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다(촘스키, 다극세계의 길목에서 미국의 실패한 전쟁을 돌아보다)>
수백 개의 케이블 채널 중에 정작 즐겨보는 건 몇 개 안 된다. 돈을 내고 낭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많은 채널을 이용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쭉 훑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오페라, F1, 택견 시합을 볼 수 있었다. 그중 다큐멘터리는 나의 최애인데 얼마 전에는 BBC earth에서 방영하는 '이라크 속으로'를 보게 됐다.
나를 사로잡은 건 프로그램명이 아니라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같은 단어들이었다. 역사 시간에 들어본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데 현재로 치면 이라크가 핵심지역이라 첫 시작으로 문명 이야기를 한 것이다.
진행자는 티그리스강의 강물처럼 터키에서 이라크로 국경을 넘어갔다. 삼엄한 경비에 긴장하지만 그건 이라크 내의 사람들을 만나며 풀어진다. 핍박받는 쿠르드족의 이야기, IS에게 점령당해 파괴당한 모술은 익히 아는 이라크의 모습이었지만 수도 바그다드는 전혀 달랐다. 네온사인으로 화려하고 성장 잠재력이 가득했다. 이라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는 너무 달랐기에 더 깊이 알고 싶어 졌고 결국 『물러나다(촘스키, 다극세계의 길목에서 미국의 실패한 전쟁을 돌아보다)』를 찾게 됐다.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실패한 전쟁을 노엄 촘스키, 비자이 프라샤드의 대담을 모아 만든 것이다. 노엄 촘스키는 언어학자, 역사가, 사회비평가, 정치운동자로 세계적인 지식인으로 표현할 수 있고 비자이 프라샤드는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이다. 두 사람은 베트남, 라오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전쟁에 대해 미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워 다른 나라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지를 폭로하는 데 집중한다.
이라크는 2003년 3월 미국의 침공을 받고 4월에는 정권이 붕괴됐다. 미국은 5월 대규모 전투 작전을 종료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전쟁이 '전략적 실수'였다고 평가하며 2011년 종전을 선언했다. 핵무기,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테러 조직을 지원한다는 미국의 명분은 잘못되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저자들은 이라크 침공의 배경에 국내 정치적 위기에서 관심을 돌리기 위한 의도와 석유 확보가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라크는 사우디 다음으로 원유 매장량이 높다. 미국은 다른 나라가 석유에 대한 특권을 누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라크는 80년대 이란, 90년대 쿠웨이트, 2000년대 미국, 2010년대 IS와 전쟁을 했다. 그럼 초토화될 수밖에 없다는 뜻 같지만 8~90년대 전쟁, 2003년 미국과의 전쟁 이후로는 물리적 파괴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었기에 많은 도시가 남아있을 수 있었으며 시민들은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전면전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들이 전쟁의 공포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전쟁터에 끌려갈 수 있었고 테러에 휘말릴 수 있다는 두려움, 또 외부 세력의 간섭은 정치 불안과 부패를 더욱 악화시켰고 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물러나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이라크의 이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다큐멘터리 ‘이라크 속으로’는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능성과 미래를 보여준다. 이 두 이야기가 나의 시선을,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조금은 바꾸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