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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뽑은 호주산 레어템 한 권

<국회의원 살인사건>

by 무아노


추리 소설이 읽고 싶었다. 도서관에 가 자연스럽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이 있는 선반을 둘러봤다. 그리고 『국회의원 살인사건』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의 표지와 제목이 강렬했다. 무엇보다 작가가 호주 출신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읽기로 했다.

예전 자료조사 중 알게 된 사실인데 한국의 번역서는 일본, 미국이 가장 많고 이어 영국, 중국, 프랑스와 독일 등의 순이다. 예로 들어 남아공, 베트남 출신 작가의 책처럼 아주 희귀한 건 아니지만 자주 만날 수 없는 건 사실이니까 손이 갔다.


주인공 루도는 국회의원이 된 아빠를 따라 수도 캔버라로 가게 된다. 비행기에서부터 국회의원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마주한 아이는 연 20만 불의 연봉 외에도 연 200만 불에 달하는 혜택이 그 원인임을 알게 된다.

호의를 베풀고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조항을 잘 지키는 스카우트 대원인 루도는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본 노숙 소년을 보고 노숙자들을 돕고자 한다.

소년을 찾으러 숲에 간 루도와 스카우트 대원 헨리는 피 흘리는 전직 국회의원을 발견하는데 두 사람의 도움에도 그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루도는 사람들의 분노가 남자를 죽이고 싶은 것 같아서 아빠는 물론 남자의 딸인 '칼라'를 걱정한다.

하지만 칼라의 생각은 달랐다. 용의자들은 과학자, 국회의원, 부동산업자 등등 많은 이해관계가 뒤엉켜 있었다. 루도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돕고자 했던 소년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진짜 범인을 잡는 건 물론, 많은 이해관계를 풀 힘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아빠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쩐지 이상한 아빠의 행동에 루도는 아빠마저 믿을 수 없게 된다.


작가 모리스 글레이츠먼(Morris Gleitzman)은 영국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에 호주로 이민을 갔다. 1953년생 이시니, 호주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주로 청소년 소설을 썼고 이 책 역시 청소년 소설이다. 그래서 대부분 아동 서적란에 있는데 내가 간 도서관은 성인용으로 분류해 두어서 읽을 수 있었다.

여하간 원제는 『help around the house』로 '집안일을 돕다'라는 의미로, 번역하면서 '국회의원 살인사건'이란 어마무시한 제목과 표지에 읽는 사람을 향해 겨냥된 총구를 넣어 만만치 않은 책이 되었다. 하지만 '초월번역'된 제목과 표지로 내용을 적절히 요약해 두었으니 박수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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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펭귄북스에서 나온 원본 표지, 오른쪽 나무처럼에서 나온 한국판 표지


제목은 훌륭했지만, 내용 번역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주석이 오히려 헷갈리게 한다던가, 문화차이가 아닌데 오해할 수 있는 부분에서 설명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루도가 추리하는 부분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건 정말 아쉬웠다.


책 내용은 복잡하지 않아 쉽게 읽힌다. 호주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호주는 손에 꼽히는 체계적인 자전거 도로가 있는 나라라고 한다. 십 대인 등장인물들에게 자전거로 기동력을 주고 아예 초반에는 루도가 캔버라의 자전거 도로가 멋지다는 말을 한다. 작가는 감사인사를 통해서도 자전거 도로를 언급한다.

또 캥거루 사살사건 역시 호주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따라 캥거루뿐 아니라 다른 동물도 겪는 일인데, 몇 개월 전에는 코알라 700마리가 헬리콥터 저격으로 죽기도 했다.


책을 읽다 보면 언제부턴가 취향이 굳어버린다. 좋아하는 작가와 장르, 익숙한 나라 이야기에만 머무르기 쉽다. 하지만 가끔 눈길을 옆으로 돌려보면 뜻밖의 우연이 겹쳐 전혀 다른 풍경을 열어준다. 이번 책이 그랬다. 낯선 호주 작가의 청소년 소설에서 캔버라의 자전거 도로와 캥거루를 만난 건 분명 내 독서 지도를 넓혀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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