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
친구 네 집에 집들이를 갔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우리는 음식, 주식, 세계정세, 일자리 등과 관련해 대화를 나눴다.
진지함과 장난, 무례함의 경계를 오고 가며 이루어진 대화 중에서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나왔다. 어떤 맥락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눈물겹다는 식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작가 이름과 제목도 잘 기억 안 나서 버벅거리다 겨우 끼워 맞춰진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이번에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벽돌책'으로 유명한 현대문학에서 나온 오 헨리의 단편선을 골랐다. 600페이지가 넘지만 이미 나는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경험했기에 두렵지 않았다.
여하간 많이 알려진 동방박사의 선물(크리스마스 선물), 「마지막 잎새」 말고도 다양한 작품이 실려 있는데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더 다양했다.
"바로 하층계급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과 연민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뉴욕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상류사회 인사나 세련된 멋쟁이가 아니다. 그들은 여공이고 여점원이고 가난한 연인/부부고, 공원 벤치를 집으로 삼은 떠돌이들이다." p. 640
이들은 부족함 속에서도 대부분 유쾌하고 낭만적인 반전으로 끝을 맺지만 드물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작품들도 있다.
「가구가 딸린 셋방」에서 주인공의 자살을 암시하며 「지붕창이 있는 방」은 자살시도를 한다. 「할렘 비극」은 매 맞는 아내를 부러워하는 다른 아내가 나온다.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인 '존시'도 나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로 묘사된다.
만약 이런 작품들을 청소년이나 아동이 읽는다면 세상을 너무 일찍 알려주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도 했다.(사실 이해 못할 가능성이 더 크지만) 내가 기억하는 오 헨리는 마냥 마음을 뭉클하게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청소년과 아동을 위한 판본을 찾아보았다.
공통으로 실린「동방박사의 선물」, 「마지막 잎새」, 「경찰과 찬송가」,「20년 후」,「되찾은 삶(개심)」에는 '타인을 사랑하고 착하게 살자'는 교훈을 가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번역도 독자층에 맞게 달라져 있었다. 오 헨리는 자칫 수다스럽게 느껴질 만큼 과한 비유를 즐기는데 아이들용 판본에서는 이를 깔끔하게 정리해 서사를 이어나갔다. 덕분에 아이들은 날 선 현실의 비극을 다 알기 전 아이들만의 순수한 세상을 먼저 가질 수 있을 듯했다.
오 헨리의 다양한 판본들을 비교하며 읽다 보니 먼저 삶을 지나온 이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얼마나 고민해 왔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날 선 현실의 비극을 다 알게 되기 전에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세상을 가질 수 있게,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작가 이름과 제목을 더듬거리며 찾아야 했을 만큼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우리 마음속에 '헌신'과 '이타적인 희생'이라는 키워드만큼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아주 어릴 적 인간이 지켜야 할 가치들을 어떻게든 먼저 전해주려 했던 윗세대의 다정한 노력이 거둔 결실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