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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인테리어, 콩고물은 아직.

<세미 셀프 인테리어 시대가 왔다>

by 무아노


낡은 집을 마주할 때마다 괜히 손이 근질거린다. 사리 지지 않는 실리콘 틈 사이 곰팡이와 유리 선반의 물때를 보면 무언가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왔다. 벽면 마감재가 주저앉아서 부모님이자 집주인님은 실리콘을 쏘아 다시 붙이셨다. 그리고 실리콘이 남았다. 나는 남은 실리콘으로 욕실을 깨끗하게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물론 처음인 만큼 무료였다.


유튜브에서 '욕실 셀프 시공'을 찾아 여러 번 본 뒤 작업에 들어갔다. 기존 실리콘을 제거하고 마스킹테이프 사이에 실리콘을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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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는 성공적이었는데, 아래는 엉망이었다. 결국 검사받으며 '모서리가 어렵지'하는 소리를 들었다.


재시공 요청은 없었다. 하지만 시공자의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다시 하기로 했다. 그전에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싶어 집수리 관련 책을 찾아봤다.

<셀프 집수리: 내 집은 내가 고친다>는 집수리에 필요한 정보가 있다. 실리콘 쏘는 방법이나 장롱문, 방문 경첩 바꾸기 같은 유용한 방법을 알려주는데, 이건 영상으로 봐야 더 좋을 듯하다. 실제로 저자도 유튜브 영상을 책으로 낸 거고. 그래서 다른 책을 찾다가 <세미 셀프 인테리어 시대가 왔다>를 읽게 됐다.


셀프 인테리어는 철거, 전기, 타일, 페인트, 필름, 도배, 조명 공사등을 통틀어 말한다. 성공 사례도 많고 영상을 보면 쉬워 보이는데 해보면 괜히 기술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 역시 이번에 실리콘을 쏘면서 느꼈다. 그렇다고 셀프 인테리어를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공정에 준기술자가 되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리는 것일까. 대충 잡아도 10년은 넘을 것이다. 그럼 셀프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1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걸까. 절대 아니다.", "셀프 인테리어의 기술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기술자에게 작업을 지시하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공정의 순서와 그 특징을 파악하라."


이 책은 셀프 인테리어를 전부 혼자 해내야 한다는 강박 대신, '진행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 전문 기술자에게 맡길 건 맡겨 하자 발생의 부담을 줄이고 시간을 기회비용으로 이용한다면 그게 돈을 절약하는 '세미 셀프 인테리어'가 되는 것이다.


그럼 전문가에게 뭘 맡기고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저자가 셀프로 추천하는 작업을 정리해 보겠다.

총 인테리어 계획을 세우고 전문가 찾기. 주변 이웃들에게 공사 동의서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써야 한다면 보양 작업하기. 철거 공사에서 싱크대, 신발장, 붙박이장 등 분리하기. 콘센트, 스위치 교체하기. 도기류, 수전 세팅 공사. 페인트 공사. 조명 공사.

나머지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안전과 정신 건강에 좋다.


인테리어는 집에 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집을 팔 때도 중요하다. 저자 역시 그 부분을 강조하는데 내가 조금씩 집을 수리해야겠다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 번씩 독립을 얘기하면 집주인 내외는 큰 집이 필요 없으니 작은 집으로 가야겠다든가, 외곽으로 나가야겠다며 이사를 계획을 흘리신다.

몇 년 뒤 집이 팔려야 할 때 '올수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덜 낡은 느낌이 나면 집을 보러 온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가서 이거 저거 고쳐보려 하면 늦을 수 있었고 그래서 해봤다.


손재주가 많지 않아서 그런가 다른 사람만큼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진처럼 엉망진창이 되는 미래는 없을 거란 믿음이 생겼다. 이번 경험을 통해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빠른 시간 내 재시공을 하고 다음은 콘센트, 스위치 교체를 도전할 예정이다. 해달라는 사람도 없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 분명 도전이다. 물론 집주인 내외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콩고물이라도 얻어 보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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