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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붐은 온다: 여름 방학 역사 여행지 추천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백제 여행>

by 무아노


나는 역사적으로 볼거리가 많은 여행지를 선호한다. 공주는 그에 부합한다고 생각해 예전부터 가고 싶었다. 하지만 박물관과 왕릉 투어가 취향인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방법은 있다. '가족 여행'이란 타이틀로 둔갑시키면 대부분은 조용히 따라온다. 그렇게 7월 초, 무더위가 시작되던 시기 공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여행 일정은 공산성, 공주산성시장, 왕릉원, 국립공주박물관 순이었다. 여름이라 아침 일찍 움직여 점심 무렵 마치는 계획을 세웠고, 오후 2시쯤 일정을 마무리했다. 사실 2시까지 일정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왕릉원의 송산리고분군전시관과 웅진백제역사관의 에어컨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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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공산성 주차장에 도착했다. 날은 흐렸지만 무척 더웠다. 공산성의 가파른 입구를 보니 쉽게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공산성 안에 위치한 백제왕궁터를 포기하고 고마열차를 타기로 했다.

고마열차는 공산성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승하차장소) → 공주한옥마을 → 국립공주박물관 → 고마나루솔밭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승하차장소) → 공산성(출처 :https://www.gongju.go.kr/tour/sub07_02_04.do)으로 돌아오는 왕복코스다. 잠깐 멈추는 승하차장소를 제외하면 고마나루솔밭에서만 15분 정도 거닐 수 있고 나머지는 차를 타고 보는 식이다. 공주의 관광지를 '찍먹'하기에 제격이었다.


송산리고분군전시관과 웅진백제역사관을 돌아본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령왕을 제외한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같은 웅진백제 시대 왕들의 이름이 낯설었다. 생각보다 백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실감됐다. 그래서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백제 여행』을 읽게 되었다.


백제는 위례(현재의 잠실, 방이동, 풍납동, 올림픽공원 주변)를 수도로 삼았다가 웅진(공주), 사비(부여, 익산)로 천도했다. 2015년에는 공주, 부여, 익산이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됐다.

사실 따져보면 서울 동남부가 백제의 수도로 가장 오래 쓰였지만 공주, 부여, 익산이 좀 더 자리 잡은 느낌이다. 이는 서울이 백제 외에도 홍보할 콘텐츠가 많고, 주거지로 개발되며 유적 발굴이 어려운 구조라는 현실적 한계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옛 위례 지역에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있었다. 몽촌토성은 1980년대 올림픽공원이 들어서며 난개발을 막고 보존할 수 있었지만 풍납토성은 보호의 목소리를 받지 못한 채 개발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런데 웬걸, 재건축이 되며 땅을 팔 때마다 풍납토성에서 몽촌토성과 비교가 안 될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거였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2015년 당시의 서울시장이 꿈에서 백제 왕을 만났다며 풍납토성을 더 적극적으로 조사와 발굴하겠다 나섰다는 점이다. 꿈속에 조상이 나왔다는 참 한국스러운 이유와 함께 유적지를 보호하자는 시민들의 우호적인 반응까지 더해져 서울시는 풍납토성 토지 매입 비용을 늘리게 됐다.


토성은 말 그대로 흙으로 덮은 성곽이다. 실제로는 큰 언덕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산성 역시 본래는 토성이었지만 조선시대 때 돌로 쌓았다고 한다.

백제가 공주로 천도한 배경에는 고구려의 남진정책이 있다. 광개토대왕은 백제의 영토를 압박했고 백제의 아신왕은 항복하며 위례성을 지켰다. 그러나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은 백제 개로왕을 죽이고 위례성을 점령한다. 이후 개로왕의 아들(또는 동생)인 문주왕이 수도를 웅진으로 옮긴다.

그리고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이 웅진에서 그리고 무령왕의 아들 성왕이 사비에서 백제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의자왕을 끝으로 백제는 멸망한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한강에서 고구려에 밀려내려가고 웅진, 사비에서 신라한테 밀리고 결국 신라와 당에게 멸망한 안타까운 이미지 또는 패배자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유물 발굴과 사료 해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귀족적이고 세련된 나라라는 이미지 역시 가지고 있다.

백제는 그 당시 중국과 적대적인 고구려를 대신해 중국의 문화를 빠르게 가지고 들어왔다. 지방 세력들에게 신문물을 전해 백제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백제는 가야, 일본까지 영향력을 떨쳤고 동시대 신라보다 뛰어난 금속 공예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국보 백제금동대향로를 보면 백제의 제작 기술력을 알 수 있다.


신라는 이미 확고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지만 백제는 아직 그 진가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백제의 뛰어난 국제 외교력과 세련된 귀족 문화, 그리고 앞선 기술력이 더 많이 알려진다면 공주, 부여, 익산은 분명 한국 역사 여행의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터만 남아 볼거리가 적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빈 공간이야말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이 될 수 있다. 그래도 아쉬움을 느낀다면 박물관부터 들러보길 권한다. 박물관은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피할 수 있는 쉼터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흥미롭게 풀어내는 백제의 아름다움과 진가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공간이 허전한 유적지를 더욱 생생하게 채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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