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조각가, 나는 아직 미완성이다.

by 글림

시간은 조각가 같다.
흘러갈수록 나를 조금씩 깎아낸다.


어느 날은 아프게 한쪽을 덜어내고,
어느 날은 거칠게 표면을 다듬는다.
필요 없는 부분들은 망설임 없이 버리면서
침묵 속에서 조각을 멈추지 않는다.


처음엔 그저 뭉텅이였던 내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아무런 모양도 없던 나는
눈이 생기고,
코가 드러나고,
입이 생기고

연약한 선들과

완벽하지 않지만 분명한 ‘나’의 형상을 얻어간다.

marek-studzinski-TEZLseYfyz0-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Marek Studzinski

시간이 갈수록

선명한 굴곡을 더욱 드러난다.


디테일한 광대의 각도와

하나하나 새겨지는 머릿결처럼
시간은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다.


아직 완성작은 아니지만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분명한,
방향을 아는 조각상처럼
나는 다듬어지고 있다.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집요하게
나를 만들어간다.


이 아픔은 헛되지 않다.
의미 없는 상처는 없다.

아플수록 조각상은
더 선명해지고, 더 또렷해진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먼 훗날,
다음 세대가 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섬세한 조각가처럼

아름답게
끝내 나를 완성해 간다.


-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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