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글동글 달팽이야, 네가 달팽이니?, 달팽이와 고래
*이 글에는 달팽이 사진과 그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시는 분에 따라 주의가 필요합니다.
부침개에 들어갈 부추를 다듬고 있었다. 조심스러운 손길 사이로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툭, 튀어나왔다. 바로 달팽이였다. 짧은 비명과 함께 부추를 털어내자 달팽이는 그대로 배수구로 추락했다.
잠시 묵념. 명복을 빌다가 먹으려던 건 먹어야 했기에 부침개를 부쳐 먹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러 다시 싱크대 앞에 섰을 때, 소름이 돋았다.
달팽이가 살아있었다. 수직의 벽을 타 넘으며 탈출을 시도하는 몸짓은 경외감을 넘어 일종의 공포마저 주었다. 죽은 줄 알았던 존재가 살아 움직이는데, 놀랄 수밖에. 여하간 내가 호들갑 떨자 형제는 달팽이를 숟가락에 태워 화단으로 보내줬다.
냉장고의 냉기와 쏟아지는 물살을 견디는 생명력.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달팽이가 주인공인 책들을 찾아 읽기로 했다.
1. 『동글동글 달팽이야』 - 글 권오길 / 그림 양상용
이 책은 달팽이의 생태를 따뜻하게 담아낸다. 배가 곧 발이 되어 기어가고 더듬이 끝에 눈을 달고 세상을 보는 달팽이의 구조를 찬찬히 짚어주는데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껍데기의 방향이다.
달팽이의 껍데기가 말린 방향에 따라 오른 돌이 와 왼돌이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에는 주로 오른돌이가 많다고 한다. 이 방향에 따라 입이 열리는 위치까지 달라진다는 사실.
수채화 톤의 부드러운 삽화 덕분에 평소 달팽이를 멀리하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달팽이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다.
2. 『네가 달팽이니?』 글 주디 앨런 / 그림 튜더 험프리스 / 번역 이성실
앞선 책이 감성적인 입문서였다면 이 책은 조금 더 '현실'에 가깝다. 삽화가 매우 사실적이라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묘한 소름이 돋기도 한다.
농작물을 먹어 미움받는 달팽이. 그런 달팽이들은 새와 여우 같은 상위 포식자들에게 끊임없이 노출된 위태로운 생태계의 일원임을 일깨워준다.
3. 『달팽이와 고래의 모험』글 줄리아 도널드슨 / 그림 액셀 셰플러
지식의 단계를 지나 이제 모험의 시간이다.
『달팽이와 고래의 모험』은 좁은 바위 위를 벗어나 넓은 세상을 꿈꾸는 달팽이가 고래 꼬리에 매달려 지구 곳곳을 누비는 이야기다.
앞서 배운 지식을 대입해 보면 이 동화는 더욱 생생해진다. 고래 꼬리를 놓치지 않는 달팽이 특유의 접착력, 그리고 고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발바닥의 즙을 이용해 도움을 요청하는 영리함까지. 세세하게 따지기 좋아하는 어른의 눈으로 봐도 남다른 호기심 하나로 세상을 종횡무진하는 달팽이의 모습은 뭉클한 구석이 있다.
이렇게 달팽이, 달팽이 한 적은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나와 달팽이의 사이는 멀었다. 달팽이와 관련한 책을 찾으니 대부분 유아, 아동을 위한 것이었다. 분명 어릴 적 달팽이와 가까웠을 텐데, 이토록 거리감을 느끼는 건 아마 빨리빨리에 익숙해진 어른이 되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숟가락에 실려 나간 그 녀석이 어느 풀잎 아래서 편히 쉬고 있기를 바란다. 녀석 덕분에 나도 아주 오랜만에 발밑을 살피며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운 기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