힘이 느껴진다.
맨날 주자전서와 왕양명전집을 들여다보다보면 이런 걸 일종의 심학적 스타일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데, 아무튼 나로서는 공감이 많이 되면서도 경계도 되는 그런 면이 있다.
콜트레인 쿼텟의 연주는 오케스트레이션을 지향하지 않으며, 반대로 각자가 각자의 노래를 부를 때 그 노래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것을 지향한다...
이런 연출이라니... 마일스는 말할 것도 없고 두드려 패가면서 오케스트레이션했던 밍구스와 비교한다면 참으로 콜트레인은 평화주의자에다 비간섭주의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또 기껏해야 양명학자의 비간섭주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