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친구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식이 끝나고 다른 친구들과 '결혼식'을 꼭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한바탕 토론을 나눴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 이 문제는 답이 없다.
결혼식과 관련된 책을 찾았더니 결혼 준비과정에 관한 정보성 책이 많았다. 원래 읽으려 했던 게 맞는데도, 친구들이 말하던 결혼식의 허무함이 떠올라 내용이 더더욱 와닿지 않았다.
결국 소설책을 읽기로 했다. 많은 책 중에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굉장히 자극적이면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결혼식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살펴보니 <크리스마스 파티와 결혼식>이라는 수록 작품이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문제였다. 사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복잡한 러시아 이름들을 더욱 난해하게 만드는 스타일이 늘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폭풍의 언덕>을 읽다 몇 번이고 이름을 찾던 기억은 최악이었다. 시간이 흘러 무뎌졌던 '극혐'의 감정은 이번에 책을 읽으며 다시금 선명해졌다.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은 처음에 젊은 남자, 너구리털 외투를 입은 남자(이하 이반)가 나와 나를 방심시켰다. 하지만 금방 보브이니쯔인, 글라피라, 뽈로비쯔인으로 어지럽게 만들었다.
찾아보니 보브이니쯔인, 뽈로비쯔인는 사람 이름도 아니고 지역명이었다. 쉽게 서울사람, 강원도 사람 같은 표현이다. 책을 덮으려 했지만 또다시 편식할 수는 없어 억지로 읽어 내렸다.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이야기 1의 시작은 이렇다. 건물 앞에 있는 젊은 남자에게 이반은 두서없이 아주 불안한 상태로 말을 건넨다. 자신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친구'의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는 것 같아 알아보려 한다고. 젊은 남자는 '정신 나간 놈'을 무시하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반 아내의 정부가 젊은 남자였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밝혀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2에서 이반은 아내를 미행하다 엉뚱한 집 침대 밑에 숨어들고 그곳에 이미 숨어있던 또 다른 남자와 실랑이를 벌인다. 그 집의 개가 알아채 짖자, 집주인에게 들킬까 봐 개를 죽여버리는(!) 극단적 행동까지 저지르고 만다. 결국 침대 밑에서 나와서 집주인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
자신은 정부가 아니며 사랑 때문에 여기 있노라고.(침대 밑에 있던 상황이야말로 너무나 정부 같은데.) 그러자 집주인 부부는 웃고 이반도 따라 웃는다.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 문제를 일단락하고 집에 온 이반은 아파서 집에 있었다는 아내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은 친구인 '표트르 이바느이치'와 '이반 페트로비치'가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이다. 이반은 표트르를 만나려고 하지만 표트르의 사정에 계속 만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이반은 표트르가 자신을 피한다고 생각하며 그딴 식으로 굴지 말고 빌린 돈을 갚으라 한다. 표트르는 그의 언행에 기분 상해하면서도 빌린 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각자의 아내가 '예브게니 니꼴라이치'라는 남자와 전 연인이었으며 불륜 사이라는 걸 의미하는 편지를 동봉했다.
<크리스마스 파티와 결혼식>는 우연히 가게 된 결혼식에서 5년 전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떠올리며 시작한다. 모든 게 돈으로 구분되는 가식적인 파티에서 욕심 많은 남자는 이제 막 10살 된 파티 주인의 딸을 욕심낸다. 소녀에게 많은 지참금이 있단 얘기를 듣고 말이다. 이 모든 걸 지켜본 화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결혼식이 욕심 많은 남자와 15살이 된 소녀의 결혼이라는 걸 알고 남자는 놀란다.
도대체 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읽기는 다 읽었는데 머릿속에는 물음표로 가득해 해설이 필요했다. 해설을 읽고 이 작품들이 희극이라는 것을 알자 의문이 사라졌다.
도스토옙스키는 '결혼은 미친 짓이야'라는 걸 유머러스하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상대를 배신하고 상대를 믿지 못해 의심한다. 타인의 불륜을 알지만 모른 척하다 상처주기 위해 이용한다. 사랑이 없어도 이득을 위해 딸을 결혼시킨다.
남편과 아내로 만들어주는 결혼 때문에 정신없이,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때로는 웃음거리가 된다. 결혼식에서 결혼까지 오게 됐는데 결론은 미친 짓이 되고 말았다.
사실 결혼식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건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 동안 천만 원 단위의 돈을 쓰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달 배낭여행 아니면 크루즈 여행에 그 단위의 돈을 쓰기도 하지만 시간 단위로 계산해 보면 더 짧은 순간 많은 돈을 쓰게 된다. 물론 축의금을 받으니 손해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미친 짓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말하듯, 결혼이 미친 짓이면 결혼식도 미친 짓이면 뭐 어떤가 싶다. 결혼이란 험난한 길을 걷기 전에 많은 이들의 축하 속에 두 사람의 사랑을 약속하고 잠시나마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다. 정신없는 그날의 기억이 흐릿해질지라도 반짝였던 그 순간은 언젠가 문득 떠올라 두 사람에게 다시 행복을 건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