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과 아이

선연히 채색했던 연민의 마음

by 강쌍용


노을과 아이




떠들썩한 법석이 한바탕 훑고 지나갔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고요했다.

무슨 일로 뒤처졌는지 정확하게 모른다. 바람에 먼지가 쓸려가듯 모두 빠져나간 자리에 홀로 서성거렸던 기억만은 확실하다.



기껏해야 전교생이 쉰 명 남짓 될까? 작은 섬이었다. 놀거리라고 뒷산에 올라 고작 전쟁놀이나 칼싸움이 전부였다.

이런 놀이에도 엄연한 질서가 있었다. 계급에 따라 위계가 확실했다. 대장은 당연히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녀석이 차지했다. 참모나 전투병은 대장의 호불호에 따라 서열이 정해졌다. 이를 거역하면 항명의 꼬리표가 붙어 다음 전투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다소 불만이 있어도 따라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무슨 영문인지 이런 놀이에서 늘 대장을 했다. 더군다나 또래 아이들이 부족해 두세 살 많은 형들까지 부하로 두었으니 참 희한한 일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우쭐댈 일이 아니었다. 어딜 가나 졸졸 따르는 아이들과 어울렸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이 산 댕백이에서 즐겨 놀았다. 몇 판의 흥건한 싸움이 끝나고 땅거미가 내리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산을 서둘렀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어둠이 주는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이 순리를 따라야 했다.



기울던 산 그림자가 벌써 외래 개에 그늘을 드리웠다. 터벅터벅 산길을 걷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정신없이 노느라 방전된 허기가 시장기와 겹쳐 오르막이 힘들었다. 어찌어찌 산등성이에 올랐을 것이다.

잠시 숨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훅! 하고 시선을 빼앗은 것은 선홍빛 파스텔이었다.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파노라마였다.

붉은 물감을 품은 거대한 화방의 붓이 세상을 온통 붉게 색칠해 놓았다. 출렁이며 부서지는 물비늘이 일제히 중심을 잃고 멋대로 부유했다. 금빛 양탄자 위에서 펼쳐지는 광란의 불빛 군무에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넋을 잃었다. 빼앗긴 시선을 마땅히 둘 자리도 없었다. 시루봉도 비켜 앉은 곰 섬 모래톱도 온통 붉었다.

그뿐 아니었다. 다복솔 사이로 익을 대로 익어 제 모습만으로 검붉을 망 계도 덩달아 타올랐다.

마치 소멸의 정점을 각인하듯 핏빛의 홀림은 빠진 곳 없이 구석구석을 채웠다.

평소 놀래기를 건져 올리던 친근한 바다가 아니었다. 황홀한 두려움과 낯섦이 난삽하게 버무려진 혼돈의 바다였다.

무엇 때문에 그날따라 노을이 유난히 붉었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빛의 산란이든 날씨의 조화이든 여태껏 보아온 저녁 풍경과 확연히 달랐다. 전혀 색다른 또 하나의 노을 세상이었다.

흙이 씻겨나간 비탈을 겨우 비켜섰을 것이다. 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홀로 감당하기엔 이 찰나가 너무 버거웠던 것이다. 열한 살 아이의 눈을 적셨던 눈물의 의미를 알 수는 없다. 그 나이에 생의 무상을 알았을 리 없고, 더더구나 구구한 곡절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선홍색 분광을 쫓던 아이는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밭뙈기에 붙어 앉아 절망을 담금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어떤 희망도 거두지 못하는 곤궁한 호미질은 보잘것없고 초라했다. 쪼그리고 앉은 한숨은 길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은 질겼다. 그것이 그토록 서러웠는지 모른다.

아니면 노을빛 받으며 노 저어 가는 아버지의 목선이었다. 지친 노곤함이듯 느릿한 배질도 참 늘품 없고 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뱃일이 그렇게 사무쳤을지 모른다.

어떤 수고도 바라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이어가는 삶이란 얼마나 허탈한 것인가?

딱히 서두르거나 욕심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운명 같은 일상에 그저 순응할 뿐이었다. 부지런함 외에 어떤 부산을 떨어도 견고하게 꼬인 실타래는 여전히 풀릴 기미가 없었다.

그 영롱한 노을의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당신의 모순적인 삶이 아이에게는 그렇게 서러웠는지도 모른다.



참 오래 전의 일이다. 그날 발갛게 솟구치던 감흥이 아직도 생생하다. 산 위에서 지켜보던 고요 속의 붉은 노을이 선연히 채색했던 것은 세상만이 아니었다. 까닭 없이 서럽던 아이의 가슴속에도 선한 연민의 마음을 덧칠해 주었다.

아버지의 가난이, 어머니의 한숨이 불현듯 다가온 어린 날의 경험이었다. 그렇게 유별난 것이어서 쉽게 잊히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고향을 찾을 때면 이 산을 오른다. 오를 때나 내려올 때면 언제나 8부 능선 어디쯤인가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숨이 멎는 것 같은 노을을 바라보던 자리다.

다른 것은 다 변했다. 그렇지만 유년의 추억과 감동이 묻어 있는 이 자리만큼 아직 변함이 없다. 아뜩했던, 물결의 골을 메운 분광이 소름같이 발광하던 반짝임에 안절부절못하던 기억이 어제 같다. 지는 볕을 받고 눈시울 짓던 아이는 어느새 초로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날 서럽도록 눈물을 주었던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젠 다시 뵐 수가 없다.

노을 속을 무심히 배질하던 아버지의 부지런함, 마른땅을 긁던 어머니의 고단한 호미질!

그 나이를 거쳐 살아오는 동안 나는 누구에게 감동을 주어 본 적이 있었던가? 사위어가는 인생은 여전히 의문투성인 체 그 해답은 미궁 속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목 놓아 울었던 연유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