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집 태우기

겨울밤의 노네기

by 강쌍용



달집 태우기




바다 건너 공곶이에서 먼저 까래이(반딧불이) 불알 같은 불빛이 언뜻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어 고만고만한 잔 불들이 여기저기서 아른거리더니 그중 하나가 이내 주위를 환하게 밝히며 높게 솟았다. 기세를 보아 제법 규모가 만만찮다.

때를 맞추어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모두가 야무지게 의지를 다졌다. 아까 낮부터 준비해둔 나무 덤불 주위로 아이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와, 저기도, 벌써 불꽃이 핀다.”


잠시 후 반대편 남산 밑에서 또 하나의 불길이 치솟았다. 그곳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추위에 언 손을 비비던 아이들이 바람을 막기 위해 어깨를 맞대고 스크럼을 짰다.

때 맞춰 안골 산마루 위로 항아리 같은 보름달이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 녀석이 진중하게 서둘렀다. 미리 준비해둔 마른 솔가지 더미에 성냥을 그었다. 쥐똥만 한 화약이 너덜너덜하게 붙어있는 성냥갑에는 칼질한 것 같은 하얀 빗금 자국이 어지러웠다. 성냥조차 귀하던 시절이라 섣부른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다.

해변에 떠내려온 잔가지를 한데 모은 솔잎 무더기가 불쏘시개로 쓰였다. 몇 번을 훑긴 끝에 겨우 불꽃이 일었다. 아이들이 동시에, 야! 하고 환호를 질렀다. 불길을 펴느라 모두 입을 오므리고 후~후~ 바람을 불어넣었다. 용을 쓰느라 턱관절이 아리고 어금니가 바둥바둥했다.

불꽃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이에 질세라 옆에 쌓여있던 덤불에도 한 무리 아이들이 달라붙어 불을 옮겨 갔다. 군데군데 놓여있던 불무더기가 저마다 위용을 드러내며 마른 연기와 함께 불기둥을 만들었다.

마른 벌판이 타들어 가듯 해안선을 따라 번진 불꽃이 삽시간에 불 잔치를 벌였다. 불길 따라 움직이는 아이들도 덩달아 바빴다.

불은 정월 매서운 추위를 녹여버릴 기세로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타올랐다. 불덩어리는 점점 더 커지고 개수도 늘어났다.

저편 뭍의 해안을 따라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불꽃도 점점 세를 불려 갔다. 이쪽과 키재기 하듯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바람이 흔드는 호롱불처럼 아른거렸다.

이곳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분주하게 불씨를 나르는지 잔불들이 허공을 막 날아다녔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오늘만큼은 금기시된 불장난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날이었다.

그렇게 정월 대보름 달집 태우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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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신나게 탈수록 아이들은 모자라는 땔감을 갖다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불쏘시개로 쓴 나무가 거덜 날 때쯤 가까운 텃밭 울타리나 겨울 땔감으로 어른들이 재어 놓은 나뭇단을 들추었다. 간혹 간 큰 녀석들이 낡은 뱃장의 널을 떼어다 쓰는 일도 있었다. 그런 다음 날은 배 주인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느라 종일 애를 먹었다.

불을 빙 둘러싼 아이들의 얼굴이 어느새 벌겋게 달아올랐다. 벌써 신발이며 양말을 태운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뒷수습은 안중에 없었다. 액운을 쫓아내는 액땜이라 여기면 그만이었다.

퍽퍽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튕겨 나간 불꽃이 나일론 잠바에 불구멍을 냈다. 새로 산 설 옷을 망가뜨린 불구멍은 틀림없이 어머니의 화를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이 축제의 지대한 공헌으로 받은 훈장 같은 것이어서 은근히 뿌듯했다.

그렇게 치솟은 불은 밤하늘을 밝히며 고도를 높여가는 달을 태웠다.

나무랄 데 없이 타오르는 불을 에워싼 저마다의 표정은 행복했다. 주워온 나무를 던져 넣는가 하면 불붙은 막대기를 꺼내 피어오르는 연기로 누군가의 이름을 허공에 긋기도 했다. 분명 짝사랑하는 옆집 순이의 이름일 것이다.

땔감이 거덜 나면 더러는 다른 불무더기의 나무를 슬쩍하는 잔망스러움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딱 걸리면 말다툼에서 시작한 싸움이 멱살잡이로 언성이 한껏 올라가기도 했다. 다툼을 부추기던 씨 누이 같은 아이들이 시시한 우격다짐에 김이 빠지면 금세 불 주위로 다시 모여들었다.




순조롭게 이어지던 불놀이가 삽시간에 깨진 것은 이때쯤이다.

타는 불무더기 위로 성질 급한 녀석이 잔뜩 뭉친 잘피를 냅다 던져 넣었다. 불을 온통 덮어버린 것이다.

반쯤 젖은 잘피에 묻힌 불길이 삽시간에 까만 연기로 뒤덮였다. 불 위를 덮은 이른 투척에 기세 좋던 불길은 금방 사그라지고 말았다. 불꽃의 흥분이 채 가시기 전에 본격적으로 달집을 그을러 보자는 심산이었다.

졸지에 연기를 마신 아이들이 캑캑거리며 불집 주위로 나자빠졌다. 추위에 흘러내린 콧물과 연기에 쏟은 눈물이 범벅을 이룬 얼굴에는 까만 숮 검댕이가 칠갑을 했다. 아이들은 서로 마주 보고 흉을 보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흰 달빛을 가린 검은 연기가 유령처럼 공중으로 흩어졌다. 달이 어둠에 맥을 못 추고 한쪽으로 기울었다. 때를 맞추지 못하고 잘피를 던진 녀석이 아이들의 몰매를 피해 달아나며 엄살을 부렸다.

남은 아이들이 투덜거리며 다시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이미 힘을 뺀 일그러진 볼살이 전위를 잃고 이번에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거나한 피곤이 밀려들 즘 사그라지든 불씨를 다시 살려 준 것은 때마침 불어준 북서풍의 찬 밤바람이었다.

젖은 잘피 뭉치 사이로 삐져나온 작은 불꽃을 세찬 바람이 한차례 핥고 지나갔다. 검은 연기를 토해내던 불구멍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바람길을 을 막고 섰던 아이들이 불문을 내느라 한쪽으로 비켜섰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불은 제모습을 되찾았다. 얄미운 누군가가 또다시 덮어버리지 않을까 감시하는 아이들의 눈빛도 같이 타올랐다.

붉은 불기둥과 함께 잠시 풀이 죽었던 아이들의 기세도 다시 살아났다. 몇 번을 불빛은 그렇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길 반복했다. 동시에 쟁반 같은 보름달도 가려졌다 보였다를 거듭하며 점점 하늘로 솟았다.

물기를 털어낸 잘피 덩어리가 가장자리부터 타들어 가며 만들어진 연기가 달집을 그을렸다. 황홀하도록 짙은 오렌지색 불꽃 속에서 물 쿵 물 쿵 만들어진 연기구름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렇게 정월 보름밤은 점점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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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같이 밝은 밤바다의 윤슬이 눈에 부셨다.

저쪽 뭍의 공곶이에서 마지막 힘을 짜낸 듯 거대한 불꽃이 치솟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들의 함성도 따라 나왔다. 질 수 없다는 마지막 깡다구가 마치 발악처럼 들렸다.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태우자, 전부 몰아넣어라!”


갑자기 아이들의 손이 또 바빠졌다. 여기저기서 태우던 불무더기를 한 곳으로 모으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참에 태우려고 준비해둔 마지막 솔가지며 잔가지를 모조리 모아 불길에 던져 넣었다.

양 사방에 흩어져 있던 잔불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보름달을 삼켜버릴 듯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은 마치 거대한 활화산에서 분출하는 마그마와 같았다. 사방에서 모여든 아이들의 함성도 밤하늘을 삼켜버릴 듯했다.

누군가 거센 화염 위로 아껴두었던 생솔가지를 던져 넣었다. 푸른 연기와 함께 솔향이 자욱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진한 연기가 달빛 밤하늘로 아스라이 날아갔다.

불을 둘러싼 상기된 얼굴이 불빛에 더욱더 익어 갔다. 타닥타닥 거센 기세로 불꽃을 피워 올리자 저쪽 뭍의 불길도 지지 않으려는 듯 더 큰 불길로 응수했다.

점점 타오르는 불무더기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세 대결을 벌였다. 뭍과 섬의 진영이 확실히 나누어진 양보할 수 없는 한판 거대한 불꽃 대결이었다.


“야~! 달이 탄다. 정말 달이 탄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녀석이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래, 정말 달이 탄~다~!”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불에 가린 달로 향했다. 화염에 휩싸인 토끼가 필사의 탈출을 하려는 듯 계수나무 아래에서 갈팡질팡 헤매고 있었다.

연기를 잔뜩 마신 달이 토해내는 쌀뜨물 같은 달빛이 온 사방으로 빗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 시간만큼 상상에 빠진 서투른 이야기를 아무리 지껄여도 토를 다는 아이가 없었다. 토끼가 달집에 살던,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던 오늘은 다만 그 집을 말끔하게 태워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막연하게 달을 보아왔던 아이들의 눈에는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이 묻어났다.

촉촉하게 음영 짙던 그 눈빛은 어쩌면 달의 시선만이 닿을 수 있는, 저 너머 세상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이었다. 아마 이 섬을 벗어나 새롭게 펼쳐질 또 다른 넓은 세상에 대한 무한한 동경 인지도 몰랐다.

벌써 깨끔(작은 언덕)을 타고 내려온 솔 그림자가 모래밭으로 비스듬히 드러누웠다. 바람을 타고 튕긴 불꽃이 산만하게 흩어지다 밤바다로 쓸려갔다. 이때 다른 한 녀석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냄새가 난다.

드디어 달이 탄다.

달이 타는 냄~새다~!”


느닷없이 달이 타는 냄새라니? 아이들이 동시에 코를 벌렁거렸다. 그러나 분명히 달이 타는 냄새가 났다. 그것은 노네기가 야릇하게 풍기는 누릿 내와 흡사했다. 여름날 춘 새 끝에서 지푸라기가 털어내는 물 자국에 징그럽게 드러누운 노네기 냄새가 틀림없었다.

눈치 빠른 녀석들은 대번에 낌새를 알아채고 앞 뒤로 아이들 뒤통수를 훑었다. 까치집 같이 풀어헤친 머리카락에는 쏟아진 달빛이 갈래갈래 엉겨 붙어 허연 비듬처럼 나풀거렸다.

이렇게 추운 겨울밤 난데없이 노네기가 나타날 리 만무하고?

저마다의 생각들이 거칠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정리되지 않은 채 아무렇게 튀어나왔다. 뒤죽박죽 뒤섞인 언어의 유희가 연기와 함께 무리를 이루며 밤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이것은 분명 어느 녀석의 머리카락이 단단히 불에 그을린 냄새였다. 누군지는 몰랐다. 그러나 아이들은 분명하게 알았다.


‘여름날의 노네기, 그 비린 노랑 내가 바로 달이 타는 냄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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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쏟아부은 불길이 제 몸을 다 태우는가 싶더니 서서히 불꽃을 거두어들였다. 저쪽 뭍의 불빛도 사그라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나둘 녀석들이 자리를 떴다. 잦아든 요란이 여운을 남긴 자리에는 불에 탄 까만 자갈이 허연 재를 뒤집어쓴 채 뒹굴었다. 피날레의 정점을 찍은 불구덩이에서 마지막 불씨가 가물거리다 사라졌다. 뒷손이 야무진 누군가가 물에 적신 찌 검지를 한 아름 가져와 촘촘히 덮었다.

달집을 태웠던 마지막 흔적마저 그렇게 모습을 감추었다. 아이들의 흔적이 사라진 이슥한 밤은 다시 원래대로 고요했다. 매캐한 연기만 긴 꼬리를 남기듯 달빛과 함께 흘렀다.

불놀이에 놀라 잠시 몸을 숨겼던 겨울새가 스산해진 밤하늘을 줄지어 날아갔다. 밤하늘에는 정월 대보름 달이 다시 아득했다.

오늘 밤에는 연기를 흠씬 마신 보름달이 커다란 달무리를 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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