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기록, 회고, 공유
'일상의 운영을 위한 앱'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날, 노트에 '일상'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다음 줄을 채우지 못했다. 일상을 돕겠다면서, 정작 일상이 뭔지 정의하지 못한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도울지를 말하려면, 먼저 무엇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이상적인 일상의 모습을 다음과 같은 사이클로 정의했다. ‘계획’→’수행’→’기록’→’회고’→’공유’
수행하는 것은 앱이 대신해 줄 수 없다. 러닝을 대신 뛰어줄 앱은 없으니까. 그래서 나머지 네 가지를 도와주는 앱을 만들기로 했다.
계획: 무엇인가 의미가 있으려 먼 뭐든지 기획(계획)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 의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심지어 '무계획'이라는 것조차 역설적으로 계획의 일종이다.
기록: 점점 더 개인화되고 다양성이 두드러지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역사를 오직 자신만이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한다. 과대한 정보의 시대에서 자신을 유지하는 것은 추억과 기억이다. 추억이나 기억은 희미해진다. 기록을 해놓는 것은 자신을 복사해 놓는 것이고 백업해 놓는 것이다.
그런데 백업만 해두고 한 번도 열어보지 않는다면?
회고: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린 소중한 기억도 나쁜 기억도 잊는다. 그 일이 벌어진 순간 이후로부터 모든 기억은 잊힌다. 기록한 것을 돌아봐야 한다.
공유: 오늘날 우리는 공유라는 기능을 상당히 많이 쓴다. 공유라는 말의 뜻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동으로 가진다'라는 뜻이다. 기억을, 여정을 공동으로 가지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나라는 존재를 다른 이에게 알리는 행위는 사회적 동물로서 중요한 일이다.
처음에는 이 사이클을 하나의 화면에 전부 넣으려 했다. 기획→기록→회고→공유가 한 흐름이니까, 한 곳에 있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직접 화면을 그려보니 무언가 어색했다. '계획'과 '기록'은 무언가를 하는 과정 중의 일이고, '회고'와 '공유'는 그것이 끝난 뒤의 일이다. 시제가 다르고, 사용자의 심리 상태도 다르다. 같은 집이라도 서재와 거실은 나누는 것처럼, 맥락이 다른 행위는 공간을 분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하나의 앱이지만 내부에서 두 개의 서브앱으로 분리하기로 했다.
Odyssey60 — 계획과 기록을 담당한다.
Odyssey30 — 회고와 공유를 담당한다.
사용자는 하나의 앱 안에서 탭 전환만으로 행동 모드와 성찰 모드를 오갈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각 모드의 맥락은 섞이지 않는다.
두 앱을 분리하면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다. "기록한 것을 회고 쪽에서 다시 입력해야 하는가?" 초기 버전에서는 실제로 사용자가 직접 회고 항목을 옮겨야 했다. 예상대로, 아무도 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 연속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Odyssey60에서 발생한 활동이 Odyssey30의 타임라인 이벤트로 자동 생성된다. 사용자가 별도로 옮길 필요 없이, 기록과 회고 사이에 자연스러운 흐름이 만들어진다.
Odyssey60은 일상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도구 모음이다. 계획에 흔히 사용되는 여러 도구를 한 곳에 모으되, 각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할 일이다. 오늘 해야 할 것, 언젠가 해야 할 것을 빠르게 생성하고 체크한다. 여기에 루틴을 더했다. "매일 운동하기"를 매번 새로운 할 일로 만드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3일 차부터는. 매일 반복되는 행동은 루틴으로 등록해 두면 자동으로 반복된다. 운동, 독서, 일기 쓰기처럼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행동에 적합하다.
메모는 떠오르는 생각을 즉시 포착하는 도구다. 할 일처럼 구조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형태의 텍스트를 담는다. 기록은 메모보다 한 단계 깊다. 특정 활동이나 경험에 대해 의도적으로 남기는 서술이다.
메모가 순간의 포착이라면, 기록은 경험의 보존이다.
일정은 시간이 정해진 약속이나 이벤트를 관리한다. 캘린더 화면에서 할 일, 루틴, 일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흩어진 계획 항목들이 시간축 위에서 하나의 그림으로 보이는 것이 핵심이다.
단순히 항목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복잡한 목표를 다루기 어렵다. 처음에는 폴더 구조로 정리하려 했다. 할 일 안에 할 일, 메모 안에 메모. 금세 한계가 왔다. 그래서 발상을 바꿔 프로젝트라는 캔버스형 보드를 만들었다. 프로젝트 안에서 할 일, 메모, 기록 등 여러 항목을 자유롭게 배치하고 연결할 수 있다. 드래그 앤 드롭으로 구성 요소를 배치하고, 요소 간 관계를 연결선으로 시각화한다. 여행 계획, 사이드 프로젝트, 학습 로드맵 같은 복합적인 목표를 다루는 데 적합하다.
Odyssey30은 Odyssey60에서 쌓인 기록을 돌아보고, 의미를 부여하고, 나누는 공간이다.
모든 활동은 시간순으로 타임라인에 정렬된다. 할 일 완료, 메모 작성, 기록 추가 같은 이벤트가 자동으로 쌓인다. 일주일 뒤에 타임라인을 열면 "아, 나 이번 주에 이런 것들을 했구나"가 한눈에 보인다. 활동 타입별 필터와 기간별 필터를 제공하여 원하는 관점으로 자신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다.
타임라인은 "무엇을 했는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왜 했는가", "어떤 기분이었는가"는 사실 목록에 담기지 않는다. 성찰은 그 사실에 의미를 붙이는 행위다. 타임라인 이벤트에 감정, 생각, 깨달음을 덧붙일 수 있다. 하루·주간·월간 단위로 활동 패턴을 시각화하고, 반복되는 행동을 식별하며, 통계 기반의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나는 월요일에 유독 루틴 달성률이 낮다"와 같은 패턴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돕는다.
스냅숏은 특정 순간의 상태를 캡처하는 기능이다. 단순한 스크린숏이 아니라, 그 시점의 활동 데이터와 맥락을 함께 저장한다. 이전 스냅숏과 비교하여 변화를 추적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의 마일스톤, 의미 있는 성취의 순간을 포착하는 데 적합하다.
성찰과 스냅숏은 나만의 것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피드를 통해 다른 사람과 나눌 수도 있다. 스냅숏을 컬렉션으로 묶고, 피드에 게시하면 자신의 여정을 공유할 수 있다. 기억을, 여정을 공동으로 가지는 것이다.
공유는 단순한 SNS 기능이 아니라, 앞서 정의한 일상의 사이클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다.
여기까지 만들고 나서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을 마주했다. 기능이 많다고 해서 사용자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이 앱의 기획 의도와 기능을 전부 알고 있으니까 어떤 기능을 조합해야 하는지 안다. 하지만 사용자는 다르다. 루틴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매일 운동하고 싶다"는 바람을 루틴으로 연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간극을 AI 컴패니언이 메운다. PT 트레이너가 운동을 대신해주지는 않지만 무엇을 언제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듯이, 컴패니언은 사용자의 바람을 앱의 기능으로 번역한다. 사용자는 "일기를 매일 쓰고 싶어",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싶어"처럼 근본적이고 추상적인 바람을 말하기만 하면 된다. 컴패니언이 그 바람에 맞는 루틴을 생성하고, 알림을 설정하고, 진행 상황을 확인한다. 사용자는 앱의 기능 체계를 학습할 필요가 없다. 되고 싶은 일상을 이야기하면, 컴패니언이 적절한 기능을 큐레이션 한다.
컴패니언은 하나가 아니다. 목적에 따라 여러 컴패니언을 사용할 수 있다. 운동 습관을 잡아주는 루틴 컴패니언, 소셜 활동을 독려하는 소셜 컴패니언, 여행 계획을 함께 세우는 여행 컴패니언, 앱 사용법을 안내하는 가이드 컴패니언 등이 있다. 각 컴패니언은 고유한 성격과 말투를 가지고, 맡은 영역에서 사용자의 일상을 설계하고 관리한다.
컴패니언은 세 가지 모드로 사용자와 만난다.
인터랙션 — 사용자가 직접 대화를 시작한다. 일상에 대한 제안을 받거나, 새로운 계획을 함께 세운다.
그리팅 — 앱을 열면 컴패니언이 먼저 말을 건다. 현재 진행 상황을 요약하고, 오늘 할 일을 상기시킨다.
알림 — 지정된 시간에 서버에서 컴패니언이 작동하여, 적절한 메시지를 보낸다. 루틴 시간이 되었거나, 성찰을 작성할 시점이 되었을 때 능동적으로 찾아온다.
궁극적인 목표는 명확하다. 사용자가 다른 UI를 만질 필요도, 알 필요도 없는 상태. 그저 컴패니언과 대화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전체적 기획이었습니다. 세부내용들은 앞으로의 연재글에서 이어질 겁니다. 아직 앱은 지속적으로 개발 중입니다. 확실히 지금은 프로토타입 수준입니다. 결정적으로 아직 컴페니언기능이 들어가지 않았거든요.(글을 발행하는 이 시점에는요)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글의 내용이나 앞으로의 변화가 궁금하다면 앱을 설치해 보세요. 아직 저만의 도구라 다른 분들에게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Appstore: https://apps.apple.com/kr/app/odyssey60/id6742695943
Playstore: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odyssey365.odyssey60&pcampaignid=web_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